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법조타운] 사법부와 협치

김태훈 2016. 6. 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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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대법관 후임인사
야당이 어떤 주문할지 궁금
여야가 그토록 외친 협치
립서비스 될지 현실이 될지
국민이 진심 확인할 기회

“탄핵심판도 재판의 일종이니까…. 무릇 재판은 신속하고 정확한 게 원칙이죠.”

2004년 3월12일 정오 무렵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의 한 한정식집. 윤영철 헌재소장과 출입기자들의 오찬간담회는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최대 화제였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탄핵심판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윤 헌재소장이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자 기자들은 황급히 수저를 내려놓고 휴대전화부터 꺼내 들었다. 얼마 뒤 온라인에 ‘<긴급> 헌재, 탄핵심판 신속·정확히 심리키로’ 제하의 1보 기사가 떴다. 다음날 거의 모든 조간신문 1면도 이를 주요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윤 헌재소장의 말을 받아 적느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기자실에 복귀하자마자 헌재 탄핵심판 절차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7∼8매 분량의 기사를 썼다. 초판만 해도 7면에 실렸던 이 기사는 시내판에선 5면으로 전진 배치됐다. 나라의 운명이 헌재로 넘어갔는데 정작 국민도, 언론도 헌재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 다들 허둥댔다.

‘헌재 역사는 탄핵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04년 탄핵심판이 헌재에 미친 영향은 컸다.

헌재 스스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사법기관이 종국(終局) 결정을 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지옥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심정이었을 게다. 2006년 그가 사법연수원 7기 동기생인 전효숙 재판관의 헌재소장 승진을 시도한 것은 그만큼 헌재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야당 역시 ‘결사저지’에 나섰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셈일까. 헌재는 소장 자리가 4개월 넘게 비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1988년 건국 이래 처음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종말을 고할 때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낳았다. 그중 노태우 대통령이 지명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여소야대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조용한 성품으로 ‘물태우’란 별명을 얻은 노 전 대통령이 그때만큼은 아주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정년까지 2년 남은 원로 재야법조인을 대법원장으로 기용해 야권의 반발을 잠재웠다. 이후 3당 합당으로 국회 주도권을 차지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이를 사법부 수장에 앉힐 수 있었다.

현 박한철 헌재소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은 각각 2017년 1월, 9월에 임기가 끝난다. 퇴임을 1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향후 6년간 우리 사법부를 이끌 양대 수장을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후임자들 인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좋든 싫든 여소야대 국회와 마주해야 한다.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한 차기 헌재소장, 대법원장 임명의 열쇠는 사실상 야권이 쥐고 있다.

지금 미국을 보면 1년 뒤 한국이 처할 정세를 예측해볼 수 있다. 공화당이 다수인 여소야대의 미국 상원은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메릭 갈랜드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인준 절차를 4개월 넘게 지연시키고 있다. 지난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한 직후부터 공화당에선 “곧 물러날 오바마가 후임 대법관 인사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이제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했으니 대법관 임명은 계속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당장 오는 9월 임기만료로 물러나는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자 인선이 관건이다.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 일색인 대법원에 실망감을 드러내 온 세 야당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주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직 대법관은 “몇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되면 야권이 좋아할 인사도 한두 명 끼워넣어 어느 정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딱 한 자리뿐이니 대법원장으로서도 누굴 뽑아 임명을 제청할지 참으로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헌법이 대법원장, 헌재소장, 대법관 등을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한다’고 규정한 것 자체가 ‘협치’의 상징이다. 새 대법관 인선은 20대 총선 이후 여야가 그토록 강조해 온 협치가 그냥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인지, 아니면 정말 실천에 옮길 진지한 자세가 돼 있는지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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