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오늘..비리로 지어진 백화점, 한순간에 무너지다

박성대 기자 2016. 6. 2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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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502명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역사 속 오늘] 502명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출처=위키피디아

1990년대 초 당시 단일매장 매출 기준 업계 1위 백화점인 서초동 삼풍백화점은 당초 아파트 상가 및 행정동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삼풍그룹은 이곳에 백화점을 지을 수 있게 용도변경을 신청했고 서초구청은 곧장 허가를 내준다.

이어 쇼핑공간을 넓히기 위해 기둥을 설계보다 25%나 줄이고 불법으로 한 층을 더 올리는 설계 변경까지 손쉽게 이뤄진다. 임의적인 용도변경, 부실시공과 불법 설계변경이 물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부패' 때문이었다.

구청장들은 건설업체에 뒷돈을 받고 속전속결로 허가를 해줬고, 이를 감시했어야 할 공무원들과 엔지니어들도 뇌물 앞에 침묵했다. 그렇게 1989년 12월1일 삼풍백화점은 화려한 개장식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준공이 5년도 채 안된 1994년 건물 내부에선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조금씩 일어나면서 재앙의 징조를 보였다. 기둥과 벽이 약하게 지어졌는데도, 매장을 무리하게 확장하고 옥상에 냉각탑까지 얹으면서 건물이 견뎌야 하는 무게만 늘었다.

이듬해인 21년 전 오늘(1995년 6월29일) 오전 삼풍백화점 A동 5층 식당가 기둥에 균열이 생기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4·5층만 폐쇄하고 백화점 운영을 강행했다. 이날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한 설계감리 회사가 '붕괴 우려' 진단을 내렸지만 눈앞의 하루 매출이 우선이었다.

오후 5시52분, 백화점 내부와 인근엔 15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국내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고는 불과 20초 만에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타워를 제외한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폭삭 주저앉은 것.

순식간에 건물 주변이 먼지로 가득찼고, 백화점 앞 우면로와 서울고등법원 청사엔 건물 파편들이 날아왔다. '아비규환'이었다. 살려달라는 비명과 신음이 참사현장에 울려퍼졌다.

범국민적 구호와 사후처리가 이어졌다. 장맛비가 내리는 폐허 속에서 생존자를 구해내는 모습에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결국 붕괴사고로 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이 부상당했다. 재산피해도 3460억원에 달했다.

붕괴 직전, 백화점 경영진 간부들은 피해가 생길 것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채 자신들만 백화점을 빠져나온 것이 밝혀졌다. 이들이 한 대처는 사고 몇 분 전 비상벨을 울린 게 전부였다.

특히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것은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것"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법원은 이 같은 책임을 물어 이 회장을 징역 7년6월에 처하고, 설계변경을 인가해준 전직 서초구청장 등 20여명에게 징역과 금고형을 내렸다. 하지만 총 사상자 1400여명이 발생한 참사의 책임자들이 받은 처벌로는 미미하다는 비난이 들끓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1998년 인근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참사 위령탑이 세워졌다. 현재 옛 삼풍백화점 터에는 2004년 D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박성대 기자 spar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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