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세에도 송아지 번식농은 줄고..쿠오바디스 한우값

2016. 6. 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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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마리 1천만원도…경차값 수준
저렴한 가격 길들여진 소비자들
‘언제 다시 싸지나’ 입맛 다시지만

쇠고기는 생산 착수→출하 40개월
일반 농작물보다 훨씬 길어

이번엔 가격방향 예측 더 어려워
수요-공급 예측 잘 못하는 농업행정
번식농 반토막, 송아지 생산 기반 붕괴

김영란법도 변수로 등장

*누르면 확대됩니다.

한우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일부 공판장에서 마리당 1000만원이 넘기도 해 소 한 마리가 경차 한 대 값이다. “소값이 개값만 못하다”며 축산농민들이 울부짖고, 싼 쇠고기값에 정육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게 엊그제 같은데, 고기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한우를 식탁에서 마주할 기회가 뜸해진 소비자들은 헛헛할 수밖에 없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수산물 유통정보를 보면, 지난 22일 기준 한우 1등급 등심 평균 소매가격은 100g당 7685원으로 1년 전(6461원)보다 18.9%, 최근 5년 평균값(5973원)보다는 28.7%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를 넘을까 말까 한 상황이라 한우값 급등은 체감 정도가 높다.

불과 4년여 전이다. 2012년 1월5일 전국 한우 축산농민들이 소값 폭락에 항의하며 트럭에 소를 싣고 청와대로 향했지만 고속도로 톨게이트마다 진을 친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농협중앙회 자료를 보면, 수소 평균 산지가격은 1997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계속 올라 2010년 527만5246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듬해 319만3000원으로 40%나 주저앉았다. 2013년까지 300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소한테 먹인 사료값도 건지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농가들은 소 한 마리마다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100만원 이상 적자를 봤다.

저점을 찍은 한우값은 다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이형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우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요가 많이 늘었다. 싸니까 사람들이 많이 먹게 됐다. 싼값에 한우를 먹을 수 있는 정육점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가격이 폭락했으니까 소를 덜 키웠고, 그러다 보니 공급이 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가축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한우·육우 사육두수는 2012년 사상 최초로 300만마리를 돌파한 뒤 지난해 265만9000마리까지 줄었다. 충북 옥천에서 40년째 소를 키우는 김남용 옥천농장 대표는 “몇 년 동안 적자를 보다가 이제야 가격이 다시 자리를 잡은 거다. 원래 한우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었다. 지난 2~3년 동안은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음식이 된 것이다. 이제 막 다시 자리를 잡고 있는 건데 한우가 비싸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소 산지가격은 493만원으로 아직 2010년 가격을 넘지 못했다. 농가 입장에서는 2010년 이후 가격 폭락 때 한우 맛을 들인 소비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한우 가격 변동에는 수요공급의 원리가 일차적으로 작용한다. 2011년 가격 폭락 원인은 공급과잉이었다. 공급과잉의 배경에는 10년 넘게 이어진 가격 상승이 있다. 1995년 마리당 평균 380만8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찍은 수소 산지가격은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1998년 240만8000원으로 뚝 떨어졌다. 대기업들이 우르르 무너지고 실업자가 넘쳐나던 때였으니 많은 소비자들이 한우를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격 폭락에 농가들은 한우 사육을 대폭 줄였다. 1996년 284만3535마리였던 한우·육우 사육두수는 1999년 200만마리 미만으로 크게 줄었다. 2000년대 들어 경기가 살아나자 사람들이 다시 한우를 찾기 시작했다. 2000~2002년 한우값은 1년에 20%씩 올랐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따라 늘어나는 게 시장 원리이지만, 쇠고기는 공급이 곧바로 늘어날 수 없다. 소의 임신 기간은 10개월이고, 한우는 보통 30개월을 키워 도축한다. 농민들이 공급을 늘리겠다고 결심하고서 40개월이 지나야 실제로 시장에 공급이 되는 것이다. 사육두수는 2003년까지 150만마리를 밑돌다 2004년에야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농가 입장에서는 호재도 이어졌다. 2001년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으로 한우 농가들이 긴장했던 것도 잠시,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됐다.

