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와 백야의 거리..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오슬로(노르웨이) | 정유미 기자 2016. 5. 2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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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하얀 듯 푸른 듯…북극의 밤은 낮보다 멋스럽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하면 가장 먼저 노벨평화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여행객에게 오슬로는 노르웨이 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오슬로는 한적하고 조용하다. 고풍스러운 북유럽풍 건축은 세련미가 있지만 화려함보다 소박함에 가깝다. 오슬로는 노면전차 트램과 자전거가 한폭의 그림 속에서 다투지 않고 어울리는 도시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밤은 아름답다. 백야가 끝나고 어둠이 내리면 흐르는 강물 위로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뭉크를 만나다’ 오슬로의 낮

한국에서 13시간30분 비행 끝에 내린 오슬로 국제공항은 참 아담했다. 해마다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거행되는 세계적인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공항 규모가 작았다. 공항만 그런 게 아니다. 도시 전체가 아담 사이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검박함은 익히 알려졌지만 직접 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노르웨이 하면 에두바르 뭉크를 빼놓을 수 없다. 백야의 오슬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다 보면 뭉크가 저절로 떠오른다.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 남동쪽 오달스브룩에서 태어났다. 격렬한 색채의 표현주의 작가는 ‘절규’ ‘마돈나’ ‘병든 아이’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44년 80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일기에서 “숨을 쉬고,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존재를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검푸른 해안선, 온몸을 떠는 남자의 ‘절규’가 강하게 잔상으로 남는다.

지도 한장을 들고 ‘뭉크 뮤지엄’으로 향했다. 노르웨이어는 말하고 듣기는커녕 글자조차 읽기 어렵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니 믿고 가보는 수밖에. 노르웨이 관광청 한국사무소 대표 낸시는 “뭉크 뮤지엄도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케르강을 따라 죽 걸었다. 오슬로의 강은 강이라기보다 골목골목을 휘돌아 흐르는 동네 실개천 같다.

30분쯤 걸었을까. 강을 벗어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왔다. 현지인에게 ‘뭉크 뮤지엄’을 물었더니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공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가 잘못 가르쳐준 건지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지 도착해보니 민속촌이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꼬마들이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인형 같은 아이들을 졸졸 따라가며 봄소풍 나온 것처럼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다시 길을 물으니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했다. 막상 가 보면 다른 박물관이었다. 묻고, 또 묻고 해서 마침내 뭉크 박물관을 찾았다. 안내원에게 ‘절규’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오리지널 ‘절규’는 볼 수 없었지만 ‘마돈나’ ‘자화상’ 등 다른 작품들이 충분히 보답을 해줬다. 작품 하나하나 감상할 때마다 그 강렬한 색채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오슬로의 거리에선 분주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도시 전체가 느릿느릿 산책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느긋하고 여유롭다’ 오슬로의 밤

밤 10시. 오슬로의 야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도시는 여전히 백주대낮 같다.

낮이 길면 할 일이 많아지고, 퇴근시간이 늦어지지 않을까. 금세 바보 같은 생각임을 알았다. 가벼운 옷차림의 직장인들은 강가를 달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은 산책을 즐겼다. 백야의 도시는 쉽게 잠들지 못했지만 ‘저녁이 넘치는 삶’으로 충만해 있었다.

흙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오리가 둥둥 떠다니는 강을 다시 건넜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네모난 액자를 만들어 저 멀리 등대 같은 교회를 담으니 예쁘다. 길은 아스팔트 대신 울퉁불퉁하거나 네모난 오래된 돌들로 바둑판처럼 모자이크했다. 북유럽의 옛 도시의 멋이 그대로 살아 있다.

백야의 오슬로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어둑해졌다. 가로등이 켜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최신 유행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Bar)에 들어가봤다. 멀찌감치서 봐도 젊은이들이 일렉트로닉 음악에 취한 듯 보였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젊은이들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몸을 비볐다. 늘씬한 여성과 핸섬한 남성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오슬로의 밤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표정을 갖고 있었다.

건너편의 바도 궁금해서 기웃거렸다. 실내 분위기와 풍경이 사뭇 달랐다. 1900년대 초중반 그 언저리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옛날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촌스럽게 의상을 맞춰 입은 노르웨이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빙그르르 돌리고, 서고, LP판 음악에 맞춘 댄스파티였다. 올드 뮤직 바라서 그런지 앞에 들른 곳보다 한층 여유로웠다.

자정이 지나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펍(PUB)에서 삼삼오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자(HANSA)’ 생맥주를 사이에 두고 그들은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오슬로 어디에도 휘황찬란한 불빛은 없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줄에 걸어놓은 가로등만이 오슬로의 느긋한 밤을 밝히고 있었다. 백야의 오슬로는 깨어있어도 평화로웠다.

<오슬로(노르웨이) |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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