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X파일] '유령 조희팔'에 드리운 유병언 그림자

류정민 입력 2016. 7.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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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유골 DNA 감정 통한 사망확인 없어..진술·모발·거짓말탐지기 근거로 '사망' 확정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다시 ‘유령’을 쫓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의 황당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진심으로 유령을 쫓고 있다.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유령의 이름은 바로 ‘조희팔’이다.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 다단계 사건, 그 정점에 조희팔이 있다. 피해자는 7만여명, 범죄 규모 5조715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건이다. 조희팔 일당에게 속아 피 같은 생돈을 날린 이들이 부지기수다.

시장 좌판에서 장사로 번 목돈을 모두 날린 사람부터, 자녀 결혼 비용을 날린 사람, 퇴직금 전체를 투자했다가 날린 사람까지 피해자의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조희팔 사건의 특징은 평범한 서민이 주된 피해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기범 조희팔 사망 발표. 사진=연합뉴스


그 피해자들이 조희팔을 쫓고 있다. 그런데 조희팔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2011년 12월19일 오전 0시15분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죽은 사람을 찾아 나서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까. 억울하고 다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그들은 조희팔은 유령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이 6월28일 대구지검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조희팔은 5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지만, 죽음의 과정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검찰은 2014년 7월 수사팀을 구성해 23개월 동안 ‘조희팔 의혹’을 파헤쳤고, 그 결과를 이번에 발표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다시 2011년 12월18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희팔은 그날 내연녀와 함께 중국 산둥성 위해시 소재 중신호텔에 있었다.

내연녀와 저녁 식사 이후 호텔 지하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셨다.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그날 밤 호텔 방으로 간 뒤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는 다음날 새벽 돌연사했다.

사람이 죽었다. 죽은 것을 본 사람이 있다. 죽기 전에 진료한 의사가 있고, 죽은 이후 사망을 확인한 의사가 있다. 장례식도 치렀다.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렇다면 조희팔 죽음은 기정사실로 봐야 할까.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장소는 중국이다. 한국의 수사당국은 중국 쪽에서 보내온 자료와 진술 등을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조희팔 /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공


조희팔은 살아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중국에서의 죽음은 조작됐다는 얘기다. 거액의 범죄수익을 숨기려고 ‘죽은 사람’인 것처럼 꾸몄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을 검증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대구지검이 마침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희팔은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은 그렇게 나왔다. 검찰은 죽은 사람임을 전제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조희팔은 사법 처리를 면하게 됐다. 이유는 물론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조희팔은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조희팔이 죽었다는 근거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경찰주재관을 통해 사망 직전 조희팔을 치료했던 중국인 의사에게 사진을 보여준 뒤 사망한 환자가 맞냐고 물었고, 맞다는 답변을 얻었다.

또 조희팔 사망을 목격했다는 2명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진행했고, ‘조희팔 사망을 확인했다’는 진술은 ‘진실’ 반응이 나왔다. DNA 검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희팔 사망 직후 채취했다면서 제출된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정한 결과, 조희팔 모발로 확인됐다.

의혹의 톱니바퀴는 하나하나 맞아서 하나의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면, 의사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면, 제출된 모발이 미리 준비해둔 조희팔 모발이라면 ‘죽음’을 확신할 수 있을까.

검찰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조희팔 유골에 대한 DNA 분석이다. 그 분석에서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조희팔은 죽은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

조희팔은 장례식을 치른 후 화장됐다. 한국에는 그의 유골이 도착했다. 유골 분석을 통해 조희팔 사망이 확정된 것일까.


검찰은 “조희팔 사망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화장된 조희팔의 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정’을 시도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고열로 염기서열이 멸실 또는 훼손돼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회신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조희팔 유골 DNA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람의 주장과 ‘조희팔 모발’이다. 그것만으로 조희팔은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조희팔 사건의 전개 상황은 다른 사건과 겹친다.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건이다. 유 전 회장은 백골이 된 시체로 발견됐고, 정밀 DNA 검사도 거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변사체 주인공은 유병언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병언은 살아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수사당국의 과학적인 검증 과정을 거쳤는데도 그 믿음에 변함이 없다.

유병언 사건보다 조희팔 사건은 검증 과정이 더 허술하다. ‘조희팔 유령’을 찾아내겠다고 공언하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조희팔을 실제로 찾아낼지, 영원히 찾아내지 못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찾아내는 데 실패하더라도 “조희팔은 살아 있다”는 그들의 믿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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