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반기문의 미래를 위한 '유종의 미'

김덕한 뉴욕 특파원 2016. 6.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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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국 시민으로 돌아온 후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결심하겠다"고 한 발언은 탓할 일이 아니다. 설사 그가 좀 더 직접적으로 대선(大選) 출마 의지를 밝혔다고 해도 그 또한 그의 자유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그가 임기 말 근 1년 동안 출신국 정치 무대와 관련해 행한 발언과 행적이 받게 될 역사적 평가에 대해선 그가 책임져야 한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 관련 질문에 "총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유엔 업무에만 집중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방한(訪韓)도 아무런 정치적 의미가 없다며,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혹스러울 만큼 정치 과잉 일정이었다. 그는 관훈클럽 토론회에 다른 공식 일정을 늦춰가면서까지 참석했고 '가족 모임 외에 다른 일정이 없다'고 한 날 충청권의 맹주인 JP(김종필 전 총리)를 찾아갔다. 원로 예방이라고 한다면 JP 말고도 국가 원로는 많다.

반 총장이 스스로 말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얼마만큼 냉철하고 절제된 일정 관리를 하는지도 의문이다. 반 총장을 만나 모종의 관계를 만들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권 기원 안수기도를 해줬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런 주장이 모두 다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만큼 반 총장은 뉴욕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 그리 엄격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돈다.

반 총장에 대한 해외 평가는 긍·부정이 갈린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한 활기 없는 총장'이라며 거의 인신공격성 혹평을 퍼부었다. 반면 반 총장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강대국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옭아매 파리기후협약 합의를 이끌어내고, 2030 지속가능개발의제(SDG)를 제안해 성사시킨 것 같은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의 성실하고 조용한 '동양적 리더십'을 뉴욕타임스가 '힘없는 관측자' '어디에도 없는 남자'라 지적한 것은 부당한 폄훼로 비치기도 한다.

국내 정치권은 정치 놀음의 판 위에서 움직이는 반기문만 바라볼지 모른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평가는 그보다 훨씬 넓은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한 긍·부정 여부를 떠나 한국 출신의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평가가 '강대국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임기를 채우고 떠났다' '임기 말엔 출신국 대선 출마에 몰두했다'로 남는다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유종의 미'는 남이 나 대신 거두어 주는 게 아니다. 대권도 누군가 보내주는 꽃가마에 올라탄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착각하게 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한 번도 끊어 말하지 않은 그가 대선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직무부터 충실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다음 역할에 대한 고민은 반 총장 자신이 말한 대로 '한국 시민으로 돌아온 후'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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