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음식' 고집하며 '위험한 식탁' 강요하는 정부

2016. 5. 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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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식약처의 정보공개 거부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올해 4회째인 ‘몬산토 반대 시민행진’이 열렸다. 몬산토는 전세계 지엠오(GMO) 식품의 특허권 90%를 소유한 다국적 기업으로, 종자를 독점해 개발도상국의 농업체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 참가자가 ‘지엠오 꼭 완전표시제’라고 적힌 부채를 들고 있다. 지엠오반대생명운동연대 제공

▶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하면, 그 나라는 안전해진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강조한 미국 링컨 대통령의 말입니다. 왠지 초라해집니다. 밝히려는 국민에 맞서 감추려는 정부, 피해가 발생했고 안전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데도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정부가 우리에겐 더 익숙한 탓입니다. “적극적인 안전성 검증과 투명한 정보 제공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데도 우리의 정부는 인색하게만 굽니다. 왜일까요. 식약처와 한 시민단체 간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전을 들여다봤습니다.

상고 기한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끝내 대법원에 상고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한 뒤였다. 경실련은 식품업체들이 유전자 변형 식품(GMO)을 얼마나 수입했는지 알려달라며 지난해 초 식약처에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식약처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식품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에 불복했다. 식품업체들이 입을지 모를 유·무형의 피해에 대한 우려에 더해, 식약처가 업체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소송을 제기한 박지호 경실련 간사는 “식약처가 업계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겪고도 정부가 여전히 국민의 안녕을 등한시한다”며 답답해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뿐일까.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같은, 국가가 독점한 정보의 비공개로 인해 초래된 일련의 불행한 장면들이 식약처의 상고 결정 뒤로 스쳐 지나갔다. 정부는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지엠오 수입 세계 1위, 한국

지엠오는 병충해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에 강한 식량 작물에 대한 필요에서 개발됐다. 1990년대 중반 콩과 옥수수를 시작으로 본격 상업화되기 시작했지만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학계에선 지엠오가 암이나 불임, 알레르기의 원인 물질로 작용한다고 봤다.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고 파괴한다고도 했다. 반면 지엠오 개발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외려 농약이나 살충제를 덜 쓰게 돼 생물 보전에 도움이 되고 각종 산업에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엠(유전자 변형) 식물로는 옥수수와 콩, 면화, 카놀라, 감자, 사과 등이 개발됐다. 지엠 연어는 지난해 말 미국이 식용을 승인해 최초의 식용 지엠동물이 됐다. 최근엔 캐나다도 지엠 연어를 식용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지엠오가 시판된 지 20년에 불과한데다 안전성 논란이 있다 보니 주요 수출국이 아닌 세계 각국은 조심스럽다. 일본은 지엠오를 대부분 가축 사료로 쓴다. 대만은 학생 급식에 지엠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고, 러시아는 지엠오의 수입과 재배를 금지했다. 중국도 지엠 옥수수를 수입하다 얼마 전 중단했다. 스위스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는 지난달 자사 제품에 지엠오를 쓰지 않기로 했다. 허쉬(초콜릿)나 애보트(분유), 포스트(시리얼), 델몬트(과일 통조림) 같은 주요 식품회사들도 지난해부터 지엠오 이용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한국은 공교롭게도 세계에서 식용 지엠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지난 19일 공개한 지엠오 관련 주요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 수입 승인된 식용 지엠오는 총 215만t이다. 2008년 155만t 수준에서 꾸준히 늘어 재작년 이후 한 해 수입량이 200만t을 웃돌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에서 수입된 것이 대부분이며, 콩과 옥수수가 절반씩이다. 모두 국내에서 가공돼 식용유나 감미료(전분당)의 재료로 쓰인다. 콩과 옥수수는 국내 자급률이 각각 10%, 1% 수준이니, 시중의 콩과 옥수수가 거의 대부분 수입해 온 것이고 이 중 상당수가 지엠오란 얘기다. 지난해 국내 위해성 심사를 통과한 식용 지엠오는 콩과 옥수수를 비롯해 면실, 감자, 카놀라, 사탕무, 알팔파 등 모두 7종이다.

