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와 폄하, 우리가 몰랐던 반기문의 '민낯'

2016. 5. 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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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의겸의 우충좌돌
새벽 한국 언론 훑기로 시작
유엔 한국인 직원이 동향 챙겨
정치인 방미땐 짬내서 꼭 만나
유엔 내부선 “해야할 일 놔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2015년 1월 4일 유엔 비공식회의에서 ‘포스트 2015’ 의제에 대한 종합보고서 ‘2030년까지 존엄으로 가는 길’의 발간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위인으로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의 책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너무도 무능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다.”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

한 사람을 두고 나라 안팎의 평가가 완전히 다르다. 이런 극단의 상황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진짜 얼굴’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그의 민낯을 들여다보고자 미국 뉴욕 외교가의 소식통들과 언론인들로부터 얘기를 들어봤다.

# 대권 도전 할까 말까?

최대의 관심사다. 25일 한국을 찾은 반기문 총장에게 쏟아질 질문도 여기에 집중될 것이다. 그는 지금껏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주변의 정황들은 그가 꽤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 사무총장 관사는 뉴욕 이스트리버 강변에 있다. 유엔 본부까지는 1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반 총장은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장욱진 비서가 가져다주는 언론 보도 스크랩을 들춰보는 일이다. 장욱진 비서는 반 총장이 외교부 차관과 장관일 때부터 비서로 일했던 외교관으로 반 총장의 심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준비한 스크랩 맨 위의 기사들은 CNN도 AP도 뉴욕타임스도 아니다. 반 총장을 다룬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다. 세계 각국의 분쟁보다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우선인 셈이다.

반기문은 유엔의 사무총장이다. 유엔의 공보실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행한 업무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 정치와 관련된 반기문의 동향은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이 따로 챙긴다. 우리나라 외교관 출신인 김원수 사무차장은 유엔 군축고위대표도 맡고 있다. 무기거래·핵무기·대량살상무기 등 유엔의 군축·무기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다. 그가 ‘가욋일’로 반기문 총장의 ‘정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 동향은 군축 부서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이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유엔 직원 역시 한국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반 총장의 외교부 선배다. 외신들이 “반기문 사무총장이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유엔의 사무총장은 늘 감시받는 대상이다. 5개의 상임이사국뿐만 아니라 193개 회원국들이 사무총장의 동선에 관심이 있다. 자신의 국익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공개적으로 한국인들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인이 뉴욕에 오면 반 총장은 잠시라도 시간을 내 만난다. 물론 비공개다. 그 만남은 주 유엔 한국대표부나 뉴욕의 총영사관이 주로 주선하고 있다.

# 대통령으로서 능력을 갖추었나?

반기문 총장은 별명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반반(半半)이다. 뭔가 애매한 어법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는 적당한 처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반반(潘半)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반(潘)기문의 반(半)만 해도 성공한다’는 뜻이란다. 그만큼 반기문 총장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거다.

반 총장의 부지런함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는 1년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객지에서 보낸다. 한 해 평균 45개국, 43만여km를 돌아다녔다. 지구 둘레가 4만km이니 1년에 지구를 10 바퀴 이상을 돌아다닌 셈이다. 올 연말 10년 임기를 마치면 지구 100 바퀴를 돌게 된다.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다. 코피 아난 전임 사무총장의 해외 일정은 헐렁했다. 공식 일정 하루 전에 출장지에 도착해 쉬고, 뉴욕에 돌아와서도 하루 정도는 휴가였다. 그러나 반 총장은 출장을 가도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일하는 일벌레다. 가나의 귀족 출신과 한국의 빈농 출신의 차이점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유엔 내부에서는 불만이 많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놔두고 생색나는 곳만 돌아다닌다”는 비판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유엔 사무조직을 이끄는 ‘조직의 수장’ 성격이 강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는 능력이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그가 바쁜 해외 일정 때문에 협의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신이 “그는 인권 보호를 위해 용감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명예 박사 학위나 챙기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비판하는 게 아주 근거없는 말은 아닌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 취임 이후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연거푸 4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다. 반 총장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엔 직원들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데 반 총장이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른바 ‘열린 공간’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유엔은 본부 건물이 비좁아 뉴욕 맨해튼 여기저기에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짐작하듯이 맨해튼 임대료는 살인적이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이 내린 결정이 “앞으로는 먼저 출근한 순서대로 아무 자리에나 먼저 앉는다”이다. 값비싼 외부 사무실을 줄이고 직원들을 본부로 불러들여 비용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유엔본부에서 일하는 6천600명 가량의 직원들 가운데 국장 이상의 간부를 빼고는 모든 직원들이 자기 책상이 없어졌다. 당연히 직원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영업사원이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반 총장은 이를 ‘개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반기문 식 효율성이다. 지난해 여름 일이다. 내년에 ‘반기문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도 자기 책상이 없어질지 모른다.

