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협소주택의 드라마틱 리노베이션

2016. 7. 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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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주택에서만 산 남자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여자가 만나 두 사람만의 첫 집을 지었다. 화사한 신혼집이 된 고척동 낡고 작은 집의 변신.

무모하지만 합리적인 도전

서울 구로구 고척동, 오래된 주택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친숙하다. 어릴 때 친구들과 뛰놀며 숨바꼭질하던 동네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골목 한쪽에 얼마 전 작은 건물 한 채가 새롭게 들어섰다.

“아저씨! 그거 집이에요?” “응.” “대박~!”교복을 입은 중학생 한 무리가 길 건너에서 목청 높여 묻는다. 흔히 보지 못한 생경한 모양새라 신기한가보다. 카페인 줄 알았다며 용도를 묻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이곳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튼 집주인 김한수, 김미영 씨에겐 이제 익숙해진 일상이다. 평생 마당 있는 단층집에서 살았다는 남편과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전부였던 아내. 결혼 후 첫 집으로 마련한 이 집이 낯설지만 즐겁다. 부부의 신혼집 짓기는 20평대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예산으로 시작됐다. 신혼이기에 자금이 넉넉지 않았고, 때문에 화려한 도심보다 다소 집값이 저렴한 동네의 괜찮은 컨디션을 가진 집들을 보러 다녔다. “이 집을 둘러보다 계단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어요. ‘여기로 할까?’ 둘이 동시에 말했죠.” 예산 안에 들어오는 가격도 매력적이었거니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면적이 부부만 사는 공간으로는 제격이었다. 둥근 모서리가 도로에 닿아 있어 동네에서 모난집이라고 불리던 옛 구옥은 그렇게 이들의 것이 됐다.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비슷한 부부는 건축가도 동시에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서울 도심에서 크고 작은 건물들을 디자인해온 조앤파트너스 조현진 건축가다. 부부와 건축가가 기존의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그려 만든 프로젝트는 7개월의 시간을 즐거운 이야기보따리로 가득 채웠다.

1 모서리 한쪽이 부드럽게 예각을 그리는 주택 외관. 원래 붉은 벽돌집이었던 구옥이 새하얀 옷을 입고 화사하게 다시 태어났다.

2 도로와 주변 건물로 땅의 경계가 지어진 모습이 재미있다. 주변의 다세대·다가구주택들 사이에 자리한 협소주택이다.

3 도로 북쪽 면에서 바라본 모습. 남쪽으로 긴 세로 창을 내 바깥으로부터의 시선은 차단하면서 채광을 확보했다.

4 두 사람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이제 막 신혼을 시작한 김한수, 김미영 부부의 모습.

신혼부부의 작은 플레이그라운드

집의 예전 모습은 한 층에 9평이 채 되지 않는 2층짜리 빨간 벽돌집이었다. 외관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고 내부 면적은 좁은, 전현적인 ‘구형 협소주택’이었다. 삼각형 모양 자투리땅에 들어선 집은 보기엔 낡았지만 구조는 튼튼했기에 신축보다는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혼부부의 예산 범위 안에서 진행된 공정은 콤펙트하고 간결했다. 철골조로 필요한 곳은 증축, 보강하고 기존의 벽체와 창문 위치 등을 최대한 활용해 공사비를 절약했다. 야외에 있던 계단을 실내로 들였고, 주차장을 포기한 대신 확보한 반지하 공간은 거실로 만들었다. 작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밀리미터 단위의 치수 조정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노력은 집 안 곳곳에서 느껴진다. 반지하부터 적극 활용한 집은 매 층마다 각기 다른 부실이 자리한다. 도로와 반층 정도 차이 나는 반지하에는 거실을 만들면서 1층 창을 아래까지 틔워 햇빛을 실내로 최대한 끌어들였다. 1층 주방과 식당은 원목 루버로 결을 연출해 따뜻한 분위기로 단장하고, 유리블록 사이로 간접 채광 효과가 나는 2층은 침실과 드레스 룸, 욕실이 있는 부부의 공간으로 꾸몄다. 3층은 옥상과 간단한 취사가 가능한 미니 라운지 바를 두었는데 마당이 없는 대신 옥상에서 단독주택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퇴근 후 마당 툇마루에 앉아 솔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는 부부의 오랜 꿈은 마당이 아닌 이곳 옥상에서 이루어진다.