그렇다고 농가들이 경쟁 상대의 악재에만 기대 이익을 본 것은 아니다. 한우 경쟁력 향상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1992년 처음 도입한 쇠고기 등급제가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1, 2, 3등급이 전부였다. 농가들은 사육 기술을 발전시키고 품종 개량을 거듭하며 한우 고급화에 성공했다. 1997년 1+등급이 새로 생겼고, 2004년 1++등급이 추가됐다. 2009년에는 생산이력제까지 도입해 한우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

경쟁력을 확보한 한우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에도 가격이 계속 올랐다. 너도나도 한우를 길렀다. 퇴직금으로 송아지를 사 농가에 위탁하는 ‘송아지 펀드’까지 생겼다. 2003년 이후 사육두수가 매년 20만마리씩 늘었다. 이형우 전문연구원은 “2009년부터 한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열된 시장에서 이런 경고는 마이동풍 격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2010년께 한우 공급량은 임계치를 넘겼다. 12년 만의 가격 폭락에 농가도, 정부도 당황했다. 자살하는 농민도 나왔다. 서둘러 사육두수 감축에 나선 정부는 새끼를 낳는 암소를 도축하거나 한우 사육을 포기하는 폐업 농가에 지원금을 풀었다.

2012년 305만9000마리로 정점을 찍은 사육두수는 2015년 265만9000마리까지 줄었고, 가격은 다시 급등하는 중이다. 그럼 이제까지처럼 가격 상승이 공급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인 공급과잉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리는 순환 메커니즘이 다시 작동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몇 차례 발버둥치다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본 사람은 송아지가 알아서 쑥쑥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새끼는 약한 법이다. 정성껏 돌봐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김남용 대표는 “송아지가 병에 걸려 처음 설사를 할 때 바로 발견하고 치료를 하면 거의 100% 살릴 수 있다. 두번째 설사 때 치료를 하면 죽을 확률이 5% 정도다. 세번째 설사 때에야 발견하면 죽을 확률이 10% 이상”이라고 말했다. 수백마리씩 키우는 대형 농장에서는 송아지가 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고, 병에 걸린 송아지를 조기에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암소를 임신시켜 송아지를 길러내는 일은 보통 다른 농사도 지으면서 부업으로 10마리 안팎의 소를 키우는 농가들이 맡는다. 이들을 번식농가라고 부른다. 비육농가라고 불리는 대형 농장들은 번식농가로부터 송아지를 사 30개월까지 살을 찌운다.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분업구조다.

문제는 소규모 번식농가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20마리 미만의 소를 키우는 농가 수는 2010년까지 14만가구 이상을 유지했지만, 가격 폭락 기간을 지나면서 올 1분기 기준 6만476가구로 반토막이 났다. 송아지 생산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1995년에는 이런 농가가 51만가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농의 몰락이 더 두드러진다.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소규모 농가들이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 좋겠지만, 정부로부터 폐업지원금을 받은 농가는 5년 동안 소를 다시 키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송아지 시장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수송아지 가격은 400만원을 넘겼지만, 암송아지 가격은 300만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원래 가격이 오를 때에는 농가들이 번식을 늘리기 마련이어서 암송아지 가격이 수송아지보다 20%가량 비싼 게 정상이다. 김남용 대표는 “농민들이 언제 다시 가격이 폭락할지 몰라 불안해하기 때문에 섣불리 사육두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송아지 번식을 잘할 수 있는 소농들이 사라졌다. 이래서는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한우 농가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공직자 등이 5만원 이상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이 법은 특히 명절에 집중된 한우 소비 구조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껏 농가들은 한우 선물세트 수요가 있는 설과 추석에 맞춰 소를 키워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평상시 월 6만~7만마리 수준인 한우 도축량은 설과 추석 직전에 10만마리 수준으로 치솟는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명절 때 보통 10만원이 넘는 한우 선물세트 수요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명절에 집중된 공급량이 평월로 분산돼 평상시 한우 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농가들의 걱정이다.

공급을 쉽게 늘리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소비 위축 가능성이 겹쳐 있어 한우 가격의 향방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식품자원경제학)는 “쇠고기는 수요-공급 곡선이 단순하지 않다. 사육 기간이 길고, 송아지를 키우는 농가와 도축장에 출하하는 농가가 다르고, 수입자유화도 돼 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경제 원리만으로 예측하기 힘든 급격한 폭락이나 폭등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우 전문연구원은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도 문제고, 가격 급등으로 한우가 소비자들한테 외면받는 것도 큰 문제다. 한우가 사치재로 인식되면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용 대표는 “가격이 마냥 오르는 게 좋은 게 아니다. 농민들 입장에서도 지금 수준에서 가격이 유지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수입 쇠고기로부터 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 폭락으로 인한 농민들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승룡 교수는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소득안정화 보험 등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보험이 있으면 농가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돼지고기 시장에 도입된 선물거래가 쇠고기에도 도입되면 가격 급변에 따른 경영 위험을 사전에 잘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돼지고기 선물시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을 거두지 못해 다른 축산물로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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