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쏟아지던 새벽 한국 중장비가 나타난 것 못잊어"

최경환 기자 입력 2016. 5. 28. 08:10 수정 2016. 5. 2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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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ODA]③ 선진국 모두 외면한 민원덩어리 필리핀 도로확장 공사

(마닐라=뉴스1) 최경환 기자 = "새벽 3시까지 폭우가 쏟아져서 홍수가 날 위기였는데 한국이 중장비를 끌고와 둑을 쌓았다. 정말 감사하다."

마리아 앙겔라 가르시아(Maria Angela S. Garcia) 필리핀 디나루피안시(市) 시장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해 여름 겪은 일지만 한진중공업 관계자와 취재진이 지난달 시청사를 찾았을 때 다시 감사를 표했다.

도로 확장공사를 하던 한진중공업은 공사 중 폭우를 만났다. 필리핀의 우기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비는 새벽까지 쏟아부었다. 공사지역은 이미 2013년 큰 태풍이 5번 닥쳐 3번이나 재난 지역으로 선포되는 악몽이 있었다.

이날도 강이 넘칠 위기에 처했다. 마을이 잠기면 수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볼 상황이었다. 현장 책임자였던 한진중공업 박상천 차장은 덤프트럭과 중장비를 끌고 현장으로 갔다. 흙을 쌓아올리고 인부들과 함께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넘치는 물줄기를 막아 위기를 면했다.

마리아 앙겔라 가르시아(Maria Angela S. Garcia) 필리핀 디나루피안시(市) 시장(오른쪽)이 시 관계자들과 함께 지역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News1

한진이 이곳 도로 공사를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95㎞ 떨어진 팜팡가(Pampanga)·바탄(Bataan)지역. 바탄주와 수빅자유무역항을 연결하는 GSO(Gapan, San Fernando, Olongapo) 도로 확장공사다.

기존 GSO 도로는 왕복 2차로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1~2㎞씩 차량이 정체돼 주민들의 원성이 컸다. 태풍이 오면 도로가 침수돼 온 도시가 마비되기 일쑤였다.

여기가 교통지옥으로 변한 것은 이 나라 교통문화도 한 원인이다. 오용근 수출입은행 마닐라사무소장은 "낡은 차량들이 많아 고장이라도 나면 통행이 완전히 마비된다"며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길이 막힌 운전자들도 고장 차량을 탓하거나 강하게 항의하는 문화도 없다"고 말했다.

정체를 해소하려면 고장 차량을 피해갈 수 있는 왕복 4차로로 확장공사를 해야했다. 필리핀 정부는 국제 원조를 원했지만 어느나라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선진국들이 외면한 것은 난공사가 뻔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곳은 아니다. 도로 바로 옆에 이미 가옥이 들어차 확장할 공간이 없었다. 공사과정에서 주민들이 제기할 엄청난 민원도 불보듯 뻔했다.

이곳에 한진중공업이 공사를 맡겠다고 나섰다. 한진은 인근 수빅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필리핀에선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현장을 누빈 노하우도 있었다.

대외협력기금이 필리핀 정부에 차관을 제공해 공사비 약 175억원을 댔다, 이렇게 총연장 16.04㎞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집앞에서 공사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집 진입로 공사를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민원이 있는 곳을 비워두고 공사를 하느라 하루 100~200m 공사해야 할 작업량을 채우지 못해 20~30m밖에 못한 경우도 많았다. 벽돌이 필요하다. 철근이 필요하다며 자재를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 차장은 "중간에 중단하자는 애기도 나왔지만 끝까지 끝내기로 했다"며 "원조사업이다보니 민원을 일일이 들어주면서 공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원이 많아 일 못한다고 하면 공사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업체들은 민원이 생기면 1년이든 2년이든 시 정부가 해결해 줄 때까지 일을 중단하는 게 보통이다. 지장물 철거나 민원은 발주처인 정부 책임이기 때문이다.

차량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도로를 확장하는 것 또한 난제였다. 도로 양쪽이 시가지인 구간이 많아 우회도로를 만들 수도 없었다. 통행량이 많은 낮시간을 피해 야간작업을 해야했다. 아침에 다시 도로통행이 가능하도록 원상복구해 놓는 식으로 공사를 했다. 현지 주민들은 밤샘작업을 하고 아침에 말끔하게 도로를 만들어 놓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교량 공사를 할 때는 임시 다리를 만들어 통행에 불편이 없게 한 뒤 공사를 진행했다.

가르시아 시장은 "임시 교량을 만들어놓고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배려에 큰 감명을 받았고 한진이 노력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진이 현지 주민의 민원을 해결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방법은 현지 거주자를 우선 채용했다는 점이다. 관할 행정기관을 통해 현지에 사는 주민들을 모집했다. 전체 채용인원 200명 가운데 70%가 사업지 주변 주민들이었다. 한국인은 단 3명이 근무했을 뿐이다.

전국일 한진중공업 마닐라지점 차장은 "몇십년이 지나도 필리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도로를 이용할 것이고 한진이 시공한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니까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보다는 퀄리티"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전국일 마닐라지점 차장(왼쪽 두번째)과 박상천 차장(맨 오른쪽) 이 공사 관계자들과 현장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 News1

k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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