하지만 국내에 시판 중인 식용유나 감미료의 원재료에 지엠오가 포함돼 있다는 표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카놀라유는 단지 ‘수입산’, 올리고당의 경우 원재료가 ‘옥수수전분’이라고만 쓰였을 뿐이다. 올리고당이나 옥수수전분 등은 국산 원료 사용 비중이 20% 이하(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 원료 소비 실태)인데도, 수입산인지조차 표기돼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원재료에 지엠오가 포함됐다는 표시도 없다. 식품위생법(12조)은 지엠오를 쓴 경우 ‘유전자 변형 식품’ 등으로 표시하도록 했지만, 실제 그렇게 표기된 제품을 찾기는 힘들다. 식품업체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한 식품회사의 ‘올리고당’과 ‘카놀라유’의 원재료 표시. 카놀라유는 ‘100% 수입산’, 올리고당의 경우 ‘옥수수전분 100%’라고만 쓰여 있다.

박기용 기자'>

200t 넘게 지엠오 수입해도
표시된 제품 찾을 길 없어
경실련 “식약처가 업계 대변”
1·2심 지고 상고한 식약처는
“식품업체 피해·역소송 우려”

지엠오 표시제도 불완전한데
소비자들은 여러 경로로 섭취
법원 “공개 거부할 문제 아냐”
국민들도 규제·완전표시 원해
“알고 선택할 권리 존중해야”

지엠오 표시는 규정만 덩그러니

식품위생법은 지엠오를 쓴 경우 ‘표시해야 한다’고만 규정했을 뿐 구체적인 대상과 방법은 식약처장이 정하는 별도의 ‘유전자 변형 식품 등의 표시기준’을 따르게 했다. 한데 식약처는 이 ‘기준’을 통해 해당 제품에 많이 쓰인 주요 재료 5순위 안에 지엠오가 포함되지 않거나, 최종 제품에서 지엠 디엔에이(DNA)나 외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은 경우를 표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재료 순위나 디엔에이 잔류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표시하도록 한 것과 차이가 있다. 덕분에 한국에선 지엠오가 주요 재료가 아니거나, 고온의 가공 과정에서 디엔에이와 단백질이 파괴된 경우 지엠오 사용 여부를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지엠 옥수수는 물엿과 빵, 과자, 팝콘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쓰인다. 지엠 콩은 두부와 간장, 된장 등에, 지엠 면실은 샐러드 드레싱에, 지엠 카놀라는 카놀라유로 가공되거나 참치캔 등에 넣어져 시중에서 판매된다. 하지만 어떤 제품에도 ‘유전자 변형 식품’이란 표시는 없다. 국내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여러 경로로 지엠오를 섭취하고 있음에도 이를 알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이런 ‘불완전한’ 지엠오 표시제가 논란이 되자 지난해 말 국회에선 재료 순위에 상관없이 지엠오 사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식품위생법이 개정됐다. 개정 법령은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최종 제품에 디엔에이나 외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은 경우 표시 대상에서 제외한 규정은 그대로 남았다. 덕분에 카놀라유나 올리고당, 간장 같은 제품들은 내년 2월 이후에도 지금처럼 지엠오 재료가 쓰였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이런 불완전한 표시제는 정부가 소비자의 안전보다 업계의 이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경실련의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식약처의 태도와 이후 소송 과정에서 제기된 주장들을 봐도 그렇다.

