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기관 전산망에 안 뜨고.. 내비도 모르는.. '길 못 찾는 주소'

2016. 6. 2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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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가족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난 회사원 신모(39)씨는 식당을 찾는 데 1시간을 허비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식당의 도로명주소가 내비게이션에 뜨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도로명주소에 맞춰 인근까지 갔지만 식당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맸고, 결국 식당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식당 주인은 “도로명 주소 말고 번지수로 검색해야 정확한 위치가 나온다. 이런 경우가 잦다”고 알려줬다. 이씨는 “즐거운 휴가 시작부터 짜증만 났다”며 “도로명주소가 도입된 게 몇년째인데, 아직 길도 제대로 못 찾겠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2. 한 카드회사의 사은품 행사에 당첨된 회사원 정모(33·여)씨는 상품을 수령하기 위해 카드회사에 문의했다가 진땀을 뺐다. 정씨는 콜센터 직원에게 카드번호와 주소 등 개인정보를 알려줬지만 정씨의 집 도로명 주소는 카드회사 전산망에 뜨지 않았다. 15분간의 실랑이 끝에 정씨는 도로명 주소 대신 지번 주소를 확인해 사은품을 받을수 있었다. 정씨는 “지난해 이사하면서 도로명 주소만 외웠는데, 각 기관 전산망에 등록이 되지 않아 불편을 겪을 때가 많다”고 불평했다.

2014년 1월 도로명주소가 법정주소로 전면도입된 지 3년째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도로명주소가 성공리에 정착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은 도로명주소 사용에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을 결정한 것이 21년 전, 법령을 제정한 지 10년이 넘은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준비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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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비용 감소와 편의성 위해 도입

26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도로명주소는 16만2086개에 이른다. 정부는 1918년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지번주소가 도시화·산업화 등 각종 개발로 인해 지번의 순차성이 훼손돼 찾기가 어렵고, 막대한 물류비용이 초래된다는 점에서 1996년부터 주소제도 정비에 돌입했다. 1번지 옆에 60번지가 나타나고, 하나의 지번에 여러 개의 건물이 존재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던 것이다. 이후 2005∼2006년 연구용역에서 도로명주소 도입 시 물류비용 등 연간 4조3000억원의 비용절감효과가 있고, 순찰차 출동률이 향상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힘을 받아 2007년 도로명주소법이 제정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도로명주소를 법정주소로 채택하지 않은 곳은 일본뿐이라는 점도 도로명주소 도입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도로명주소에 대한 인지도와 활용도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행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도로명 주소 인지도는 97.5%, 활용도는 74.1%에 달한다.

◆도로명주소는 여전히 ‘공사 중’

하지만 정부의 ‘아전인수격’ 홍보와 달리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두개의 도로에 하나의 도로명이 붙는 등 ‘1도로 1도로명’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조차 무시된 사례가 많다. 정부가 ‘비체계적’인 지번주소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도로명주소 도입부터 비체계성이 드러난 셈이다. 초기에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정부가 수정에 나섰지만 몇년 새 주소가 3번이나 바뀌면서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종속구간’이다. 정부는 도로명주소법 시행규칙을 통해 ‘도로가 100m 미만이거나 20개 미만 건물의 막다른 골목’인 종속구간에 대해서는 도로명주소를 따로 부여하지 않고 주변도로명을 쓰도록 했다. 두개의 도로에 하나의 도로명이 붙은 것이다. 예측 가능한 주소체계를 통해 물류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도로명 주소체계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전국에 종속구간은 67만여개에 이른다. 행자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 이런 지적을 받고 해당구간에 대해 도로명 변경을 논의했지만 지자체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행자부는 앞으로 100m 미만 규정을 줄이는 방식으로 종속구간 논란을 해소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부터 사상구, 사하구를 거쳐 서구 서대신동을 잇는 낙동대로를 가리키는 도로명주소 표지판.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나의 도로에 두개의 명칭이 존재하는 사례도 있다. 각 지자체별로 도로명을 정하다 보니 두개의 지자체에 연결된 하나의 도로에 지역경계를 기준으로 두개의 도로명이 생긴 것이다. 행자부는 이에 대해 “2009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각 광역자치단체와 행자부 장관이 하나의 도로명으로 통일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모두 일원화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행자부에서 광역자치단체 경계를 넘나드는 도로 337개에 대해 일원화 작업을 마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이 두개의 기초자치단체에 걸친 도로명 주소를 통일한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도로명이 바뀐 사례는 1000개 이상될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도로명주소 부여로 인해 수천개의 도로명이 시행 3년 만에 두차례나 바뀌며 그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민간업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기존에 제기된 문제들을 수정해 조속한 시일 내에 안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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