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성능은 곡선에서 갈린다

김창훈 입력 2016. 6. 2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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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시험대' 곡선 주로에서의 코너링이 곧 기술력

요즘 나오는 자동차 중 쭉 뻗은 직선 도로에서 고속 주행이 불안정한 차는 거의 없다. 하지만 원심력이 작용하는 곡선 주로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곡선 주행(코너링)의 안전성은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과 직결된다. 비나 눈이 내려 노면이 젖었을 경우 주행의 질에는 더욱 선명한 차이가 생긴다.

이름은 달라도 목적은 안전성

차 옆으로 힘이 작용하는 곡선 구간에서의 안전성은 일차적으로 튼튼한 차체와 바퀴의 접지력이 좌우한다. 따라서 2개의 바퀴만 동력을 받는 전ㆍ후륜 구동방식보다는 네 바퀴가 모두 힘을 받아 구르는 사륜구동이 안정적이다.

A6의 콰트로 시스템 조감도. 아우디 제공

아우디가 1980년 세계 최초로 승용차에 적용한 기계식 상시 사륜구동 기술 ‘콰트로’는 곡선 구간에서의 안전성을 끌어올렸다. 콰트로는 평소엔 엔진의 동력을 앞바퀴와 뒷바퀴에 4대 6의 비율로 보내지만 주행상황에 따라 앞(최대 70%)이나 뒤(최대 85%)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이 기계적으로 이뤄져 반응속도가 빠르고 신뢰도가 높다.

명칭은 다르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4매틱’, BMW의 ‘x드라이브’, 폴크스바겐의 ‘4모션’ 등도 네 바퀴를 굴리는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콰트로와 차이가 있다면 전자 제어장치로 작동하는 전자식이다. 전자식은 기계식보다 가볍고, 앞뒤 동력 분배 폭(0~100%)이 더 넓다.

국산차 중에서는 현대자동차가 2013년 말 ‘제네시스(DH)’에 처음 탑재한 사륜구동 시스템 ‘H트랙’이 있다. H트랙도 센서로 주행상황을 감지해 구동력을 제어하는 전자식이다. H트랙은 ‘제네시스 EQ900’와 다음달 출시되는 제네시스(DH)의 부분변경 모델인 ‘G80’에만 탑재된다.

2012년부터 모든 승용차에 의무적용 된 ‘차체자세제어장치(VDC)’도 곡선 주행 때의 안전성을 높여준다. VDC는 회전할 때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쪽이나 바깥쪽 바퀴의 제동력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ABS 브레이크, 구동력제어장치(TCS) 등과 연계해 작동하는데 이것도 업체마다 이름이 제각각이다. BMW는 DSC, 메르세데스-벤츠와 르노 등은 ESP, 도요타는 VDIM이라고 한다. VDC를 썼던 현대차는 몇 년 전부터 VDC를 좀더 발전시킨 차체통합제어시스템(VSM)을 사용하고, 포르쉐도 통합제어시스템을 뜻하는 PDCC를 쓴다.

ESP가 적용된 카고 트럭이 회전 주행 시범을 보이고 있다. 만트럭버스 제공

국내에서는 대형 화물차에 이 시스템 의무적용이 논의되는 단계인데 유럽에서는 2011년부터 출시된 신형 화물차에 다 들어갔다. 만트럭버스코리아 관계자는 “ESP를 탑재하면 차량 단독 사고율을 44% 줄일 수 있다”며 “특히 액체류를 운반하기 때문에 회전 구간에서 더 위험한 탱크로리 등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바퀴 힘 분배하는 토크 벡터링

모터스포츠를 통해 연마된 코너링 기술은 양산차에도 폭넓게 적용되는 추세다. 최근 수입차들이 신차 출시 때 강조하는 ‘토크 벡터링’도 그 중 하나다.

토크는 엔진이 축을 돌리는 회전력, 벡터는 힘과 방향을 동시에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우리말로 풀면 각 바퀴에 회전력을 분배하는 게 토크 벡터링이다. 바퀴의 제동력을 조절한다는 점에서는 VDC 등과 같은 원리다. 다만 VDC가 곡선 구간에서 차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주 목적이라면, 토크 벡터링은 보다 빠르고 역동적으로 곡선 주로를 달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쪽 휠에는 제동력을, 바깥쪽에는 토크를 더 보내는 토크 벡터링 원리. 재규어 제공

재규어는 세단 ‘XE’와 ‘XF’, 2인승 스포츠카 ‘F타입’을 비롯해 올 하반기 출시하는 첫번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F페이스’에 토크 벡터링 기능을 탑재했다. 회전 구간에서 안쪽 휠에는 제동력을 가하고, 동시에 바깥쪽 휠에는 더 많은 동력을 보내 코너링 성능이 향상된다.

지난해 국내에 시판된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포르쉐의 ‘카이엔 터보 S’에도 비슷한 기능이 들어갔다. 이미 대형 세단 ‘MKS AWD’ 등을 통해 토크 벡터링을 선보인 포드는 올 하반기 국내에 출시하는 ‘올 뉴 링컨 컨티넨탈’에 보다 향상된 시스템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바퀴와 함께 뒷바퀴의 각도까지 바꿀 수 있는 사륜조향 수입차들도 늘어나고 있다. 포르쉐 ‘911 터보’의 경우 시속 50㎞ 이하에서는 운전대를 돌리는 방향과 반대로 뒷바퀴가 최대 3도 돌아가고, 80㎞ 이상에서는 운전대와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가 움직여 회전반경을 줄인다.

올해 3월 출시된 아우디의 최상위 SUV ‘Q7’도 같은 방식의 사륜조향이다. 저속에서 Q7의 회전반경은 동급 SUV 중 가장 짧은 11.4m다.

액티브 커브 시스템이 적용된 GLE 63 4매틱.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메르데세스-벤츠는 코너링 때 회전각을 줄여 안전성을 높이는 ‘액티브 커브 시스템(ACS)’을 사용한다. 국내 판매 모델 중에는 ‘GLE 63 4매틱’에 적용됐다.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 없는 전기차 시대가 열렸고, 자동차가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달리는 가전제품’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곡선 주행을 정복하기 위한 치열한 연구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차의 본질은 기계이고, 주행 안전성은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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