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에 생면부지 경찰관 초대한 美 여대생 사연

송민섭 입력 2016. 5. 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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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이스턴코네티컷주립대학(ECSU) 졸업식장. 베네수엘라계 미국인인 조시벨크 아폰테(23·여)가 차석 졸업장을 받아들자 졸업식장 한 켠에서 초로의 한 남성이 목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그는 아폰테의 가족이나 친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졸업식을 지켜봤다.

현지 신문인 하트퍼드 큐런트에 따르면 이 남성의 이름은 피터 게츠다. 아폰테의 간곡한 부탁으로 졸업식장에 왔다. 아폰테는 게츠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인생의 몇몇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 제게 매우 중요한 도움을 주신 분들을 모두 졸업식에 모시고 싶었다"며 "피터는 거의 죽을 뻔한 제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아폰테가 다섯 살이던 1998년 6월25일 그녀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불이 났다. 갑작스럽게 집안 곳곳을 가득 채운 검은 연기에 놀란 어린 아폰테는 옆에 있던 삼촌 조프리를 흔들었으나 삼촌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이 아폰테와 조프리를 발견했을 때는 둘 다 의식이 없었다.

하트퍼드 경찰서 소속이었던 게츠는 당시 화재 현장 근처를 순찰하고 있었다. 검붉은 화염을 보자마자 현장으로 출동해 시민과 차량 통제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염 속에서 한 소방관이 뛰어나오더니 그의 팔에 어린 소녀를 안겼다. 심정지 상태의 아폰테였다. 그때는 앰뷸런스가 도착하지 않았을 때였다. 응급요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아폰테 상태가 너무 위급했다.

게츠는 아폰테를 안고 순찰차까지 뛰었다. 동료 경찰관이 하트퍼드종합병원을 향해 액셀레이터를 밟는 동안 게츠는 뒷자리에서 쉴새없이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는 순간 기적처럼 어린 소녀의 숨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아폰테의 삼촌은 화재 발생 후 수시간 뒤 목숨을 잃었지만 아폰테는 가족과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떴고, 게츠로부터 테디베어 인형을 선물 받자 미소까지 지었다.

게츠는 하트퍼드큐런트와의 인터뷰에서 "아폰테를 구한 게 나 뿐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불길 속에서 아폰테를 구해낸 소방관이나 발빠르게 치료를 한 병원 관계자들까지 모두의 최선과 염원이 일궈낸 기적"이라며 "그날은 우리가 입고 있는 제복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게츠와 아폰테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2년 전쯤에서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아폰테는 "가끔 지나온 자기 인생이 궁금해질 때가 있지 않나"라며 "구글에 내 이름과 주소를 쳤더니 화재 소식이 나왔고 당시 나를 구해준 분이 게츠 아저씨라는 점을 알게 됐고 페이스북 스토킹을 통해 겨우 연락이 닿았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 십수년이 흘렀음에도 게츠가 여전히 책상 위에 아폰테 어머니가 보내준 그녀 사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한 최선의 결과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날의 경험은 내게도 각별하다"면서 "아폰테가 앞으로 영원히 나의 일부이자 내 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힘줘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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