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리더 직격 인터뷰>안희정 "분노·패권·좌우 대결의 '20세기 정치'와 결별해야"

허민 기자 입력 2016. 5. 26. 11:45 수정 2016. 5.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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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가 24일 도청 집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꿈꾸는 21세기 정치와 국가 비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 지사는 “절대적 진리관에서 다원주의로 이행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는 아직 민주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세기 정치와 결별하고 뉴 브랜드를 갖고 21세기의 새 질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52) 충남지사만큼 젊은 나이에 부침을 격하게 겪은 정치인도 많지 않다. 민주화운동으로 고교 중퇴를 경험하고 대학생 때 한차례 복역했던 그는 1994년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 문하생이 됐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 됐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그를 “정치적 동지”로 불렀다. 하지만 노 정부 5년은 그에겐 고난의 세월이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돼 노 정부 내내 아무런 공직을 맡지 못했고, 2007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에는 스스로 ‘폐족(廢族)’을 선언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충남 도정의 책임자로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안 지사와의 인터뷰는 때마침 ‘충청 대망론’과 관련해 여권 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하루 전인 24일 도청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안 지사는 “20세기 정치와 결별하고 나만의 ‘뉴 브랜드’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지금의 여의도 정치문화는 계몽군주시대의 정치에 머물러 있다”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물고 오듯 정치인으로서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에 ‘안희정 정치’가 왜 필요한가.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적이냐 동지냐, 아군이냐 적군이냐의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20세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뉴 브랜드 전략을 쓰지 않으면 상품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시대에 뒤떨어지기 때문에 본인도 망치고 소속 집단도 망친다. 언제부터인가 20세기 방식의 진보·보수의 구도가 아닌 21세기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한 편에 서게 되면 한쪽은 진실이 되고 다른 한쪽은 진실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곳에 진실이 있다. 균형점을 찾아야지 절대점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현 정치문화와 정치권 전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들린다.

“지금 존재하는 20세기 정치문화나 정치인들로는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학습하고 물려받은 원한과 미움과 분노를 갖고 주장을 하는 식으로는 안된다는 거다. 그건 헤게모니 당파싸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백성의 눈높이에서, 그 ‘진실의 밭’으로부터 올라온 게 아니다. 20세기와 결별한다는 것은 20세기에 갇혀 있는 정치와 정치인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문화와 정치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정치인으로서의 내 꿈이다. 만약 정치 지도자들이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미래 비전을 갖고 경쟁하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히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20세기 방식의 낡은 리더십, 낡은 시대의 정책과 경쟁 구도를 갖고 경쟁한다면 나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만들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새 정치를 위해 뭐가 필요한가.

“21세기에 과연 중앙집권화한 국가시스템이 유효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 개조에 있어 핵심은 중앙집권국가, 관료중심 국가, 정부주도 국가로부터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의 나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헌논의에는 이게 포함이 돼야 한다. 지금 헌법 개정 논의는 1800년대 말에나 어울리는 것들이다. 분권화한 시스템으로 가야만 민주주의가 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컴퓨터나 인터넷 세계에서는 이미 적용되는 것들이다. 1970년대에는 슈퍼컴퓨터의 호스트 컴퓨터가 능력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무수히 많은 컴퓨터의 병렬연결이 그 능력을 좌우한다.”

―언제부터 국가운영의 큰 그림을 그려왔나.

“210만 도정의 책임자로서 좀 더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국가주도형으로 중앙집중화된 정부체제와 국가운영체제가 현장에서의 순발력을 다 죽여버렸다.”

―그래서 얼마나 준비가 됐나.

“몸을 풀고 있다. 열심히 배우고 준비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싶다. 또 거기에 기여하고 싶다.”

―19대 총선 민심을 어떻게 정리했나.

“분명한 사실은 집권 여당에 대해서 국민들은 충분한 경고를 보낸 거고, 야당이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된 것이다.”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투표라는 것은 가장 저질스러운 집단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행위’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한 것은 그런 면에서 차악의 선택이었다고 보지 않나.

