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혼란 우려] 해외 상장기업 한국서 처벌시 현지서 '벌금폭탄' 가능성

2016. 7. 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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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한국 대기업 A사 임원은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에게 30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했다. 경쟁사 제보로 경찰에 적발된 A사 임원은 ‘대가성’이 없는 식사 자리였다는 점을 법원에서 입증해 형법상 뇌물죄는 피했다. 그러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게 됐고, 직원이 잘못하면 회사도 처벌받는 양벌규정에 따라 A사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 같은 사실은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대기업 적발 사례로 회자되면서 국내외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고, A사가 한국의 부패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소식은 미국 법무부(DOJ)에까지 흘러들어갔다. 결국 A사는 DOJ로부터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위반 여부에 대해 별도의 조사를 받게 됐다. A사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위반, 국외서도 리스크 요인

오는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업 임직원이 공직자에게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없더라도 기준 이상의 금품을 제공하거나 부정 청탁을 할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업 임직원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되면 양벌규정에 의해 법인도 처벌받고 부당이득 환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김영란법 위반 사실이 미국 수사기관의 안테나에까지 잡히게 돼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으로 ‘벌금 폭탄’까지 맞게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반부패 규정을 어긴 사실을 DOJ가 인지하게 되면 미국에서 최고 200만 달러에 이르는 과징금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 역시 최고 25만 달러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활동중인 국내 기업들의 법무 리스크 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현재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기업들은 물론 향후 이같은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거나 해외 증시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 역시 대폭 강화된 윤리경영 기준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미국 FCPA는 미국 기업이 외국 공무원에게 ‘사업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현금, 현금 지불에 대한 약속, 선물 등을 제공할 경우’ 막대한 액수의 벌금 등 책임을 묻는 부패방지법이다. 문제는 DOJ가 ‘미국 기업’의 범위를 굉장히 광범위하게 해석해 자국 기업과 동일한 처벌기준을 들이댄다는 점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SK텔레콤, 신한금융지주, 포스코, LG디스플레이, KT, 한국전력, KB금융, 우리은행 등 8개사뿐만 아니라 장외시장(OTC 마켓)에 해외주식예탁증서(DR)을 발행한 기업, 미국 업체와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 등이 모두 ‘잠재적 표적’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조금이라도 사업 연관성이 있는 기업이 공무원이나 공직 유관단체 관계자 등과 업무를 진행할 때 김영란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써야 하는 이유다. 다국적 법무법인인 커빙턴 앤 벌링 서울사무소의 박하용 변호사는 “미국 검찰은 전 세계를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일지라도 김영란법 위반으로 공무원에 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준 것이 문제가 되면 언제든지 수사망에 들어 FCPA 관련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물론 김영란법과 달리 미국 FCPA는 대가성이 입증돼야 죄가 성립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수사기관에 적발되면 대가성과 관련해 불복하거나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소송까지 불사했다가 졌을 때 입을 타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검찰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한국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에 지사를 설치했거나 합작법인 형태로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도 FCPA에 걸려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외국 기업들도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에서 김영란법을 위반할 경우 동일하게 처벌받기 때문이다.

일례로 IBM 코리아와 LG-IBM(LG전자와 IBM 코리아의 합작사)은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정부기관 전산장비 납품계약을 따내기 위해 한국 공무원들에게 수차례 금품과 룸살롱 접대 등 향응을 제공했다가 국내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이후 IBM 본사는 2011년 미국 측 당국으로부터 FCPA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뒤 1000만 달러(약 113억 800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다. 사실상 ‘뇌물’로 인정되는 금액 기준이 매우 낮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같은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美, 최근 5년간 공격적 적용

특히 미국 정부가 최근 5년간 FCPA를 공격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사업 획득·유지와 같이 직무와 관련해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미 FCPA 위반이 아닐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포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추세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실제 법을 위반하지 않았어도 미국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순간부터 법률적 대응 과정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고, 소송 이전에 유죄 인정을 종용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김영란법 위반으로 적발되면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해외 진출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민·형사상 위험에 대비하려는 기업들이 앞다퉈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염동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에 대한 수사가 빈발하게 되면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주체인 DOJ 등의 눈에도 쉽게 띌 수 있다”면서 “적발된 행위가 혹시라도 FCPA 적용 요건까지 충족하게 되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염 변호사는 “뇌물죄가 아니라 김영란법 위반으로 과태료 사안이 되더라도 미국 수사기관이 자기들이 볼 때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면 FCPA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김영란법의 경우 신고자 보상·보호 정책 덕분에 경쟁업체의 관련 제보도 늘어날 수 있고, 검경의 부패수사가 수월해져 기업이 수사에 더 노출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FCPA 위반으로 적발된 국내 기업은 없었지만 미국에서 문제삼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희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김영란법은 기존 뇌물죄의 범위를 굉장히 넓혀놓은 법”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뇌물 공여 행위를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추세이고 FCPA 위반으로 거액의 벌금을 문 기업은 공교롭게도 모두 미국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이라고 전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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