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고요하고 한적한 역사·휴양의 도시

다낭(베트남) | 글·사진 윤대헌 기자 2016. 7. 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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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의 한적한 해변 풍경
오행산
참 박물관
바나산 케이블카
후에 황궁
티엔무사원 칠층팔각탑
호이안
호이안 내원교
호이안 야경

서쪽으로 쯔엉 선 산맥을 경계로 라오스와 인접한 다낭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 땅의 허리쯤에 있다. 예부터 국제무역이 성황을 이뤄 중부지역 최대 상업도시로 손꼽힌다. 고대문명 또한 온전하게 남아 있어 내셔널지오그래픽트래블러는 ‘완벽한 여행자가 일생에 꼭 가봐야 할 곳 50선’에 다낭을 올렸다. 자연과 문명의 적절한 어울림, 새것과 낡은 것이 공존하는 곳. 다낭이 휴양과 역사 탐방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다낭은 지금 건기의 끝자락에 있다. 손에 잡힐 듯 낮게 깔린 뭉게구름 위로 짙푸른 하늘 빛이 야무지다.

동쪽으로 남중국해를 끼고 있는 다낭은 베트남 ‘제3의 도시’이자 중부지역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도심을 가로질러 강이 흐른다. 강 이름이 ‘한강(Song Han)’이다. 다낭이란 이름도 ‘큰 강의 입구’라는 뜻. 시가지와 선짜반도가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다낭이 역사·휴양의 도시로 세상에 알려진 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과 후에를 아래 위로 끼고 있기 때문.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낭의 기원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 족 거주자가 세운 참파 왕국에서 시작된다. 당시 참 족의 거점도시로 번영을 누렸고, 1858년 프랑스 점령기에는 안남 왕국 내 프랑스 직할 식민구역이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미군이 다낭항으로 상륙했고, 한국의 청룡부대 장병들도 이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렸다.

우기를 앞두고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일까. 이른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다. 행여 산에 오르면 더위가 가실까. 시내에서 20여분 거리에 오롯이 솟은 오행산으로 간다. 5개의 야트막한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오행산은 산 전체가 대리석이다. 그래서 영어 이름이 ‘마블 마운틴’이다. 5개의 봉우리는 목썬(木山), 호아썬(火山), 터썬(土山), 낌썬(金山), 투이썬(水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목·화·토·금·수’ 오행을 관장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 중 물을 관장하는 투이썬에는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156개의 계단을 거쳐 전망대에 오르면 이웃한 4개의 봉우리와 낮게 엎드린 마을, 짙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1~13세기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참 박물관은 다낭 시내의 유일한 볼거리다. 1915년 프랑스 동아시아 학회에서 설립한 박물관은 참 족과 관련된 박물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참 족이 남긴 300여 점의 아름다운 조각품이 이곳에 있다. 시내 복판에는 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다낭성당이 단아하게 앉아 있다. 중세 유럽풍으로 장식한 겉모양이 독특하다.

다낭은 무려 150㎞에 달하는 해안선을 끼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해변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중 미케해변이 유명하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해변은 20㎞에 달하는 백사장이 장관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휴양소로 사용한 미케해변은 개발이 덜돼 조용하고 한적하다.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자리한 바나산(해발 1487m)도 명물 중 하나. 5043m 길이의 케이블카가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세계에서 제일 길고 높은 케이블카다. 입장료가 나이가 아닌 키에 따라 매겨지는 점이 재미있다. 산정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더위를 피하기 위해 조성한 휴양시설이 거대한 성처럼 들어앉아 있다.

베트남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인 후에는 다낭에서 북쪽으로 130㎞ 떨어진 안남산맥 기슭 안남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 당대의 영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낭시내에서 우측으로 해변을 끼고 하이반고개를 넘어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관령쯤 된다. 산 밑에 뚫린 터널을 이용하면 7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굳이 이 고개를 넘는 것은 영국 BBC팀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절경 100곳’에 이곳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구름바다’라는 뜻의 해발 1172m 고개 정상에 오르면 다낭 시내와 아름다운 해안선이 한눈에 잡힌다. 고개를 내려서면 해변이 아름다운 랑코시티를 거쳐 후에에 이른다.

향(香)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후에는 황궁과 황릉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당대의 건축물이 온전히 남아 있어 우리나라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강 왼쪽으로 황궁이 우뚝 버티고 있다. 황궁의 성벽은 옹골차다. 높고 두텁고 견고해 마치 요새 같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만든 태화전과 오문, 현림각 등. 베트남전쟁 당시 폐허가 됐지만, 현존하는 유적만으로도 위용이 느껴진다.

응우옌 왕조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제4대 황제 투득과 제12대 카이딘 황릉도 볼만하다. 카이딘 황릉은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뒤섞인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끈다. 베트남 최초로 유리공예를 능에 사용했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후에는 불교의 핵심 근거지이기도 하다. 300년이 넘은 수십 개의 사원과 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향강 언저리에 우뚝 솟은 티엔무 사원이 대표적이다.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자 도시의 상징이다. 21m 높이의 칠층팔각탑과 시내까지 울려 퍼지는 범종이 유명하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30㎞ 떨어진 호이안은 옛 도시다.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도시 초기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해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마을은 투본강 북쪽 제방 위에 터를 잡고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15~19세기에 지어진 것. 시간이 멈춘 듯한 옛 도시는 경주의 양동마을과 서울 인사동을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다.

투본강 줄기를 가로지르는 내원교가 이곳의 명물 중 하나다. 다리 위에 목조지붕을 이고 있는 모양이 독특하다.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 마을과 중국인 마을이 마주보고 있다. 풍흥 고가, 쩐가 사당, 꾸언탕 가 등이 대표적인 볼거리. 등불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히는 야경이 멋스럽다. 미로 같은 골목에는 호텔과 식당, 바, 오래된 집과 그림 가게, 기념품 가게, 옷 가게 등이 빼곡하다. 중국·일본·프랑스 건축양식이 혼재된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변 선술집에 앉아 잠시 발품을 쉰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길거리에 가득하다. 강가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뱃사공들이 한가롭다. 투본강은 연인이 함께 배를 타고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이안의 밤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일까.

<다낭(베트남) | 글·사진 윤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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