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딸들 먹고 살게 해주려다..롯데 '일감 몰아주기'의 비극

이소아 입력 2016. 7. 1. 00:02 수정 2016. 7. 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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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경영철학의 신격호 회장영화관 매점, 인쇄회사, 식당 등친족 여성에 작은 회사 만들어줘'공정 시장' 규제 강화 흐름과 배치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1일 신영자(74·사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검찰에 소환된다. 지난달 10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롯데의 대표이사급 임원들이 조사를 받고 있지만 총수 일가의 소환은 처음이다.

신 이사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갖는 의미는 드러난 것 이상이다. 그는 신격호(95) 총괄회장의 장녀로 ‘롯데가(家) 여성들’을 대표한다. 일선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롯데쇼핑(0.74%)·롯데제과(2.52%)·롯데칠성(2.66%)·롯데푸드(1.09%) 등 롯데 계열사 지분도 적지 않다.

신 이사장은 롯데 수사의 신호탄인 ‘정운호 게이트’와, 검찰의 핵심 수사 대상인 ‘일감 몰아주기’에 동시에 연루됐다. 검찰이 오너 일가의 부정을 정조준하고 있는 가운데 누나의 불명예는 신동빈(61)회장에게도 부담이 된다.

롯데 관계자는 “남매간 이미지가 연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 회장의 귀국 날짜를 신 이사장의 소환과 겹치지 않게 조율하는 논의를 할 정도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재계에선 신 이사장과 관련된 의혹의 대부분이 일감 몰아주기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감 몰아주기가 롯데에선 주로 오너 친족 중 여성들의 생계수단으로 ‘관행화’된 측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부거래는 그 자체가 위법은 아니지만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대주주인 총수의 사적이익을 늘리는 부당거래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매년 내부거래 현황을 조사하는 이유다.

신 이사장의 경우 인쇄업체 ‘유니엘’과 부동산 임대업체 ‘에스엔에스인터내셔널’, 패션·뷰티 브랜드 유통업체 ‘비엔에프통상’, 롯데시네마의 영화관 매점사업권을 독점했던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를 사실상 소유하며 각종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비엔에프통상은 신 이사장의 장남 장재영 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며, 그동안 면세점과 백화점 입점·공급을 대행하며 수수료를 받아왔다.

신 이사장뿐이 아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7)씨와 딸 신유미(33)씨는 롯데시네마 서울과 수도권 매점 운영권을 독점했던 유원실업, 롯데백화점 식당가의 알짜사업을 영위하는 유기실업을 소유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보수적인 신격호 회장은 집안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경영을 맡기지 않는 대신 먹고 살게는 해 준다는 원칙에 따라 작은 회사들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 이사장 역시 롯데쇼핑과 롯데호텔을 키운 주역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론 총괄회장이 경영자였고 그런 원칙에 따라 2012년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관행들이 결국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날로 강화돼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97년 관련 심사지침을 마련했고,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이 법에 따르면 그룹 오너 일가 지분 30%(비상장사 20%)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가운데 내부거래 매출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 이상은 규제 대상이다. 위반하면 대주주는 3년 이상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현대·한화·한진·CJ그룹과 하이트진로 등이 공정위 조사를 받았다.

롯데의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위 조사와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 이슈였다. 신동빈 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시네마통상·시네마푸드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로 신 이사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들의 일감 몰아주기 현황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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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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