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은 교수의 노예..노벨상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죠"

입력 2016. 6. 26. 19:36 수정 2016. 6. 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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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작가 염동규씨

화제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책 출간
스토리작가 참여한 염동규씨 인터뷰
제자 성추행, 조교 폭행, 논문 도둑질…
교수 ‘갑질’에 멍든 상아탑, 내부고발

염동규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학술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교 주제에 교수를 남겨놓고 버스를 출발시켜?” “죄송해? 죄송하면 무릎 꿇고 싹싹 빌어.”

한 교수가 늦게 온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세미나 장소로 먼저 출발했다며 2시간여 동안 자신의 조교를 폭행한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1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웹툰일 뿐이라고? 2010년 실제 고려대에서 발생한 일이다. 해당 교수는 제자들에 대한 상습적 폭행·폭언이 문제가 돼 올해 초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를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 화제를 모은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 지난 17일 책으로 출간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포털 등에 연재한 11편을 묶었다. 웹툰의 스토리작가로 일한 염동규(25·사진)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원총) 학술국장은 책의 서문에서 “대학원생의 문제를 지금처럼 외면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노벨상 같은 건 꿈조차 꿀 수 없을 것”이라며 “대학원생 연구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한국 학계의 미래, 학문의 발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적었다.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원총 사무실에서 만난 염 국장은 “단순히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노예다’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을 너머 우리 사회가 그런 대학원생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염 국장은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2014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서 입상해 등단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웹툰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대학원생들이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자극적이다, 과장 아니냐는 반응들도 있지만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게 각색을 할 뿐 제보 내용을 과장하거나 부풀리는 일은 없어요. 오히려 너무 자극적인 내용을 빼다 보면 실제 제보보다 축소되는 때도 있어요.” 여자 제자들에 대한 남자 교수들의 성추행 문제를 다룬 ‘3화 계속할 수 있을까?’ 편에서 교수가 제자를 상대로 한 말(“우리 ○○가 말이야, 아직 신입이라서 모르는 게 많지? 내가 따로 여러 가지 가르쳐 줄 수가 있어요. 내 학생만 아니면 어떻게 한번 해볼 텐데…”)에는 원래 “모텔 가서 지도 받을래?”라는 멘트도 있었다. “교수들의 성추행 발언은 워딩(말 표현)까지 똑같은 사례가 너무 많아요. 제보받으면서 우리끼리 ‘이 말은 진짜 맨날 나오네’ 그래요.”

이런 피해사례는 특정 개인의 불운이 아닌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이 처한 보편적인 문제들이다. 2014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에서 응답자(2354명)의 45.5%는 언어·신체·성적 폭력, 차별, 사적 노동, 저작권 편취와 같은 ‘부당한 처우’를 한 가지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대학원이라는 집단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교수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웹툰은 사실상의 ‘내부 고발’이다.

교수의 연구비 횡령이나 논문 대필 등 범죄에 가까운 일들도 주요한 에피소드다. 밤낮을 새워 실험을 진행하고 완성한 논문이 지도교수 한마디(“이거 그대로 ○○한테 넘겨”)에 공동논문이 되어버리는 ‘연구 성과 도둑질’(2화 이해하는 학생)이 대표적이다. ‘돈이 안되는 학문’의 박사과정에 다니면서도 ‘이 학문은 앞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자부심으로 일하던 한 대학원생은 교수 지시로 혼자 완성한 논문에 선배와 공동으로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 선배는 이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학생인 줄 알아? 착각하지 마. 우린 노예야. 인기도 없고 연구비도 적게 받는. 노예 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노예.”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제6화 논문대필자의 생’의 한 장면.

웹툰이 연재되는 동안 고려대 원총은 전국 대학원생들의 ‘인권침해신고센터’가 됐다. 논문 조작을 한 지도교수 탓에 학교로부터 “교수와 함께 60억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한 성균관대 학생 3명의 사연을 웹툰으로 만들어 곧 ‘특별판’으로 인터넷에 게시할 예정이다. “당사자분들이 직접 이메일을 주셨어요. 제보자의 학교에도 원총이 있는데도 저희한테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고려대 원총과 염 국장은 오는 11월을 목표로 시즌2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만 보던 ‘조교 근무환경 실태조사’나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같은 자료들을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웹툰의 영향이 크죠.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는데,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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