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 '조영남 대작' 송기창 화백 "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임태우 기자 2016. 5. 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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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후 조영남한테 전화하니..밥 먹어야 하니 끊으라고 해"


가수 조영남 씨 그림을 대작했다는 논란의 주인공은 60살의 화백 송기창 씨입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일찍이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미술계를 전전하다가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백남준 작가의 조수로 일한 경력도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조영남 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고, 지금의 대작 논란을 불러왔을까요? SBS 뉴스 취재진은 송기창 화백을 직접 만나, 2시간에 걸쳐 풀리지 않던 궁금증에 대해 낱낱이 물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기자) 화백님, 조영남 씨와는 언제부터 아시는 사이였나요?

(송 화백) 2008년에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미국에서 전 '카이'라고 불렸어요. 미국 유학 중에 형(조영남 씨)을 만났고 그때부터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죠. 저하고 나이 차이가 크지 않으니까,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형이라고 불렀죠. 

(기자) 한국으로 오신 후에는?

(송 화백) 2009년쯤 형한테 전화해서 만났죠. 처음에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 간 건 아니고, 잘 있는지 인사차로요. 그 시기에 형이 전시를 해서 자주 따라갔어요. 거기에 그림들을 많이 걸어놨어요. 그래서 제가 그림 배치 같은 걸 좀 도와주려고 간 거죠. 자진해서요. 형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자) 그러면서 점점 그림에 대한 대화를 나누신 거군요.

(송 화백) 네, 그때 형의 전시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거 그려달라, 저거 그려달라, 뭐 이건 어떤 걸로 하는 게 좋겠니…. 아이디어도, 콘셉트도 형이 내놓은 것이지만 아무래도 제가 작가고 친하다 보니 형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죠.

(기자) 오히려 화백님이 아이디어를 주신 부분은?

(송 화백) 제가 콘셉트를 주고 했던 건 없어요, 전혀요. 만약 제가 형이었어도 전시를 앞두고 이 작품은 어떻겠니? 형이 이거 작품 내면 어떻겠어? 이 전시에는 잘 어울릴까? 그런 식으로 친한 동생에게 물어볼 순 있겠죠.

(기자) 당시 조영남 씨의 아이디어는 어떤 내용이었죠?
 
(송 화백) 형이 데생이나 전문적인 그림 실력은 없으셔도, 위트 있고 코믹한 센스는 잘 잡았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좋아했던 것 같고. 팝 아트는 아니지만, 펀(fun) 아트, 재밌는 아트라고 그랬죠. 저도 많이 웃었죠. 웃는 게, 그게 펀 아트입니다. 컨템포러리 장르에 속한다고 주장하셨고, 저도 거기에 특별한 이견은 없었어요.

(기자) 그러면서 조영남 씨가 직접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건가요?

(송 화백) "너 조수 할래?" 그런 식으로 얘기를 꺼냈죠. 그 이후 종종 그림을 부탁해왔는데, 어려운 것만 시킵니다. 형이 할 수 없는 것. 화투 한 작품에 담긴 꽃다발처럼 디테일이 필요한 부분들요. 그런 것들은 그리다 보면 눈이 아파요.

(기자) 작업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송 화백) 색상을 넣는다든지. 참, 화투 그림은 단순하기 때문에 딱히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화투의 오광을 그려달라는 정도. 그런데 오광은 이미 나와 있지 않습니까? 배열하는 건 저더러 하라고. 어색한 구도는 제가 잡죠. 잡아서 올리면 괜찮네 하고, 거기서 또 이런 식으로 그려달라고 말씀하시고.

(기자) 또 다른 요구는요?

(송 화백) '오감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는데, 그건 형이 좀 채색하고. 오감도라는 글씨체가 어디서 나왔겠어요? 성경책 같은 붓글씨도 아니고. 명조체? 그 폰트를 보고 따라 그린 게 아니라, 제가 나름 고민해서 창안했어요. 그 다음 제 손을 벗어나면 형이 색칠하고 디자인을 넣고 그랬던 거죠.

(기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송 화백) 음, 힘든 것도 있었죠. 디테일하게 가능하면 똑같이 그려달라는 주문도 있었고. 예를 들어서, 만삭이라든가. 제가 화개장터까지 찾아간 뒤 경치를 확인한 적도 있어요. 오토바이 타고요. 사진까지 찍어와서 작업했죠.

(기자) 그동안 조영남 씨의 그림을 얼마나 작업하셨죠? 300점이란 얘기도 있던데…

(송 화백) 그려준 그림이 200점이냐, 300점이냐는 얘기는 어떤 기자가 "대략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봤을 때 나왔던 거예요. 내가 보기에 한 200점 될까요, 그렇게 답했죠. 그런데 그게 뻥튀기돼서 300점까지 부풀려졌어요.

