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2016. 6. 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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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라이 지음, 이은민 옮김, 동문선, 2000

김효정 감독의 여성 성기 절제(切除)를 다룬 영화, <소녀와 여자>를 보았다.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에서 매년 300만명 이상의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여성할례(circumcision), 음핵 제거(clitoridectomy)라고도 한다. 사티(sati), 황산 테러, 지참금 살인, 명예 살인, 신부 불태우기 등 유형은 다르지만 사회마다 여성 신체 훼손 문화가 있다. 한국은 아내폭력과 여아낙태, 성매매가 유명했으나 최근에는 성형수술이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영미권에서 제작한 여성 할례 영상을 많이 보았는데 이번 다큐가 가장 좋았다. 아름답고 강인한 작품이다. 관람을 권한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에 대한 비하가 살인으로 드러난 흔한 일이다. 나는 이번 사건이 젠더라는 독자적 모순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소지니(여성에 대한 혐오)는 다른 약자 혐오와는 역사와 성격이 다르다. 이는 성차별의 가시화를 위해 중요한 문제다. 이 사건을 여러 가지 혐오 현상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남성(아버지)들 간의 자존심, 자원, 욕망을 둘러싼 갈등을 여성의 몸에 실현하는 체계화된 사회 시스템이다.

문제는 남녀 대립적 사고방식이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람이 죽었고, 여성들은 두려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를 “남성에 대한 혐오”라고 한다. 무슨 대책이 가능하겠는가? 이러한 현상은 극한의 성차별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반영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두들겨 맞을 때, 더 분한 법. ‘남성 혐오’는 여성에 대한 비하보다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심란한 이 시기에 뤼스 이리가라이의 <하나이지 않은 성>만큼 적절한 책이 있을까(‘이리가레’라고 읽지만, 책 표기에 따른다). 인간의 성은 하나(남성)가 아니라는 것이다(This Sex Which is Not One). 이 책은 정신분석학과 정신분석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고전이다. 이리가라이의 전략은 기존 정신분석의 틀 안에서 그들의 이론을 반사(反射)하는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유명한 거울 이론의 등장이다. 이때 이제까지 스스로 태양이었던 남자들의 눈은 멀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성, 하나의 언어만 존재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남성-여성의 대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성성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당연하지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전혀 없으니까요.”(184쪽, 필자가 윤문함) 이 말은 내가 종종 받는 질문과 비슷하다. “바람직한 여성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글쎄요. 제가 알기론 ‘여성’은 없는데 여성성이 있다는 발상이 문제 아닐까요?”

여성의 언어는 없다. 남성 사회의 전략은 여성을 폐쇄회로에 가두어 정신병자로 만드는 것이다. 여성이 생존하려면 낯설고 애매모호한 액체의 형태로 남성 경제(paradigm)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울지 말아라.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완전한 액체인 우리의 눈물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287쪽)

성폭력 가해자를 면담하다 보면 직업, 학력, 나이를 불문하고 똑같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걸려서 억울하다”, “여자도 ○○했다”는 피해의식이다. 전자는 성폭력이 일상 범죄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고, 후자는 보다 심각하다. 폭력 상황에서 어떤 인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여성은 그 어떤 대응도 “동의”로 간주된다. 여성은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정상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의 네크로필라아(necrophilia, 시체 성애)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요지는 백인 남성의 언어가 인류의 유일한 언어라는 사실이고, 결핍을 결핍한 이들은 절대로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 자기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을 ‘괴물’이라 부르지만 이조차 과분한 ‘상징계’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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