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생활보조금' 최영미 "붓 꺾을 생각도 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16. 5. 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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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세, 1권당 10% 정도에 불과
-문학상 상금 수상도 하늘의 별따기
-도서 유통과정이 작가의 몫 줄여
-원고 청탁도 많아야 1년에 2건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영미(시인)

지난 주 소설가 한강 씨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죠. 금세라도 노벨문학상이 나올 것처럼 우리는 기뻐했습니다. 그런데요.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몇 시간 전 시인 최영미 씨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간 소득 1300만 원 미만의 무주택자라 생활보호 대상자란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닌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생활보호대상자라니 참 보고도 믿기 어려웠는데요. 우리 문학 왜 노벨상이 안 나오느냐를 논하기 전에 우리 문인들의 현실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영미 시인을 저희가 어렵게 섭외했습니다. 직접 만나고 가죠. 최영미 시인, 안녕하세요.

◆ 최영미>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SNS에 쓰신 글이 너무도 담담한 필체여서 저는 더 울컥하던데요? 예상치 못한 전화셨습니까?

◆ 최영미> 그렇죠,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세무서에서 나한테 전화 올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고 근로장려금이 뭔지 몰라서 전화를 끊고 우편함을 열어봤더니 우편물이 와 있더라고요.

◇ 김현정> 그 우편물에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면서 1년에 59만 원이든가요? 지급하는 장려금이?

◆ 최영미> 숫자에 약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하여튼 50만 원 넘는 돈을 줄 예정이다, 신청해라, 이런 얘기였죠.

◇ 김현정> 최영미 시인도 놀라셨겠지만 최영미 시인 못지않게 대중들도 팬들도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영미 시인 아닙니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그 시인. 이게 몇 쇄까지 인쇄가 됐었죠, 이 시집이?

◆ 최영미> 저는 정확히 모르고요. 한 52쇄? 그런데 이게 벌써 20년 전 이야기예요, 20년 전.

◇ 김현정> 이게 한 50만부 나가지 않았나요? 그래서 사서 읽은 분만 해도 5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잖아요.

◆ 최영미> 그렇죠.

최영미 작가의 글. (사진=SNS 화면 캡처)
◇ 김현정> 1994년 출간 당시 얼마나 선풍적이었는고 하니, 문단이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 이 시의 제목은 유행어가 됐고, 그 해 신문사들이 선정한 10대 상품에 뽑힐 정도였습니다. 그런 최영미 시인이 어떻게 생활보호대상자란 말이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 최영미> 저는 별로 놀랍지 않거든요. 문단의 작가들은 대충 다 비슷한 현실이니까. 말하자면 한국에서 작가로 살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 김현정> 두 가지 길이요?

◆ 최영미> 네, 예를 들면 1년 혹은 2년에 한번 책을 내고 그 책이 2만부는 나가야 생활이 돼요. 2만부 책이 나가면 작가한테 돌아오는 것이 한 2000만 원이예요.

◇ 김현정> 2만부씩이나 나가는데도 2000만 원밖에 안 들어온다는 건 한 권당 인세가 얼마나 되길래 그렇습니까?

◆ 최영미>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있는데 책값 정가의 10%를 받아요.

◇ 김현정> 작가한테 가는 게 10%밖에 안 돼요?

◆ 최영미> 네, 보통이요. 그것도 많은 거에요. 산문집은 7~8%? 10%도 못 받아요. 왜냐하면 거기에 이제 그림 도판이 들어가니까 그 도판 비용이 든다고 해서요. 하여튼 정가 그대로 작가한테 가는 것이 아니에요, 우선.

◇ 김현정> 그러면 대중적으로 아주 인기가 있는 생존의 길이 하나가 있고요. 그렇지만 이런 작가는 전체 비중, 퍼센트로 따졌을 때는 몇 안 되잖아요?

◆ 최영미> 한 20명 될까요? 그런 베스트셀러 작가, 말하자면 책을 팔아서 생활하는 작가는 제 생각에는 한국에 몇 십 명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다음 두 번째 생존의 길은 평론가들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아서 문학상을 타는 거예요.

◇ 김현정> 상을 타는 것이요?

◆ 최영미> 그러면 상금이 나오죠. 상금이 5000만 원이거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국에도 1억 원을 주는 상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불행히도 그런 상은 하나도 못 받았어요. (웃음) 제가 받은 유일한 상은 딱 하나인데 알려진 상이 아니지만 '돼지들에게'라는 시집으로 한 10년 전에 상을 탔었고요. 그 상의 상금이 1000만 원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좋아했죠, 공돈 들어왔다고. (웃음)

◇ 김현정> 아니, 우리나라의 대문학가가 1000만 원 상금 받고 '이야, 나 이거 얻어서 너무 좋다'라고 할 정도가 된다는 건 굉장히 씁쓸한 현실이잖아요?

