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브렉시트와 영남권 신공항, 그 위험한 유혹

백병규 시사평론가 2016. 6. 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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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결국 사달이 났다. 캐머런 영국 총리의 도박이 결국 영국과 유럽연합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가 2013년 처음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꺼낼 때만 해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다. 유럽연합과 세계경제를 이처럼 뒤흔드는 사태로까지 번질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앞날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속단할 순 없다. 하지만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최대 패배자는 바로 캐머런 총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는 국민투표 전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총리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영국의 보수당도 그런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가 총리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었다.

뉴욕타임스는 국민투표 전에 캐머런 총리가 직면한 정치적 위기에 대해 “캐머런이 나무랄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힐난했다.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브렉시트 국민투표 공약을 내건 사람이 바로 캐머런 총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당내 유럽연합 탈퇴파를 달래고 보수당을 위협하던 영국독립당(UKIP)을 견제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브렉시트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유럽연합에 이 카드를 들이밀고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브렉시트 찬성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의 경제적·정치적 파장을 떠나 사실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은 영국이다. 영국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렸다. 보수당과 노동당 안에서도 찬반으로 나뉘었고, 가족과 친구들도 각각 찬반 양쪽으로 갈려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특히 찬성 쪽에서는 ‘분노’와 ‘공포’를 동원했다. 유럽연합은 영국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재원을 부당하게 갈취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때문에 이민자들이 늘고 있다고. 그래서 일자리도 줄고, 사회복지혜택도 감소하고 있다고 선동했다. 신문과 방송은 이들 ‘스피커’의 발언을 매일 중계하고 증폭했다. 합리적인 토론이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이들의 선동이 먹혀들었다.

브렉시트로 야기된 영국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다. 그것은 앞으로 영국의 모든 정치세력과 정치인에게 큰 정치적 하중으로 작용하고, 정치적 과정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 캐머런 총리는 당장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감당할 수 없는 공약을 제시해 영국을 분열시키고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 정치인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대중적 열기에 편승한 정치적 결정이 국가적 재앙으로 번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단적인 사례다. 2014년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반정부 시위는 야누코비치 정권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러시아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됐다.

문제는 대통령 유고상태에서 전권을 장악한 친서방 의회가 취한 첫 조치가 러시아어를 비롯해 소수민족 언어를 공식어에서 폐기한 것. 러시아계는 격분했고, 키예프 정변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러시아계가 다수인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 그리고 도네츠크를 비롯한 동부지역의 독립선언과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 파장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비견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영남권 신공항 역시 당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지역 갈등만 부추긴 무책임한 공약이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렵사리 백지화한 것을 대선 때 표를 얻고자 다시 공약으로 내건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 편승해 자기 지역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나선 정치인들, 자기 지역이 돼야만 한다고 앞장선 지역 언론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여야 가리지 않고 많은 정치인들이 또다시 그 연장전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를 어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을 끄려면 확실히 꺼야 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김해신공항’이라며 결코 공약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 또한 당장의 정치적 입지만을 감안한 편협한 대응이다. 박 대통령이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적어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까지 갈가리 찢어놓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백병규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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