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국 'IT 신화의 그늘'.. 실리콘밸리 중산층 몰락

2016. 5. 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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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부의 양극화 심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의 편중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민주당 경선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창하고 있다. 부동산재벌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까지 가세할 정도다. 논란의 중심은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뉴욕의 월스트리트다. 정보통신기술(IT)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는 미국 신흥경제의 총아로 떠오른 지역이어서 소득 양극화나 부의 편중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하지만 경기침체 와중에 중산층이 실리콘밸리에서 밀려나면서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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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나는 실리콘밸리의 중산층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48㎞, 너비 16㎞가량의 띠 모양으로 이뤄져 있다. 캘리포니아주 세금 혜택 등에 매력을 느낀 첨단기업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IT산업이 세계 경제의 주력 업종으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이곳은 쾌적한 날씨를 비롯한 천혜의 환경, 배후도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IT 업종 종사자들이 몰려들면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거주자의 평균소득이 높은 지역의 하나로 커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산층 주민들이 밀려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중산층 비율은 2000년 62%였다가 2010년 무렵엔 55%로 줄었다. 올핸 49.9%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실리콘밸리의 중산층도 50% 미만으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리콘밸리 중산층 비율의 하락 속도는 미국 전역의 평균속도보다 가팔랐다. 미국의 중산층은 4만2000달러(약 4966만원)∼12만5000달러(약 1억4781만원)의 연봉을 올리는 가계를 말한다.

비영리단체인 ‘캘리포니아 예산정책센터’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중산층 감소 흐름이 확인된다. 이 센터가 내놓은 보고서 ‘실리콘밸리의 불평등과 경제안정’에 따르면 2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중산층 비율은 10%포인트 넘게 줄어들었다. 예산정책센터는 샌머테이오, 샌타클래라, 샌프란시스코 등 세 곳의 카운티를 분석했다. 샌머테이오의 중산층 비율은 58%에서 48%로, 샌타클래라는 58%에서 47%로 하락했다. 샌프란시스코도 10%포인트 감소했다.

◆소득 집중과 불안한 미래

실리콘밸리에서 중산층이 몰락한 것은 경제위기와 변화한 시대 흐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실리콘밸리에는 투자 자금이 쇄도했다. 신규 창업이 늘고, 도약을 거듭했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실리콘밸리 투자가 뜸해졌다. 전통적인 제조업종은 물론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마저 공격적인 경영이 힘들게 됐다. 기업 환경이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IT기업들의 첨단기술이 일자리를 갉아먹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넷플릭스는 고객이 5700만명에 달하지만 직원은 2200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18만달러다. 페이스북의 메시지 애플인 ‘와츠앱’의 직원은 55명에 불과하다. 100명도 안 되는 직원들이 450만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구글 직원은 5만5000명이다. 50년 전 미국의 대표적인 통신회사였던 AT&T의 직원은 75만명이었다. IT기업들의 스카우트 열풍도 사라진 지 오래다. 연봉 협상에서 직원은 불리한 입장이 놓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지만 부유층엔 소득이 집중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혁신과 창조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지만 부의 분배 측면에서는 월스트리트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전체 가계에서 실리콘밸리 상위 1%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상위 1%가 지역의 전체 소득을 차지하는 비중은 1989년에 비해 2013년엔 15%포인트 안팎으로 증가했다. 샌머테이오는 14.4%에서 31.8%로, 샌타클래라는 9.9%에서 23.7%로 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6.6%에서 30.4%로 늘어 전체의 3분의 1에 육박했다.

저소득층은 추락했다. 실리콘밸리 소득 하위 20%에 해당되는 가계들은 소득이 14.5% 감소했다. 이들 지역에서 상위 1%는 하위 99%의 수입보다 40배 정도가 많았다. 일례로 샌머테이오의 상위 1%는 하위 99%에 비해 46배의 수입을 올렸다. 하위층에 속하는 이들 주민은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대형마트 종사자들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으며 실리콘밸리의 일상적인 경제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이들은 정작 실리콘밸리의 혁신 결과물인 우버나 애플을 사용할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예산정책센터는 임금 불평등 확산과 중산층 감소는 실리콘밸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흐름이라고 지적한다. 지역의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장 실리콘밸리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직종인 소방관과 간호사, 교사 등마저 밀려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이들이 직장과 가까운 거리에서 벗어나면 긴급 상황에서 주민들을 위한 대응이 힘들어진다.

예산정책센터의 크리스 헤이니 소장은 “실리콘밸리에 일자리가 많고 임금도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높은 거주비와 생활비로 중산층과 빈곤층은 연봉이 올라도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 비해 더 고통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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