▼ 송기창 화백은 조영남 씨가 대작 논란에 휘말린 사태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작했다는 사실을 알린 게 본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린 건 송 화백이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었습니다. 집주인이 ‘우리 집에 조영남 씨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사람이 산다’라고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자) 조영남 씨를 고소한 게 화백님이 아니라고요?

(송 화백) 네, 당연하죠. 첫 번째로 저와 친분이 있는 형을 제가 어떻게 고소를 한단 말입니까? 그건 망언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은요. 제가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진 거죠. 사건이 커지니까 저는 숨어다니고, 형한테 전화할 수도 없고….

(기자) 조영남 씨가 대작 논란에 휘말리기 전에 뭘 하셨죠?

(송 화백) 지금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형한테 "갑자기 기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내가 아는 지인들도 옆에서 그걸 듣고 있었고요. 그리고 형의 연락을 기다렸어요. 형이 한 마디라도, 야 이거 어떻게 된 거니? 라고 물을 수 있었을 텐데도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통화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자) 화백님을 찾아온 기자는, 직접 부르신 게 아니군요?

(송 화백) 네. 집주인과 친분이 있던 어떤 기자가 절 찾아와서는 형의 그림을 제가 그린 사실을 밝히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는데, 처음엔 제가 거절했죠. 말도 없이 왜 사진을 찍느냐고 화도 냈고요. 하지만, 집주인 아저씨가 너무 좋은 분이고 해서 허락했던 거죠.

(기자) 그리고는요?

(송 화백) 형한테 전화했어요. 기자가 들이닥쳤을 때요. 그런데 형은 저한테 화를 내면서 "조수라고 하면 되잖아, 조수 맞지?" 조수라면 조수죠. "그래, 조수라고 하면 된다. 신경 쓸 거 없어. 나 밥 먹어야 하니까 전화 끊어." 그런 식으로 통화했었어요.

(기자) 정리하자면, 지금의 사태는 화백님이 원하신 게 아니었다?

(송 화백) 네, 원치 않은 일이 벌어져서 전 지금 만신창이에요. 형 생각하면, 만신창이가 돼서 죽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머니도 계시고 형도 있어서. 형이 병원에 드러누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나와 형의 관계가 이렇게 와전될지 생각도 못 했고. 이 사실을 인터뷰한 나도 잘못이지만, 형도 저더러 조심하라는 얘기를 전혀 안 했어요.

(기자) 정말로 궁금한 게, 조영남 씨에게서 그림을 그려주고 돈은 받았나요?

(송 화백) 저는 돈 얘기를 꺼내질 않았어요."그냥 용돈 써라." 식으로 썼고 주면 그냥 고맙다고 했어요. 저는 상대방 앞에서 돈 세는 걸 싫어하고, 세지도 않아요. 나중에 혼자 있을 때 그걸 세고는 그냥 집어넣어요. 흘리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죠. 물론, 형이 준 돈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적도 있어요. 그림이 1000만 원에 팔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형 재주 있네 라고 생각했죠. 형이 인기가 있으니까 그만큼 팔릴만하지 싶다가도, 내가 그려준 건 생각 전혀 안 하는 걸 보면 섭섭하죠.

(기자) 돈을 넉넉하게 챙겨주진 않았던 거군요? 

(송 화백) 어느 날 말없이 백만 원을 줘요. 왜 주는데요 제가 그랬어요. 그냥 갖다 써. 아마 제 생각인데 그때 작품이 1000만 원인가에 팔려서 수고한 것 때문에 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지만, 형이 돈에 있어서 그렇게 관대하다고 볼 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 문제는 둘만의 관계니까 굳이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림을 계속 붓을 잡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 계기를 만들어준 형한테 원망 같은 건 없다고 봐요.

(기자) 그럼 화백님이 그린 그림을 조영남 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비싸게 팔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나요?

(송 화백) 지금 여론이 조영남 씨 그림 얘기를 하면서 어떤 그림은 모 국회의원이 갖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런 거 관여 안 하죠. 그분이 그림을 1억에 사든 얼마에 사든 내 손에서 벗어난 거예요. 그건 형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리라고 해서 제가 그렸고 팔린 것인데, 제가 무슨 왈가불가할 자격이 있습니까? 형의 그림인데!

(기자) 마지막으로 심정은?

(송 화백) 형한테 바라는 건 빨리 건강 찾으시고. 나로 인해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돼서 너무 죄송하고 더 나아가서 여러 작가분들한테도 누를 끼친 것 같아요. 제가 뭐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미국서 조금 활동하다가 와서 형 돕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너무 억울할 따름입니다. 

취재 : 조지현 기자 / 기획·구성 : 임태우 기자 / 그래픽 디자인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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