“그건 너무 시니컬한(냉소적인) 것 같다. 이데아는 현실 세계의 영역은 아니지 않나. 이데아의 근사치들을 갖고 사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받았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후 모습은 어떤가.

“20세기 방식에 의해 헤게모니(패권)를 쥐고 권력투쟁 하는, 무리 짓기 정치는 그만해야 한다. 그건 아닌 거 같다. 순혈주의적 세계관은 20세기적인 것이다.”

―국회와 여야 정치권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점도 있지 않나.

“민주주의란 절대적 진리관에서 상대적 진리관으로, 다원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계몽군주나 임금님 시대의 정치를 하고 있다. 더민주뿐 아니라 여의도정치가 다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다면.

“대통령 마음이 평화로워지길 바란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려면 그냥 국민 뜻을 받아들이는 게 좋더라.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 하는 순간부터 지도자는 괴로워진다.”

―누구나 자기 뿌리가 있다. 안 지사의 출발은 친노다. 지금의 정체성은 뭔가.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집안의 장자가 되겠다고 했다. 사람은 늘 누군가를 몹시 존경하고 그분을 따라 배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기에 갇혀 있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걸 뛰어넘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게 자연진화의 법칙이고 인생의 진실이다. 그러니까 이미 흘러가고 있는 사람에 대해 노무현이다 김대중이다, 거기에 가두어 놓으면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을 닮고자 했지만 지금은 거기서 벗어났다는 의미인가.

“이승만과 김구의 역사, 박정희의 역사, 김대중·노무현의 역사를 뛰어넘는 과제에 집중할 것이다.”

―독립운동의 역사, 산업화의 역사, 민주화의 역사를 뛰어넘는 안희정의 역사 브랜드는 뭔가.

“모든 인류역사를 관통하는 건 결과적으로 평화 아닐까. 민주주의와 평화.”

―정치인의 덕목은 연예인의 덕목과는 다르다.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뭐라고 보나.

“음식으로 치면 짜지도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적절한 형태, 균형 잡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핵심적으로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국가지도자의 영역이다.”

―대한민국 경제 위기는 어디서 나왔나. 공정성인가.

“그 질문은 국력과 경제의 활력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인 것 같다. 한 국가의 경제가 어떻게 활력 있게 미래를 만들어 번영의 길로 가게 될까. 핵심은 공정한 경쟁 기회의 부여다.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종합처방이 나오지 않은 채 항생제만 먹고 있다.”

―공정한 경쟁 기회만 부여되면 경제 활력은 다 되나.

“경제정책으로 말하자면 외교안보전략이 정말 중요하다. 만약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해 우리가 좀 더 다른 방식을 구했다면 이란시장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우리가 협력하더라도 어떻게 독자적인 외교전략을 갖고 실질적으로 우리 기업과 경제에 번영의 기회를 주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게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이다. 중·일 간, 한·일 간 정치적 의제와 경제적 의제를 분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 지도자들이 경제와 시장을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해줘야 할 일은 외교안보전략이다. 또 시장의 도전 가능성을 열어주려면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이 풀지 못하는 수직계열화된 전 세계적 질서 내에서 어떻게 자기 변화를 꾀할 것인가 하는 비전을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단기간에 안된다. 임기 4년, 5년 하시는 분들이 단기간에 성과 내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국가에 물의를 빚는 일이다.”

―경제를 살리는 건 국정의 연속성 문제와 관련 있다. 어떤 게 필요한가.

“제도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더 강조하고 싶은 건 좋은 지도자의 출현, 그리고 좋은 지도자를 보는 시민역량의 성숙이다. 이 시대의 역량을 누가 높이는가.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물고 오듯 좋은 지도자들이 해줘야 한다. 저는 정치인으로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역량을 보여주고 있나.

“현존하는 선배 정치인 중 가장 신뢰하는 분이다.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좋은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거의 대권 의지를 굳혔다.

“나는 내 길을 가는 것이고, 주인인 국민이 선택해야 할 문제다.”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정리 =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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