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어쩌면]맨부커상과 독서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 2016. 5. 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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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생충학자들은 국내 학술지에만 논문을 냈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면 첨단스러우면서도 그 의미가 남다른, 소위 대단한 논문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 학자 한 명이 미국서 나오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다. 다들 놀랐고, 그에게 찾아가 질문 공세를 폈다.

사람들 : 어떻게 그 어려운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거야?

그 학자 : 그냥 내니까 되던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

그가 쓴 논문을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영어로 쓴 논문이라 잘 써보이긴 했지만, 내용으로만 보면 그 논문은 국내 학술지에 실린 것보다 특별히 대단할 건 없었다. 다들 “나도 내야겠다”며 돌아가려는데, 그 학자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영어로 바꾸고 나서 꼭 원어민한테 교정을 받아야 해. 그래야 문장이 매끄러워지거든.”

그 후 국내 학자들은 웬만한 논문은 다 외국 학술지에 투고하게 됐다. 거기서 탈락하면 그때는 국내 학술지에 내면 됐으니까. 물론 영어로 쓴 논문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업무를 담당해주는 영어 교정업체들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다는 게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 문학은 오랜 시간 우물 안의 개구리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 문인들이 책을 쓰면 우리나라 독자만 읽는 게 고작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도 우리 문인들은 자신들을 낮게 보는 이런 시각이 억울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나라 문인들의 꿈이 된 건 그 상을 통해 자신들의 역량을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외국에서 만든 상의 권위로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게 꼭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그의 작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걸 보면 이런 전략도 시도할 가치가 있다.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노벨문학상이 나왔으니, 우리나라 책들도 영어로 번역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상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보다 많은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문인들 중에는 “에이, 내 작품이 외국에서 팔리겠어?”라며 지레 손사래를 치는 분도 계시겠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분들의 용기를 북돋워 줄 훌륭한 분이 계시니까.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분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대통령의 시간>(The uncharted path-미지의 길)을 영문판으로 만들어 미국 서점인 아마존에 내놨다. 허무맹랑한 소리만 잔뜩 나열했다는 점에서 자서전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가 대단한 것은 이 책이 국내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네이버 평점이 6.93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그의 용기를 난 사랑한다.

아쉽게도 그의 아마존 진출은 실패로 끝난 모양이다. 나름대로 홍보비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책 판매량이 1000여권 남짓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진지한 독자들이 그게 소설인지 몰랐던 것도 이유가 되지만, 내가 보기엔 자신의 통역을 해주던 외무공무원에게 번역을 맡겼던 게 더 큰 이유로 보인다. 그 공무원의 영어실력은 뛰어났겠지만, 번역이란 게 꼭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한강 작가의 번역을 담당한 데버러 스미스를 보라. 자기가 생각할 때 훨씬 더 의미 전달이 잘 되도록 새로운 단어를 집어넣는 등 원본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창조해 냈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 작가들도 용기를 냈으면 한다. 실제로 해외에 진출해 있는 작가들이 있는데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독일에서 ‘올해 최고의 추리소설 10선’에 들었고, 배수아의 소설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단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강 작가에 이은 또 다른 쾌거도 기대해 볼만하다.

좋은 번역자를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독자들이 격려해 주는 일이다. 그 격려란 다름 아닌 책을 많이 읽는 것, 자신이 쓴 책이 웬만큼 팔려야 문인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하지만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인의 연평균 수입이 214만원으로 예술인 가운데 가장 낮았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뿐 책 읽는 이는 드물다. 문인들의 수입이 적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맨부커상 여파로 한강 작가의 책이 잘 팔리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고, 이 여파가 다른 작가의 책에까지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말, 미국 시사지 ‘뉴요커’는 한국이 상위 선진국 30개국 중 국민 1인당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근거로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만 노리느냐?”는 쓴소리를 했다. 맨부커상 수상의 기쁨을 다시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을 읽으시라. 책은 그 책을 쓴 문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독자의 정신적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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