동네의 분위기 메이커

“공정이 늦어져서 신혼여행을 다녀와 각자 집으로 갔어요. 두 달 동안 생이별을 했죠. 하하.” 집은 두 달여를 더 다듬어서 얼마 전 4월, 드디어 완전한 모양새를 갖췄다. 외관을 화이트와 그레이의 투톤으로 단장해 동네에서 화사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의 시선을 최대한 차단하지만 실내에서는 답답하지 않게끔 창을 만들었는데, 남쪽으로는 환기와 채광,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 세로 창을 냈고 도로와 면한 쪽 욕실과 파우더 룸 창은 우윳빛 비투시형 유리블록으로 만들어 외부의 시선을 받을 염려 없이 은은하게 실내를 밝히도록 했다. 가장 안쪽 계단실은 천창을 내 간접 광을 들였다. 걸터앉아 책을 읽고 싶을 만큼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이렇게 완성된 집은 조용한 환경을 즐기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부부에게 휴식이자 충전의 장소가 되었다. 창 밖으로 행인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거실 소파에 앉아 실내로 드는 그림자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부부는 햇볕 좋은 날이면 옥상에 빨래를 널고 친구들을 초대해 가벼운 담소도 즐기며,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한다.

1 주방과 큰 다이닝 테이블만을 둔 1층 모습. 일부를 지하층과 연결해 햇볕이 깊숙이 들도록 했다.

2 경사로에 자리해 반지층임에도 볕이 잘 드는 거실. 창을 1층과 연결한 뒤 천장 일부를 터서 햇볕이 더욱 잘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3 2층 부부 침실 옆에 있는 파우더 룸과 욕실. 벽면의 유리블록으로 간접 조명의 역할도 한다.

4 2층은 부부의 침실과 욕실, 드레스 룸만 있는 단출한 구성이다. 계단실 쪽으로 실내 창을 만들어 답답하지 않도록 했다. 인테리어는 화이트 컬러와 원목을 매치해 편안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도록 단장했다.

5 외관의 라운딩 진 유리블록 안쪽은 욕실 공간이다. 불투명 블록으로 디자인했는데 불을 켜지 않아도 하루 종일 밝다. 히노끼로 만든 작은 욕조 덕에 편백 향이 솔솔 풍긴다.

1 1층 안쪽에는 작은 세면대가 있는 손님용 화장실이 있다.

2 곳곳에 수납장을 만들고 창을 내 환기를 돕는 계단실.

3 세탁실을 3층에 만들어 빨래 널기에 좋도록 구성했고, 지인들과 간단히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조그마한 라운지 바를 마련해 단독주택 생활에 정취를 더했다.

4 기존 건물의 벽체를 활용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공간에는 수납장과 선반 등 쓸모 있는 붙박이 가구를 짜 넣었다.

1. 지하 1층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 공간.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은 남편의 작업실로 쓸 예정이다.

2. 1층 현관을 들어서면 넓게 트인 다이닝 룸과 주방이 펼쳐진다. 도로면으로 난 정사각형 창으로 채광이 풍부하게 들어온다.

3. 2층 부부만의 공간인 2층. 침실과 욕실, 드레스 룸으로 구성하고 사이에 작은 파우더 룸을 들였다. 문은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만들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4. 3층 심플한 라운지 바와 세탁실, 옥상이 있다. 대지가 좁은 탓에 옥상을 마당처럼 활용한 아이디어.

1. 지하 1층

2. 지상 1층

3. 지상 2층

건축가 조현진의 협소주택 리모델링 팁

합정동 잭슨빌딩을 시작으로 도심지에 크고 작은 건물을 짓고 고치는 조앤파트너스 조현진 건축가. 그는 도심지에 짓는 집의 경우 ‘채광과 통풍’, ‘실내 면적의 최대 확보’ 2가지를 중요하게 꼽는다. 고척동 리모델링 주택의 경우 다행히도 집이 도로와 옆 건물들의 주차장과 맞닿아 있어 빛을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 구조가 건재했기에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실내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단열도 바깥으로 둘렀고 내부는 일반적인 석고보드 마감이 아닌 미장 면을 곱게 샌딩한 뒤 친환경 페인트로 도장하는 방법을 사용해 약간의 면적이라도 아꼈다. 조현진 건축가는 리모델링의 경우 기존 구조가 약하면 보강하는 데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든다고 설명한다. 만약 지나치게 낡은 건물을 구매했다면 비용을 따져보고 신축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협소주택이라고 해서 평당 단가가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 작지만 모든 공정이 똑같이 들어가는 만큼 합리적인 공사 관리가 관건. 민원과 인건비 때문에 공사 기간을 타이트하게 잡아야 하는데, 여러 공정이 한꺼번에 투입되면서 복잡해진 현장을 관리하는 능력이 바로 공사비와 직결되는 것. 작은 집, 도시에 짓는 집일수록 이러한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건축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한다.


기획 : 정사은 기자 | 사진 : 양우상 | 취재협조 : 조앤파트너스 조현진 건축가 (www.cho-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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