물론 반기문 총장의 유엔 개혁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세계적 철밥통’인 유엔에서 인사 교류의 칸막이를 없앤 게 대표적이다. 유엔 직원은 대부분 뉴욕 제네바 빈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험한 분쟁 지역 근무는 기피해서 이들 두 지역 간의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험지에서 본부로 들어오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고 본부에서 험지로 나가려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반 총장은 ‘고인 물’을 흔들었다. 뉴욕 제네바 빈에서의 근무 연한을 최장 7년으로 제한하고 분쟁 지역은 3년으로 정해 근무 연한이 차면 반드시 다른 근무지로 이동하도록 한 것이다.(<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건 몇 년 뒤의 일이다. 반면 책상이 없어진 허전한 현실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반기문 총장에 대한 유엔 내부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5월 6일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총장과 만나고 있다. 뉴욕/청와대사진기자단

# 뼛속까지 친미인가?

변방의 나라 한국의 외교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반 총장은 미주국장을 거치는 등 외교부에서 미국통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레 미국의 논리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유럽과 비동맹세력들은 반 총장이 지나치게 친미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외교적 무례에 가까운 대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 총장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석에서는 미국의 ‘갑질’에 대해 분노를 토로하기도 한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반 총장이 했다는 말을 전한다. 때는 2013년 8월,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무렵이다.

“서맨서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한테서 전화가 왔어. 미국이 공습을 할 수 있도록 시리아에 들어가 있는 유엔 현장 조사단을 빼달라는 거야. 그 여자 말이 얼마나 빨라. 대충 듣고 알았다고 했는데, 좀 있다가 존 케리 국무장관한테서 전화가 오는 거야. 그 친구하고 알고지낸 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독촉을 하는 거야. 빨리 조사단 철수시키라고. 기분이 좀 상해 있는데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한테서까지 전화가 오는 거야. 차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차를 세우라고 했지. 오바마가 ‘Pack and leave!’를 세 번이나 외치는 거야. 우리말로 하면 뭐야. 당장 짐싸서 떠나라는 거 아냐. 그래서 나도 맞받아쳤지. ‘뭐가 그리 급하시오! 화학무기 조사단의 보고나 들어보고 얘기합시다.’ 결국 내가 이겼지. 오바마가 폭격 명령을 거둬들인 건 나 때문이야.”

# 친박의 지원은 독일까 약일까?

친박이 반기문 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민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뉴욕 외교가에서도 이런 조짐은 이곳저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 총장의 대외 활동비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대통령 수준의 연봉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니 40만달러(약 4억8천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은 판공비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전직 사무총장들은 직원들하고 밥을 먹어도 제 밥값을 각자 내는 ‘더치 페이’를 했다. ‘동양의 예법’으로는 너무 어색하다. 그래서 반 총장은 사재를 털어 밥을 사고 와인을 대접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뉴욕 외교가는 주 유엔 한국대표부가 반기문 총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반 총장이 주재하는 자리에는 대개 주 유엔 한국대표부의 오준 대사나 직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최측근인 윤여철 외교관이 지난 2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윤 비서관은 2006년 11월 반 총장이 선출된 뒤 그를 보좌하기 위해 외교부에서 유엔으로 파견됐던 ‘반기문 사람’이다. 그는 반 총장을 위해 일하다 지난해 10월에야 귀국했다. 꼬박 9년 동안 반기문 총장을 모셨으니 반 총장의 가족과도 막역한 사이다. 그런 윤 비서관이 이번엔 청와대로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니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사무총장 사이의 ‘연락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방문 기간 동안 반 총장과 일곱 차례나 만나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반 총장에게 박 대통령의 지원이 도움이 되는 걸까?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더 싸늘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친박으로서는 반기문에 대한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반기문 총장으로서는 친박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후보가 되기는 더 쉬어진 셈이다. 하지만 정작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박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색체를 분명히 하면서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과감하게 발언하고 머뭇거리지 말고 뛰어들어야 한다.

반기문 총장의 또다른 별명은 ‘기름바른 장어’다.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쏙쏙 잘도 빠져나가서 기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이 별명은 어느새 한자어로 변형돼 기름 유(油)에 뱀장어 만(鰻)을 쓰는 ‘유만’이 되었다. 반 총장은 이 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어느 한학자를 찾아가 유만을 다른 뜻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움직일 유(趡)에 일만 만(萬)을 쓰는 유만 즉 ‘세상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바꿨다. 반 총장은 가끔씩 사석에서 “내가 별명을 바꿔서 세계의 대통령이 됐다”는 농담을 했다. 한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이상 유만(油鰻)이어서는 곤란하다. 진정 유만(萬)하고자 한다면 유만(油鰻)을 버려야 한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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