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첫날

입력 2016. 6. 24. 15:10 수정 2016. 8.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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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본 교토 상가 FC로 이적한 남편 김남일 선수를 따라 일본으로 간 김보민 가족. 그녀가 직접 전하는 교토 라이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정말 그랬다. 이삿짐이 하늘을 날아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은 한참이나 멍해 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등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정전인가 했더니 세상에! 집 안 어디에도 전등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기서는 이사 올 때 전등을 가져와 이사 갈 때 모두 다시 가져간다. 대체 왜? 알고 보니 떼어갈 만했다. 전등값과 설치비를 합하면 10만 엔(약 1백만원)이 넘게 든다. 우리 가족의 멘탈 붕괴는 전등을 설치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무너질 것에 대비해 벽과 층간을 최소한의 두께로 짓는다. 자연히 층간 소음이 문제되기 마련인데, 그 해결 방법이 기가 막혔다. 층간 소음이 발생하면 이웃 간에 만나 얼굴을 붉히며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소개소에 직접 컴플레인을 제기한다. 그리고 세 번 주의를 받은 가구는 이사를 가야 한다. 일명 ‘삼진아웃제’. 이제는 한 발짝 한 발짝이 조심스럽다. 그래서 집에 손님을 초대하거나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할 수 있는 건 단독주택에 사는 자의 특권이다. 학교에서 친구가 생기면 아이들은 “너 어디 살아?”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너 단독주택에 살아?”라고 묻는단다.

멘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행 방향이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일본에서의 운전은 나에게 두 번째 위기였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다가는 역주행을 하게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주행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신호 체계다. 헉. 보행자와 동시 신호다. 눈치껏 우회전을 해야 한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눈치 백 단이 됐다.

한번은 일본인 친구에게 신호가 바뀔 때 ‘꼬리 물기’나 ‘무단 횡단’을 하면 범칙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그런 법규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일본에서는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하거나 운전자나 동승자 중 한 명이 타고 있는 차량에는 너그럽다. 출발이 늦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아니, 1초라도 늦으면 빵빵대는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대신 도로 위 정지선에서는 반드시 정지했다가 출발해야 한다. 엄격하다. 사복 경찰이 몰래 단속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는데 그 모습 또한 놀라웠다.

교통 법규가 엄격해서일까? 일본인들은 자전거를 애용한다. 성인이 되면 치마나 하이힐을 신고도 탈 수 있는 수준급 실력을 갖추게 되고, 아이 둘을 앞뒤로 각각 태우고 유유히 페달을 밟는 신공을 보여주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밌다. 일본에서 버스가 한 정류장에서 머무는 평균 정차 시간은 3분. 그러니 자전거로 가는 편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1시간 남짓 거리 고속도로의 자동차 통행료가 3만원이 넘는다. 참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통행료는

2만1백원. 한국의 하이패스와 같은 ETC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은행에서 계좌를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린 걸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이참에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정말 편리하게 이용하던 전화 배달 서비스 말이다. 전화 한 통이면 뭐든지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이곳에도 있으면 좋겠다. 둘 중에 하나다. 내가 기다리고 인내하거나, 이 서비스가 도입되거나! 분명한 건 오늘도 ‘멘붕’은 계속되고 있다는 거다.

#1 따뜻해서 좋아하는 갤러리 카페.

#2 아빠와 아들. 아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3 전화 통화를 할 수 없는 교토 지하철. 온전히 나만의 시간.

#4 오랜만의 나들이.

#5 비가 와도 자전거는 포기 못해!

#6 고즈넉한 저희 동네랍니다.

#7 교토의 비 오는 거리. 분주해 보이지만 그 속에 여유가 있다.

#8 이 연인 포스는 뭐지?

  

기획 : 이예지 기자 | 글·사진 : 김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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