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도 CEO 출신도..노인은 경비·청소밖에 할게 없어요

전정홍 2016. 6. 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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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고용률·빈곤율 둘다 OECD 상위일하는데 가난한 '고령화 한국' 민낯

◆ '100세 시대' 일자리가 답이다 ①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또 다른 이면은 고령화한 영국 내부의 '세대 간 전쟁'이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8%로 한국(12.9%)보다도 높은 영국에서 수적 우위를 차지한 노인들은 대영제국의 향수에 젖어 이민 반대 등을 외치며 역사의 물길을 바꿔놓았다. 젊은 세대는 "우리의 미래를 노인들이 결정했다"며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의 현재 모습은 한국에도 머지않은 미래다.

고령화 위기를 앞두고 매경미디어그룹과 보건복지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4월 노인 문제 타개를 위해 '100세 시대 신성장동력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손을 맞잡았다. 노후 준비와 연금소득이 부족한 현실에서 해법은 결국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보다. 이에 따라 매일경제신문은 기획 시리즈를 통해 고령화 해법으로 꼽히는 '노인 일자리'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3년 전 중견기업 관리직을 은퇴한 박 모씨(65)는 퇴직 후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다. 공학박사 출신으로 공장 설비관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재취업이 가능할 줄 알았지만 '낮은 생산성'을 이유로 고령자를 고용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열악한 급여의 경비나 청소가 박씨 연령대를 찾는 구인공고의 대부분이었고, 자재·창고 관리원이 그나마 수준 높은 직장이었다. 박씨는 "그래도 폐지를 줍지는 않아도 되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한국은 노년층의 빈곤율과 고용률이 동시에 최상위권인 '기묘한' 나라다. 2014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도 31.3%로 OECD 2위에 올라 있다. OECD 평균인 13.4%를 훌쩍 뛰어넘는다. 75세 이상으로 기준을 올리면 일하는 노인의 비율은 19.2%로 OECD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4.8%)의 4배에 달한다.

지금도 노인 고용률이 높은데 '일하고 싶다'는 노인 비율은 더욱 높다. 201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근로희망비율은 34.7%로 218만명이 근로 의사를 보였다. 노후를 지탱할 연금소득이나 노후소득을 책임질 수준의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 10명 중 8명(79.3%)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지은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1차적으로는 연금소득을 비롯한 노후의 소득보장책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 능력과 근로 의사가 있는 노인을 위한 '괜찮은' 민간 일자리가 부족한 점은 노년 빈곤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노인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34.8%는 경비·청소와 같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농·어업 종사자(29.6%)까지 더하면 노인 10명 중 3.5명만이 전문·관리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가운데 고용계약 기간이 1년을 넘는 상용직 근로자 비율은 12.3%에 불과했다.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넘기고서도 치킨집과 같은 자영업에 몸담고 있는 노인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경우다. 최소한의 자산도 없어 매일 새로운 일터를 찾는 임시직·일용직 노인 비율이 35%에 달한다. 심지어 여전히 '일하는 노인' 중 4.5%인 8만2000명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7명(68.7%)은 임금과 복리후생이 열악한 5인 미만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일하는 노인'의 85%에 달하는 '파트타임' 근로자들은 한 달에 평균 48만4000원을 받고 있다.

특히 양질의 노인 일자리 부족은 불과 5년 앞으로 다가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고령화와 맞물려 진폭을 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20년 등장과 함께 노인인구의 7.9%를 차지할 베이비붐 세대는 불과 7년 뒤인 2027년에는 노인인구의 절반을 넘어 52.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학력과 은퇴 전 소득이 현재 노인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베이비붐 세대와 기존 노인 일자리와의 '미스매치'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력만 놓고 봐도 베이비부머 가운데 대졸 이상과 고졸 비중은 각각 22%, 45%에 달한다. 이전 세대(1946~1954년)의 11.4%, 28.9%와 비교해 훨씬 높다.

현재 50대인 베이비부머들은 평균 자산이 3억5113만원, 월평균 가계소득은 346만원으로 높은 전문성과 함께 비교적 풍족한 삶을 누려왔다. 이런 그들에게 단순노무직이 눈에 찰 리 없다.

최성재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고령화로 인한 노인범죄 등 사회 부작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복지 지출을 늘려 노년층을 부양하는 시스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결국 기업과 연계해 지식과 경험이 있는 노인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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