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가슴 파고드는 말 한마디의 카타르시스

2016. 6. 2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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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실 비틀어 비추는 '세태어의 사회학'
[동아일보]
《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최근 700만 관객이 찾은 영화 ‘곡성’에서 딸 효진(김환희)이 아빠 중구(곽도원)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절규하듯 말하는 대사다. 영화 속에서 일본 외지인(구니무라 준)에게 험한 일을 당했는데도 속도 모르고 이것저것 묻는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딸의 심경이 담겨 있다.이 대사는 최근 예능 프로의 자막, 광고 카피 등에서 널리 쓰이며 이른바 ‘세태어’의 반열에 올랐다. 이는 시대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를 콕 집어 낸 표현을 뜻한다. ‘뭣이 중헌디’는 영화 속 상황처럼 답답한 심정일 때도 쓰지만 정보 홍수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는 세태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말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 ○ 세태어,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세태어는 주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는다. 방송인 김흥국을 통해 유행어가 된 “너, ○○에 왜 안 왔어?”라는 말은 출세를 위해선 경조사를 챙겨야 하는 세태가 담겨 있다. 영화 ‘베테랑’(2015년)에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말한 “어이가 없네”는 작품 속에서는 안하무인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현실에서 이 대사는 의미가 확장돼 우리 사회의 리더십이 본질적 해결이 아니라 임시 처방 수준에 머무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사용됐다.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을 통해 화제가 된 “∼라고 전해라”도 직접 쓴소리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태어는 비판 못지않게 놀이처럼 쓰이기도 한다. 최근 관객 400만 명을 넘은 영화 ‘아가씨’ 속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가 그렇다.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고(高)칼로리 음식의 유혹이 있을 때, “…, 나의 다코야키, 나의 문어 숙회”처럼 패러디되기도 한다. 영화 ‘내부자들’(2015년) 속 안상구(이병헌)의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은 망가짐을 개의치 않는 요즘 시대에 “똥 먹는데 밥 얘기 하지 마”(밥 먹는데 똥 얘기 하지 마), “장난 지금 나랑 하냐”(지금 나랑 장난하냐) 등으로 변용해 웃음을 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세태어는 단순 유행어와 달리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들거나 감각적인 재미를 줄 때 확산되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고 말했다.

○ 생명력 길고 쓰는 사람에게도 좋은 세태어

세태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이정재의 대사인 ‘나랑 얘기 좀 할까’가 현장에서는 화제를 모아 개봉하면 ‘뜰 것 같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반향이 없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확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력이 길어 ‘고전(古典)’으로 불리는 세태어도 있다. 영화 ‘친구’(2001년)에서 준석(유오성)의 “우리 친구 아이가”와 교사가 동수(장동건)에게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고 묻는 대사는 지연 혈연 학연 등 ‘연(緣)’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고질적 세태를 파고들어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된다. 영화 ‘타짜’(2006년) 속 정 마담(김혜수)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지금도 허영심을 꼬집는 대명사로 꼽힌다.

세태어는 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남궁기 교수는 “평소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도 세태어를 쓰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며 “의학적으로 말하면 이른바 ‘건강한 퇴행’으로 쓰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 주며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도 “세태어는 압축적인 말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기에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대화 상대가 세태어를 잘 모르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세태어를 쓰면 불편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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