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만 해서도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

권영미 기자 2016. 7.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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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쓰윤의 알바일지' 쓴 윤이나 씨
지난달 30일 오후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 윤이나 씨가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미쓰윤’은 14년간 단 한 번도 정규직이 되어본 적이 없다. 4대 보험의 혜택을 누린 적도, 적금을 들거나 자잘한 저축을 한 적도 없다.

심지어 1년에 통장잔고가 남아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여태껏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품는 일도 많다. 덕분에 한 끼의 밥을 시급으로 쪼개어보고, 원고지를 기준으로 글자수를 200으로 나누는 습관이 들었다.

한국의 최저시급으로는 도무지 생활이 감당되지 않아 몇년 전에는 시급 1만 6000원의 기회의 땅, 호주로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호주의 쇼핑몰에서 선글라스를 팔고 닭 공장에서 닭을 손질하기도 해 '글로벌적인' 알바(아르바이트)도 경험했다.

최근 출간된 '미쓰윤의 알바일지'(미래의창)는 공장 파트타임 노동자, 과외 선생님, 꽃 포장, 시상식 보조, 방청객 아르바이트, 뮤직바 서빙, 호주 닭공장 노동 등 서른 개에 가까운 아르바이트를 거친 알바생의 잔잔하지만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작가 윤이나 씨를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4년간 아르바이트와 프리랜서 일을 전전한 윤씨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마감에 맞춰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명명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주면서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삶의 형태도 있구나' 하고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알바만 해서도 살아남은 증거가 되었으면 한다" 고도 말했다.

다음은 윤이나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십여 년 동안 어느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다양한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다. 이를 부르는 직업명이 있나.

▶책 제목이 '알바일지'지만 나를 '알바생'이라고는 보기엔 개념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알바라는 게 학교다니면서 학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하는 부정기적인 일들 아닌가. 굳이 용어를 찾는다면 '프리터'(freeter, 평생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을 뜻함)인데 이도 딱 적합한 건 아니다. '프리랜서 마감노동자'가 정확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글을 쓰기에 '작가님' '저자님', 취재하는 일을 할 때는 '기자님', 칼럼을 쓸 때는 '칼럼니스트', 에코백 같은 가방을 제작할 때는 '사장님'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어떤 직업으로 규정되기 보다는 나는 '내 이름이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르바이트 성격의 일만을 하면서 산 데 대해 사회탓을 한 적은 없나.

▶사회탓을 한 적은 없다. 이를테면 어디가에 소속되고 취업하고 싶은 사람인데 그렇지 못하면 이런 식으로 사는 데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분명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기득권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내 경우는 내 삶의 책임이 내게 있다. 오히려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취업을 하라는 압력을 있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나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지점도 물론 있었지만 내가 이런 선택도 해왔고 그런 의미의 기록이 내 책라고 본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고 '금수저, 흙수저'같은 용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이같은 사회진단이 맞다고 보는가.

▶기성세대가 생각하듯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한다. 쉽게 비교하면 예전에 서울대 나오고 토익 900점이고 그러면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스펙이 더 좋은 데도 취직이 안된다. 이는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흙수저, 금수저 이런 거는 당연히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문제고 점점 계급적 차이가 공고해지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해외나 국내 인물 중에서 롤모델이 있나.

▶전에는 롤모델이 있었음 좋겠다 생각했었다. 이런 방식으로 살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되는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고. 한국에서 여성이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어떤 특정의 직업으로 묶이지 않고도 인정받고 잘 살고 있는 이의 필요성이 너무 절실하다. 그래서 페이스북 등으로 친구나 후배들에게 '우리가 잘 살아남아서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서로의 롤모델이 되어주자'고 글을 쓰기도 했다. 지금 롤모델을 찾기는 힘들고 같이 고생하는 30대 동료들을 보면 힘이 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은 '이 나라에선 롤모델은 커녕 죽지 않고 살아남는 정도로만 해도 너무 힘든 일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웃픈 노동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는가.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아, 이이는 참 비참하게 살았구나' 하는 식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통장 잔고가 0원인 적도 있었고 육체적인 노동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하고 회의한 적이 없다. 부자건 가난하건 간에 인간은 자기 손으로 밥벌이 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만큼은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인간으로 서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 성실히 일해온 과정이었고 그것을 책에 담았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삶의 형태도 있구나' 하고 알아줬으면 한다. 다만 한국에서 특히 여성으로서 이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고 '프리랜서가 되기로 한 사람은 좀 더 많은 불안감을 갖고 어두운 길을 안전장치 없이 가야 하는구나'하고 공감해주면 더 좋겠다.

-앞으로 수십 년도 이런 식으로 살 자신이 있나.

▶이렇게 살 자신이 있다. 잘 살 자신까지는 없고, 살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겠다, 안되겠다' 싶어서 호주를 갔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경험치도 더 쌓여있고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나가고 있다. 어떤 직업의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다. 놀 듯이 즐겁게 평생 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할까 여러가지로 궁리한다. 다만 이러면서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을 버는 게 관건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책이 많이 팔렸음 좋겠다. 많이 팔려 앞으로 무엇이든 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은 힘인 '통장 잔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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