[시대의 창]터키와 한국, 그 끝나지 않는 데칼코마니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2016. 7. 28. 21: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1970년대에 터키 독립전쟁의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케말 파샤는 위인전을 통해 친숙한 인물이었다. 아마도 링컨이나 조지 워싱턴 다음가는 정도로 많이 읽혔던 위인전이 바로 케말 파샤 위인전이었던 것 같다.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이 귀하던 시절, 세계의 수많은 정치지도자 중에 왜 하필 케말 파샤였을까. 한 가지 추정은 당시 초등학생 권장도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케말 파샤와 박정희 대통령을 동일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장군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케말 파샤의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이고, ‘파샤’는 ‘장군’이라는 뜻이다. ‘케말 장군’이다. 터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오토만 제국의 오랜 통치에서 벗어나 터키를 세속주의 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시킨 이후 터키 의회는 그에게 ‘케말 아타튀르크’라는 새로운 이름을 헌정했다. ‘아타튀르크’는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법에 의해 아타튀르크라는 성은 케말 아타튀르크 한 사람에게 부여됐고 다른 누구도 이 성을 쓸 수 없다. ‘케말 장군’은 ‘케말 국부’가 된 것이다. 박정희는 최근까지도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 조사에서 가장 자주 1위를 차지하고, 그에게 ‘국부’라는 칭호를 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일이라는 약점을 가진 박정희를 독립전쟁의 지도자인 아타튀르크와 동일시하는 것은 당시의 지배세력에 매력적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공통점을 떠나서 두 나라의 현대사에도 놀라운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군 출신의 강력한 대통령을 가졌었고 군의 정치개입 전통이 강하다는 혹은 과거에 강했다는 점, 미국의 경제·군사 원조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국들이라는 점, 경제력에 비해 엄청난 군사대국이라는 점 등이다. 쿠데타의 역사도 비슷하다. 한국에 1961년 5·16 쿠데타, 1972년 유신, 1979년 12·12 쿠데타가 있었다면 터키에는 1960년, 1971년, 1980년에 쿠데타가 있었다. 유신이 물리력 사용을 전제로 한 비정상적 헌정중단이었던 것처럼, 터키의 1971년 쿠데타도 물리력 사용을 전제로 한 ‘쪽지 쿠데타’였다. 터키군 총사령관이 총리에게 건넨 쪽지에는 작금의 정치적 혼란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이 ‘헌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써 있었다. 12·12 쿠데타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나라를 쥐락펴락했듯이, 1980년 쿠데타 이후 터키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3년간 군이 나라를 통치했다. 터키에는 그 후에도 1993년과 1997년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두 번의 시도는 진정한 의미의 쿠데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두 나라의 이러한 공통점에는 국제정치적 맥락이 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유라시아 대륙을 보자. 구 소비에트 블록의 동쪽 경계선에 한국이 있고 서쪽 경계선에 터키가 있다. 소비에트를 중심에 놓고 지도를 반으로 접으면 터키와 한국은 만나게 된다. 완벽한 데칼코마니인 것이다. 냉전시대의 논리 속에 한국은 동아시아의 끝에서, 터키는 서아시아의 끝에서 평행이론과도 같은 길을 가야만 할 운명을 나눠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2주 전 실패한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에는 민주주의의 명백한 위기를 우려해야 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쿠데타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는 미명하에 1만명 가까운 군인이 체포되었고, 6만명의 공무원이 해고되거나 직무정지를 당했으며, 1600개 이상의 학교가 폐쇄됐고, 2만명이 넘는 교사 및 교수들이 해고 혹은 정직처분을 당했다. 해고된 판검사가 2700명이라니 그 많은 체포영장을 누가 다 발부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이기도 하다. 쿠데타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쿠데타 실패의 후폭풍도 그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터키의 푸틴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의 배후에 미국에 머물고 있는 종교지도자 펫훌라흐 귈렌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와 관련됐다고 의심 가는 모든 세력을 축출하고 있다. 귈렌은 한때 에르도안의 동지였으나 지금은 그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됐다. 펜실베이니아에 은둔하고 있는 그가 지구 반대편 터키의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1987년 한국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한 이후 터키와 한국의 데칼코마니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불행히도 21세기에 들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두 나라에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어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끈질긴 역사적 인연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두 나라의 시민들을 위해 이제는 그 데칼코마니가 끝나길 기원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