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 집단성폭행' 피의자 부모 "이제와서 어쩌라고"

CBS노컷뉴스 김광일·송영훈 기자 입력 2016. 6. 29. 09:25 수정 2016. 6. 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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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나 지난 일인데 왜 그러냐" 외려 피해자 탓
(사진=송영훈 기자)
서울 초안산에서 고등학생 22명이 여중생 2명을 집단성폭행한 사건이 5년 만에 밝혀진 가운데, 피의자 부모 일부가 외려 피해자 탓을 하고 나섰다.

28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한 피의자 부모는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나서는 건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5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걸 갖고 왜 그러냐"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지나가다가 스칠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고 그러면 기분 나쁘다 얘기할 순 있다"면서 "이런 게 다 문제면 의사가 환자를 위로하려 팔을 쓰다듬은 것도 성추행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폭행 피의자 부모가 피해자 측을 비난하는 건, 자신이 지역 조직폭력배임을 과시하며 협박을 일삼거나 피해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12년 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일부 가해학생 부모들과 같은 모습이다.

또한 이 부모는 경찰 조사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피해자 말만 듣고 수사하는 거냐"며 "얘네가 성폭행을 했다는 증거가 있냐"고 반문했다.

아들의 급작스러운 체포 소식에 대해서는 "내가 엄만데 우리 애가 잡혀갔으면 왜 잡혀갔는지 나한테 얘길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기에서 시간 보내고 정신적 피해 본 것을 나중에 누가 보상할 거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이 나쁜 친구를 사귀었다고 해서 우리 아들까지 나쁘다고 볼 순 없다"며 "그럴 애가 아닌데 만약 얘까지 (성폭행을) 했다면 주변에 있는 애들은 전부 다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집단성폭행 뒤에도 죄책감 없이 살아간 가해자들

피의자 부모들의 행태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은 △수십명의 피의자가 △중학생 피해자를 협박·유인해 △고립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범행했다는 점 등에서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집단성폭행 사건과 닮아있었다.

경찰과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2011년 9월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모 씨와 동갑내기 동네 친구 22명은 여중생 A 양과 B 양을 서울 초안산 기슭으로 끌고 가 술을 먹여 혼절시킨 뒤,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

22명중 특수강간 혐의가 확인돼 구속되거나 영장 신청 예정, 혹은 군 당국에 이첩 예정인 건 정 씨 등 6명. 나머지는 강간미수 또는 방조 혐의를 받고 불구속 수사중이다.

정 씨는 일주일 전 같은 장소로 이 여중생들을 불러 같은 방법으로 정신을 잃게 해 4명이서 집단 성폭행하기도 했다. 친구 11명은 옆에 있었다.

앞서 도봉구의 한 골목에서 몰래 술을 마시던 A 양과 B 양을 정 씨가 발견하고 "술을 마신 것을 다 봤으니 학교에 일러 잘리게 하겠다"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평범한 대학생이나 직장인으로, 비교적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다"며 "이들은 처음에는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발뺌하다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정 씨 등 3명을 구속했으며, 최근 검거한 1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현역 군 복무 중인 12명에 대해서는 최근 방문조사를 마치고서 조만간 군 당국에 사건을 이첩할 예정이며, 나머지 6명은 강간미수 또는 방조 혐의로 불구속 수사중이다.

◇ 시그널 이재한 형사같은 도봉서 현직 수사관

사건 자체는 밀양사건과 판박이이지만 이번 사건이 밀양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은 것은 서울 도봉경찰서에 근무하던 김장수 경위의 끈질긴 수사 덕분이다.

김 경위는 지난 2012년 8월 다른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 여중생들이 사건이 알려지는걸 두려워해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사건은 내사 중지로 결론났다.

이후 김 경위는 정기인사로 다른 경찰서로 전출을 갔음에도 이 사건을 잊지 않았고, 올해 초 이 사건은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싶다며 도봉서로 돌아왔다.

형사 출신이지만, 이 사건을 맡을 수 있는 여성·청소년 전담수사팀에 자원해 그는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는 지난 2월 결국 피해자 A 양의 입을 열 수 있었다. 3년 동안 피해 학생들과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말문을 틀 수 있도록 기다린 덕이었다.

반면, 밀양 사건 당시 수사를 맡은 울산남부경찰서 담당자들은 피해자들을 향해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등 피해자 인권을 짖밟았다.

또, 당시 41명에 이르는 가해 학생들 대부분이 가벼운 처벌만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CBS노컷뉴스 김광일·송영훈 기자] ogeera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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