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약장수에서 OEM 다단계상까지..'만병통치약'의 변천사

2016. 5.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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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 타고 퍼졌던 가내수공 가짜 약→대량생산 대량소비 무허가식품
'만병통치약' 제조 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약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분소에서 '만병통치약' 제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입소문 타고 퍼졌던 가내수공 가짜 약→대량생산 대량소비 무허가식품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시골 장터 한쪽에서 검은 천으로 덮인 철창 안에 진귀한 뱀이 들어있다고 목소리 높이던 약장수.

인터넷·통신판매와 다단계영업 유통망을 확보해 온갖 화학성분과 전문용어를 나열하는 법인 대표와 중개상.

'만병통치약'은 시간 흐름에 따라 제조자의 신분이 달라졌고, 포장법도 변모했다.

가짜 약도 약이라는 나름의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입소문을 타고 퍼졌던 만병통치약은 가내수공업에서 탈피해 대량생산 대량소비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장 광고에 기댄 무허가식품을 주문자 상표 제작(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유통한 농업법인 대표가 경찰에 적발됐다.

◇ 엉터리 한의사 전성시대…부작용은 치명적

뱀, 지렁이, 개구리, 붕어 등을 푹푹 삶거나 초오 등 조선시대 사약 재료까지 섞어 넣은 가짜 약 제조는 민간요법에 정통한 무면허 한약사들의 집안에서 주로 이뤄졌다.

갖가지 한약재를 사용한 만큼 가짜 약은 가끔 효험을 보여 먹어본 사람의 권유로 전파됐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1990년 10월 22일 유황을 섞은 한약재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판 80살 노인이 대전 서부경찰서에 입건됐다.

이 노인은 4년 9개월 동안 19명에게 가짜 약을 팔았다. 신경통을 앓아온 한 30대 주부가 이 약을 먹었다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1995년 10월에는 한약재 20여 종으로 가짜 약을 제조해 서울, 부산 등으로 유통한 일당 3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갈근, 구기자 등의 한약재를 임의로 혼합해 '토종대보초'라는 이름을 짓고 1개당 제조원가 5천원짜리를 12만원에 팔았다.

몸을 보호하고 건강을 지켜준다는 말에 속은 피해자 일부는 금전 손해와 더불어 심한 두드러기와 가려움증, 두통에 시달렸다.

무허가 한의원을 차려놓고 엉터리 약을 지어 노인 100여명에게 판매한 30대 남성도 적발됐다.

이 남성은 1998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전피 등 중국산 약재에 가물치, 지네 등을 섞은 한약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2천100여만원의 이익을 취했다.

2000년 12월에는 스테로이드계 부산피질 호르몬이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강보조식품이 만병통치약으로 유통된 바 있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피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돕고 세포조직을 활성 시키는 효능이 있지만, 장기복용하면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면역력 약화 등을 일으킨다.

이를 복용한 부산 기장군·울산 울주군 주민 일부가 피하출혈증세를 일으켜 입원치료를 받았다.

◇ 가공식품으로 대량생산…OEM 방식도

최근 보건당국에 적발되는 만병통치약은 플라시보(Placebo) 효과로 알려진 심리적 기대를 악용한 무허가식품으로 '맹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는 제조법에 의존해 남녀노소 체질 구분 없이 먹어도 문제가 없을 만한 식자재를 무작위로 혼합하고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양배추 삶은 물, 돼지감자, 미숫가루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자재가 주재료다. 유행따라 주목받는 1∼2가지 원료가 홍보 목적으로 첨가된다.

효과도 별로 없고 부작용 또한 드물지만,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약처럼 먹은 피해자들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를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질병 치료에 탁월한 것처럼 속이고 판매한 이모(76)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이씨 등으로부터 제품을 사들여 웃돈을 받고 전국의 한의원에 유통한 남모(54)씨, 이를 환자들에게 되판 김모(56)씨 등 한의사 20명도 입건했다.

이씨 등은 한의학 약전을 참고해 어성초, 감초, 당귀, 쥐눈이콩, 짚신나물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자재를 임의로 섞었다.

이들은 농업법인 이름으로 식초 공장을 지어 무허가식품을 만들어 대량생산된 제품은 전국으로 유통됐다.

어성초, 삼백초 등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천연재료와 확인할 방법 없는 갖가지 화학성분과 의학용어를 앞세워 허위 광고했다.

경찰은 식품이 서울에 본사를 둔 다단계회사에 OEM 방식으로 납품된 정황을 포착하고 해당 업체 관계자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4대악 척결을 과제로 불량식품 단속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2013년부터 과장 광고로 서민 주머니를 터는 공장생산 무허가식품이 표면 위로 떠올랐다"며 "과거에는 약사법 위반 사례가 많았는데 지금은 식품위생법 위반 사범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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