경실련은 지난해 1월9일 식약처에 ‘2014년 유전자 변형 식품의 수입 현황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수입신고를 한 업체별 품목과 수량을 명기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 정보의 공개를 거부했다. 열흘 뒤 경실련 쪽에 품목별 전체 수입량만을 전하면서, ‘수입신고자에 관한 정보는 정보공개법상 해당 법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해당 법인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지했다. 경실련은 이에 반발해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에서 식약처는 이들 식품업체가 “인체에 무해한 농산물과 식품만을 수입하고 있다”며 “다량의 지엠오를 수입한 사실이 공개될 경우 해당 업체의 이미지가 저하되는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식약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병수)는 “해당 정보가 관련 기업들의 경영·영업상의 비밀에 해당하긴 하지만, 농수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은 일반 국민의 건강과 직접 관련된 물품으로서 그에 관한 기초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소비자의 자기결정권과 식품 선택의 기회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식약처의 주장처럼 이들 기업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농산물과 식품만을 수입하고 있다면 정보가 공개된다 해도 수입업체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정보 제공을 통해 식품과 관련한 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식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해당 업체의 이미지가 저하되는 등의 예상되는 불이익에 대해선 “적극적인 안전성 검증과 투명한 정보 제공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정보 자체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2심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업체의 모든 제품이 지엠오를 이용한 것처럼 오인되고, 지엠오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비난에 노출되는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식약처의 주장을 2심 재판부(서울고법 1행정부·재판장 최상열)가 판결문에 추가로 반영했을 뿐, 결과는 같았다. 2심에서 식약처는 “해당 업체가 (지엠오가 아닌) 가격이 비싼 일반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게 되면 제품 원가가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 기관이 물가 상승을 우려하고 나선 것이다. 재판부는 역시 별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일반 농산물(Non GMO)이라는 점을 표시해서 지엠오인데도 이를 표시하지 않은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제품 수요를 유지해 원가 상승으로 인한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투명하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 가격 상승에 따른 피해가 현저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정보 공개해 달라 소송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음에도 식약처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식약처 수입식품정책과 관계자는 “1·2심 모두 ‘비공개 대상 정보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한데다, 정보공개로 비난이나 공격에 노출되게 해 경영·영업상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비공개해야 한다고 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상고를 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 판례를 두고 업계에서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을 명확히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박지호 경실련 간사는 “알 권리, 선택권 보장 같은 소비자의 기본 권리를 위해 정부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며 “식약처는 무의미한 소송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경실련이 식약처에 요청한 업체별 지엠오 수입현황 정보는 과거 단 한 차례 공개된 바 있다. 이운룡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5월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씨제이제일제당과 사조해표, 삼양제넥스, 대상 등 4대 식품업체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수입한 지엠오 농산물은 486만8천t에 달해 전체의 86%에 이르렀다. 씨제이제일제당은 지엠 콩으로 식용유를 생산하고 사조해표는 식용유와 고추장, 된장 등을, 삼양제넥스는 물엿과 과당을 제조한다. 대상도 ‘청정원’ 브랜드의 올리고당과 카놀라유 등을 만든다. 모두 우리가 마트 등에서 쉽게 접하는 제품들이다.

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한 정부의 모습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공개’는 찾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6월 ‘정부 3.0 비전 선포식’ 축사에서 “정부 3.0은 그동안 펼쳐왔던 정보공개의 차원을 넘어 정부의 운영 방식을 국가 중심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는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작년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 메르스 사태, 올해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부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샀다. 지엠오 관련 정보공개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도 차이가 있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 600명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엠오에 대한 표시·수입·유통·연구개발 등의 단계에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한 해 전에 견줘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지엠오 원료 사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89.0%로 한 해 전 87.7%보다 많아졌고, 지엠오 수입 규제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도 82.2%에서 88.5%로 늘었다. 거의 대부분의 응답자가 지엠오 수입 규제와 사용 표시를 원하고 있지만 식약처가 외려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김훈기 홍익대 교수는 “지엠오의 안전성 여부가 국민들 사이에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정부는 식품정보 완전표시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판매되는 식품에 지엠오가 섞여 있는지를 알고 선택할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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