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 "넌 다음에 임신해" 강요된 양보..간호사의 눈물

임태우 기자 입력 2016. 7. 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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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기 어렵고, 임신한 이후 병행하기가 유난히 어려운 직업이 있습니다. 바로 '간호사'입니다.

그들은 임신하려면 따라야 할 암묵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병원 내 간호사들끼리 2명 이상 임신하지 않도록 순번을 정해 놓는 이른바 ‘임신순번제’입니다. 모든 병원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주로 24시간 병동을 지켜야 하는 3교대 근무형태인 간호부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습니다.

SBS 취재진은 실제 임신순번제를 경험했던 간호사를 만나서 어떤 식으로 순번제가 운영됐는지 자세한 내막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실상을 밝히면서, 임신순번제가 가임기의 당사자들에게는 가혹한 처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장 내 동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편집자 주>

▷기자: 현재 아이가 있나요?

▶간호사: 네, 둘 있습니다.

▷기자: 두 아이를 임신순번제에 맞춰 출산하신 건가요?

▶간호사: 네, 그래요. 2012년이랑 2015년에 첫째랑 둘째를 각각 낳았죠. 모두 제 임신순번에 맞췄습니다.

▷기자: 임신순번제에 대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언제죠?

▶간호사: 첫째 아이를 갖기 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선배님 한 분이 불임을 겪고 있어서 치료받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결혼하자, 임신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자세히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지금 불임 치료를 받고 있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임신 기회가 많다며, 근무가 안 돌아갈 수 있으니까 조금 늦춰서 임신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기자: 그러니까 선배의 말은 자신이 먼저 임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네가 순번을 양보해달라는 건가요?

▶간호사: 네, 맞아요. 같은 간호부에서 두 명 이상 임신 계획이 있을 땐 이렇게 ‘내가 먼저 할 테니, 넌 그다음에 해’라는 식으로 순서를 정하는 거죠.

▷기자: 병원에서 조직적인 지시로 내려오는 건가요?

▶간호사: 아뇨, 간호부 내에서 간호사끼리 암암리에 얘기하는 거예요. 물론 수선생님이 간호부의 전체 간호사 인력을 관리하고 배치하시기 때문에 임신순번을 정하고 난 뒤에는 수선생님들에게도 말씀드리죠. 같은 부서에서 절대로 두 명 이상 동시에 임신을 안 했으면 하고 말씀하시죠. 만약에 두 명 이상 임신하게 되면 임신한 간호사가 없는 다른 병동으로 인사조치를 받아야 한다는 사항도 명시하고요. 암암리의 룰 같은 거죠.

▷기자: 그런 임신순번을 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간호사: 병원이 24시간 운영되니까 한 달 야간근무를 다 채우려면 최소 필요한 인력이 있죠. 그런데 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죠. 이때 두 명 이상 임신해서 둘 다 야간근무를 빠지면 빈자리가 아주 커요. 결국, 다른 동료 간호사들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거죠.

▷기자: 교대근무는 어떻게 돌아가는데요?

▶간호사: 제가 있는 곳은 인력이 적을 땐 11명에서, 많으면 12명이 있어요. 이 인원으로 데이(낮), 이브닝(저녁), 나이트(밤)으로 나눠서 3교대로 일하고 있어요.

▷기자: 어쨌든 임신하면 야간근무에서 빠지는 것이군요?

▶간호사: 저희 병원은 아직, 임신이 위험한 기간에만 밤 근무를 빼주고 있고요. 초기만 안 하지, 임신 중기부터는 다시 하고 있어요.

▷기자: 임신한 몸으로도 밤 근무를 한다고요?

▶간호사: 임신하면 초기에 엄청 힘들거든요. 힘든데 밤 근무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밤 근무를 안 하면 선배들이 더해야 하니까 다시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자필로 동의서를 쓰게 해요. 사인도 하게 되고요. 내용은 제가 밤 근무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밤 근무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겠다는 내용이에요.

▷기자: 임신순번이 깨진 적은요?

▶간호사: 순번을 깨고 임신을 한 상황이 돼도 분위기상 말을 쉽게 꺼내기가 어려워요. 어린 친구들일수록 선배 간호사들이 야간근무를 더 많이 해야 하기에 눈치 보면서 말을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야간근무는 피할 수 없어요. 제가 아는 후배 둘도 임신 사실을 숨기고 야간근무를 했다가 자연 유산했죠.

▷기자: 그럼 눈치 보더라도 말하는 게 낫겠네요.

▶간호사: 막내 간호사가 결혼 전인데 갑자기 임신한 적이 있었죠. 수선생님은 막내 간호사에게 아직 결혼을 안 한 상황에서 임신을 한 거니까 결혼 이후 휴가를 받는 게 어떻겠느냐, 그 이후에 야간근무를 빼주겠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죠. 임신사실을 알렸어도 결혼 전까지는 야간근무를 해야 했어요.

▷기자: 임신순번에 대해 솔직히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간호사: 당사자들이 느끼기에는 참 불합리하죠. 요즘 불임에 유산까지 많은 상황에서 임신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순번에 맞춰 임신하는 것도 스트레스거든요. 굉장히 불합리하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순번을 안 지키면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아무 말 없이 따르게 되죠.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결혼한 여성 간호사 4천 명을 조사했더니 3백 명이 넘는 8.4%가‘임신 순번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임신순번제가 이미 오랜 관행처럼 계속 이어져왔고 지금에서도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인력 부족’ 탓입니다. 대체인력이나 모성보호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이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한, 임신순번제의 굴레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유지현/ 전국 보건의료 산업 노동조합 위원장 ]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인력이 OECD 국가 중 평균 절반 수준밖에 안 됩니다. 한 부서에서 동시에 두세 명이 임신을 할 경우,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으니 임신 순번제는 필수가 돼버리는 거죠. 법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바뀌어 그 법을 쫓아갈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는데, 병원계는 이런 인력 인프라가 없습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김미화 / 디자인 : 정혜연    

임태우 기자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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