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 터진 유럽.. 분열·충돌 '화약고'로

런던/장일현 특파원 2016. 6.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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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反세계화의 서막] [1] 유럽, 분열의 화약고로 영국發 대혼란 - EU "빨리 떠나라".. 英 "서두르지 않겠다" 영토문제 재발 - 스페인, 영국에 "지브롤터 지배권 반환하라" EU탈퇴 도미노 - 佛·네덜란드·체코 등 국민투표 추진 公言 英입국심사 시설 있는 佛칼레 "업무시설 英으로 철수시켜라" 유럽내 反난민·反EU 정서 확산 각국 민족·국수주의 정당 인기, 내년 佛대선·獨총선서 약진할듯 오늘 獨·佛, 내일 EU 정상회의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따른 탈퇴 협상 개시 시점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EU는 "빨리 떠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고, 영국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 EU 순회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24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영국이 되도록 조속히 탈퇴 절차를 시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U 수뇌부는 "(탈퇴 번복을 위한) 재협상은 없다"고도 했다. 슐츠 의장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협상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은 유럽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라며 "유럽 전체가 영국 내부 문제의 인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독일·프랑스 등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 6국 외교장관들도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영국이 빠른 시일 안에 탈퇴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EU가 영국에 조기 탈퇴를 주장하는 것은 브렉시트 사태를 최대한 빨리 수습해 EU 탈퇴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을 막자는 뜻이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프랑스·네덜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EU 탈퇴 국민투표 실시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반면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등 영국 내 EU 탈퇴 진영은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오는 10월 후임 총리가 탈퇴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 정상들도 숨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7일 만날 예정이며, 이어 28~29일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가 열린다.

유럽 대륙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음 달부터 EU 순회 의장국을 맡는 슬로바키아를 비롯해 곳곳에서 EU 탈퇴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령 지브롤터 등지에서는 독립과 영토 분쟁 조짐마저 일어나는 등 유럽 곳곳이 급속하게 균열과 갈등의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25일자에서 "(브렉시트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앤 애플바움은 "(브렉시트의) 이혼 절차를 따르는 느리고도 극심한 고통이 영국과 EU 회원국들의 귀중한 정치적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을 수 있다"고 했다.

300여 년간 영국 일부였던 스코틀랜드는 2014년에 이어 두 번째 독립 투표 실시를 기정사실화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독립당(SNP) 대표 겸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24일 "새로운 독립 투표 실시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스터전 수반은 "이번 브렉시트 투표에서 스코틀랜드 국민의 62%가 EU 잔류를 선택했다"며 "이런 의사를 무시하고 EU를 떠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영국령 지브롤터의 지배권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호세 마누엘 가르시아 마르갈로 외무장관은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지브롤터에 스페인 국기가 휘날릴 날이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1단계로 영국과 스페인이 지브롤터를 공동 관리하는 과도기를 거쳐, 2단계로 지브롤터 지배권이 완전히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거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브롤터는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스페인은 18세기 초 에스파냐 계승전에 참전했던 영국에 이곳 주권을 양도했다.

프랑스 북부 칼레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영국의 입국 심사 업무를 놓고도 영국과 프랑스 간 갈등이 불거질 전망이다. 영국은 2003년 프랑스와 체결한 '투케 협약'에 따라 영국으로 오려는 사람에 대한 입국 절차를 칼레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다. 칼레 지역 정부와 정치인들은 올랑드 행정부에 "칼레 지역 영국 입국 심사 시설을 영국으로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6일 보도했다.

유럽에 반(反)난민·반(反)EU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주요국의 정치 지형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 소속 마린 르펜 대표의 돌풍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4월 일간 르파리지앵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르펜 대표는 1차 투표에서 31%를 차지해 1위로 결선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번 브렉시트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르펜 대표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6개월 이내에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내년 10월 실시되는 독일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독일 정계의 주류인 사회민주당(SPD)을 누르고 2위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약진했던 AfD는 최근 정당 지지율에서 15% 안팎의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오는 2018년 총선이 예정돼 있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폴란드, 스웨덴 등에서도 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 또는 포퓰리스트 정당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어, 언제든 EU 불안정을 가져올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U와 유럽 주요국은 EU 체제 안정에 부심하면서 개혁안 마련에 들어갔다. 이번 투표에서 표출된 이민자에 대한 반감, 테러 등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이 없어도 EU는 견딜 수 있다"고 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EU는 과거와 같을 순 없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이민 분야에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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