◆ 최영미> 사실 저는 그때가 2006년이었는데요. 그 즈음부터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사실 저는 그 상 받기 전에 '작가는 한국에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것 같다. 뭔가 다른 길을 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아예 붓을 꺾을 생각까지 하셨던 거에요, 최영미 작가가?

◆ 최영미> 사실은 그랬습니다. 한 10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10년 전부터 생활이 안 되더라고요.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생활이 안 될 정도라서…. 하지만 출판계에서 이런 얘기는 합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품이 많이 팔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제작비 부담 때문에 인세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 반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영미> 글쎄, 일리가 있는데요. 제 생각은 그렇죠. 자세히 도서 유통과정은 모르지만 유통과정에 문제가 있어요. 중간 마진을 아주 많이 먹는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유통과정에서 서점에 진열되기까지 몇 단계가 있어요, 계속 이게 붙는 거에요.

◇ 김현정>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향하고, 또 내려가고 이런 식으로 유통과정 거칠 때마다 계속 마진이 붙는 군요?

◆ 최영미>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점점 작아지는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다 보니까 작가에게는 10%도 잘 받는 것이군요?

◆ 최영미> 그렇죠.

◇ 김현정> 그러면 다른 부업 안하고 오로지 글만 쓰는 전업 작가들은 대부분 생활이 최영미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겠네요? 집이 부자가 아닌 이상은요?

◆ 최영미> 그렇죠, 저보다 더 어려운 작가들 아주 많고요. 저는 그래서 통보를 받고 제가 놀랐던 게 저는 사실 가난하다고 생각 안 했어요. 후배들의 더 어려운 사정을 내가 많이 아니까요. 그래서 사실 저도 놀랐죠. 상대적인 빈곤감 그런 걸 느낀 거죠.

◇ 김현정> 묘지관리인 하는 성윤석 시인도 계시고, 인삼 점포로 생계꾸리는 함민복 시인 같은 분도 계시고 그러니까 이런 얘기가 최영미 시인한테는 이게 뭐 흔한 얘기군요. 놀랄 얘기도 아니군요?

◆ 최영미> 그렇죠,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세상물정 모르고 50이 넘어서 제가 지금 다른 거 뭘 할 수 있겠어요?

◇ 김현정>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이제는 노벨문학상이다' 이런 이야기 할 때 최영미 작가는 한편으로 좀 헛헛하셨겠어요.

◆ 최영미> 씁쓸했죠, 사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상을 타지 않았다고 훌륭하지 않은 작품이 아니에요. 저는 예술 작품은 시험지 점수 매기듯이 점수를 매긴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취향이 다 다를 뿐이예요.

◇ 김현정> 그러네요. 한강 작가가 상 타던 날 저희가 한승원 씨와 인터뷰, 한승원 작가와 인터뷰를 했는데 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가난한 글쟁이가 되는 것을 말리지 않은 우리 아내한테 감사한다.'

사실은 그 말 들으면서도 글쓰는 분들이 그렇게 힘든가? 말려야 될 만큼 힘든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오늘 비슷한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선배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점이 좀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십니까?

◆ 최영미> 제가 잘한 게 있다고 후배들한테 할 말이 있겠습니까? 별로 없고요. 그냥 아무튼 버텨보자, 이런 정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현정> 버텨보자. 그래요. 독자들께도 한 말씀 꼭 좀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 최영미> 요즘 영화의 시대다 보니까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100만 명 본다. 1000만 명 몰려가요. 막 사람들이요.

◇ 김현정> 1000만 영화 이런 거 있죠?

◆ 최영미> 그런데 사실 제가 생각해 보면 제가 요즘 원고 청탁이 거의 없거든요. 영화화 시대가 되면서 더 심해졌는데요. 요즘에 신문 같은 경우도 문학면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최근 한 10년간은 거의 원고청탁이 없는 거예요, 면이 줄어 들어서 제가 작년에 청탁이 와서 쓴 글이 딱 두 꼭지에요. 그리고 올해는 지금까지 딱 한 꼭지 썼어요. 그러니까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 좀 사람들이 좀 알고 있을까 싶어요.

◇ 김현정> 알아줬으면 좋겠다. 문학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모든 예술의 기본이고 인문학의 기본인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집중해야 되는가,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맨부커상 탔다고 온 나라가 경사 같았는데요. 이 말씀 듣고 보니까 그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고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시네요. 오늘 어려운 인터뷰 고맙습니다.

◆ 최영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시인 최영미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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