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약관대로" 보험사 "법대로"..수천억 자살보험금 전쟁

권화순|전혜영 기자|기자 2016. 5. 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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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험금 지급" 대법원 판결에도 소멸시효논란.. 금감원 "전액지급하라" 보험사에 경고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전혜영 기자] ["자살보험금 지급" 대법원 판결에도 소멸시효논란.. 금감원 "전액지급하라" 보험사에 경고]

금융당국이 소멸시효 2년이 지난 재해사망 특약의 자살보험금도 전액 지급하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실상 보험사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생명보험사들은 그러나 금감원이 "'법보다 약관을 지키라"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2465억원..논란은 왜 시작됐나=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살을 재해로 인정해 재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계약은 현재 약 280만건이나 된다. 이 약관은 2002년 ING생명을 시작으로 14개 생명보험사가 시차를 두고 팔기 시작했다.

자살은 명백하게 재해가 아닌데도 문제의 약관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서 금융당국과 보험사 주장은 다소 엇갈린다. 보험사들은 금감원이 문제의 약관을 표준약관에 실수로 넣었고 보험사가 그 표준약관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전 보험사로 확산이 됐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금감원은 2000년대 초반 보험사들이 일본의 보험약관을 번역해서 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상품은 금감원에 사전신고 없이 판매 후에 사후보고하는 상품이라는 얘기다.

뒤늦게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2010년 문제의 문구는 삭제됐지만 이미 280만건의 계약이 팔려나간 뒤였다. 보험사들은 상식적으로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자살로 인해 보험금이 청구됐을 경우 주계약의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하고 특약의 재해사망보험금(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 왔다. 이 규모가 지난 2월 26일 기준으로 2980건, 2465억원(지연이자포함)이나 된다. 보험사별로는 처음 판매한 ING생명이 561건, 815억원으로 미지급 규모가 가장 크고 이어 삼성생명(607억원), 교보생명(265억원), 알리안츠생명(137억원)이 많았다.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둘러싸고 보험계약자, 보험사, 금융당국 간 이견이 큰 가운데 지난 12일 대법원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이 되는 듯 싶었다.

◇"소멸시효도 대법원 판단 기다려야" 버티는 보험사=하지만 또다시 '소멸시효' 논쟁이 붙었다. 자살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수익자가 일반사망보험금만 받고 특약의 재해사망보험금(자살보험금)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2년이 지났다면 보험금 청구 기간이 지난 만큼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게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지난 12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계약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건이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별도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소멸 시효건으로 진행 중인 소송은 현재 8건으로, 가장 최근에는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보험사 손을 들어주는 1심 판결을 냈다. 최종심에 올라간 건은 6건으로 H생명, S생명, I생명, K생명, A생명 등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I생명이 지난해 8월 1심에서 일부 패소한 경우를 빼고는 모든 1심과 2심에서 법원이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늦어도 다음달 중 대법원의 최종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보험사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는 미지급 보험금 중 81%에 달하는 2003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없어진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계약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보험금을 지급 받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법원 판단과 무관하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올바른 경영 판단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며 "특히 상장사의 경우 관련 내용이 다 공시되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있는데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곤혹감을 표시했다.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리라는 얘기다.

현재 14개 생보사 중에서 9개사가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금감원에 전달했지만 언론에 내비친 솔직한 심정은 이와 달랐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일단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지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관대로 미지급시 중징계 검토".. 금감원 초강수=금감원은 강경하다. 보험사들이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애초에 지급하기로 했던 보험금을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에 있을 대법원의 판단과 무관하게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라는 주장이다.

금감원도 보험수익자가 처음부터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계약까지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해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사들이 일반 사망보험금만 지급하고 특약의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계약에 한해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보험전문가인 보험사가 보험금 일부를 고의로 누락하고 이를 알리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약관대로 지급하는 게 맞다"며 "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향후 연금, 이자 등과 관련해 과소 지급 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부당이득을 얻게 되고 소비자 피해 구제에도 구멍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계약자가 사망보험금을 청구할 때 사망진단서 등 보험금 지급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첨부해 보험사에 제출하지, 일반사망보험금과 특약에 의한 보험금을 나눠 각각 2회로 청구하진 않는다는 논리다. 보험사들이 '배임' 문제를 거론하지만 휴면보험금도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 왔다는 게 금감원의 반박 근거다. 또 이번에도 소멸시효 완성과 관련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게 되면 소비자 피해만 더 커질 거라고 봤다. 2014년 ING생명을 제재하며 전 보험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보험사가 차일피일 미루면서 이 기간 소멸시효가 도래한 보험계약이 1600건이나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17일 생보사 임원을 소집해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달말까지 보험사별로 자살보험금 지급계획서를 받아 이행 상황을 일일이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보험사가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지 않고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룬다면 현장점검을 실시해 보험사와 임직원에 대해 중징계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전혜영 기자 mfutur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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