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경유차 타는 게 죄인가

입력 2016. 6.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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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상수 경제부 차장
한마디 할 테니 잘 들어봐. 내가 누구냐고? 경유차야. 요즘 날 갖고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하도 뭐라 하길래 참다못해 나섰어. 경유차 모는 운전자들이 “죄인 된 것처럼 불편하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경유값까지 올린다고? 가뜩이나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데 서민들이 무슨 봉이냐고. 관료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한심하게 일을 해왔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볼게.

우선 이해해야 할 게 하나 있어. 왜 경유차가 환경오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야. 연료의 연소가 이뤄지는 내연기관은 독성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배출할 수밖에 없어. 이 놈이 미세먼지의 원인이지. 그런데 경유차는 고온연소방식이라 휘발유나 액화석유가스(LPG) 차량보다 질소산화물이 훨씬 많이 나와. 질소와 산소는 고온에서 더 잘 결합하거든. 경유차는 버스나 트럭에 적합한데 경유는 분자를 이루는 탄소 개수가 많아 휘발유차보다 힘이 좋기 때문이야. 경유차에 대해서 이해 다 됐지?

자, 그러면 우리 정부가 뭘 잘못했느냐.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 난리를 치냐 이거야.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니까 그때부터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머리를 싸매다가 경유값 인상, 석탄화력발전 규제 등을 들고나온 거야.

다른 선진국은 어떻게 했냐고? 경유차가 절반인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해 왔어. 1992년 유로1에서 시작해서 2013년 유로6까지 단계별로 강도 높게 규제를 하고 있지.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에 못 미치는 차량들은 아예 소비자에게 팔지를 못하게 만든 거야.

한국은 경유차가 넘쳐나는데도 이와 관련한 규제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2조에는 클린 디젤차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와 함께 버젓이 친환경차로 분류돼 있어. 독일 폴크스바겐이 한국에 ‘클린 디젤차’라고 선전하면서 경유차를 엄청 많이 팔았는데 지난해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깨끗한 경유차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잖아.

외국은 진작부터 경유차 대책을 세웠지만 환경부는 실내 테스트가 아닌 실제 도로주행 결과를 반영한 경유차 배출가스 인증 기준을 2017년 9월에나 도입할 예정이야. 늦어도 한참 늦은 거지.

한국은 2013년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을 12기나 허가한 나라야. 지난해 9월에는 박 대통령이 연료 다변화라면서 택시업계 표를 얻기 위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유택시도 허가했지. 그동안 환경의 ‘환’자에도 관심이 없었으면서 왜들 이 난리람.

기획재정부와 환경부가 ‘폭탄 돌리기’ 하는 모습은 가관이야. 환경부는 “경유값을 올려 경유차를 못 타게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경유값 올리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몰라. 국내에선 10명 중에 4명이 경유차를 타고 다니거든. 특히 전체 경유차 850만 대 중 버스·화물차가 314만 대로 37%에 달해. 경유값을 올리면 서민들만 죽어난다는 얘기지.

2014년 기준으로 유류세로 걷은 돈만 24조 원인데 이 중 경유에 붙은 세금으로는 8조3000억 원을 걷었어. 국민들에게서 이렇게 많은 돈을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또 가격을 올리는 게 말이 되냐고? 외국처럼 진작부터 자동차와 공장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강화했어야지.

제발 부탁인데 대통령 호통 한마디에 단기 방안을 내놓을 생각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길게 보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지. 아이고, 속 터져….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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