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닮아가는 휴대폰..사용자가 모듈 선택하는 시대온다 "삼성·애플도 위험"

전준범 기자 2016. 5. 23. 14: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개발 중인 조립식 스마트폰 ‘아라’ / 조선일보DB·구글 제공
LG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G5에 카메라 그립 모듈을 연결한 모습 / 전준범 기자
여성 고객들이 서울의 한 매장에서 스마트폰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블룸버그 제공

“올해 4분기에 개발자용 ‘아라(ARA)’를 우선 선보일 예정입니다. 일반 소비자용 아라는 내년 중 내놓겠습니다.”

구글 첨단기술프로젝트팀(ATAP)의 블레이즈 베르트랑 창의 책임자(Head of Creative)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 ‘구글 I/O 2016’ 마지막날 행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아라는 구글이 2012년부터 개발 중인 조립식 스마트폰이다. 기본 틀 위에 사용자 입맛에 맞는 모듈을 끼워넣어 사용하는 제품이다. 일종의 조립 PC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아라처럼 기존의 상식을 뒤흔드는 제품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매자에게 불필요한 기능이 포함된 제품이라도 제조사가 공급하는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질서라면, 앞으로는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부품에 대한 선택권까지 갖게 된다는 것이다.

◆ “편의점서 스마트폰 부품 사와 조립”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스마트폰 부품을 바꿔 끼운다는 아이디어는 네덜란드의 산업 디자이너 데이브 하켄스가 지난 2013년 ‘폰블록’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켄스는 폰블록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유에 대해 “매일 수백만개의 전자제품이 단 한 개의 부품이 고장나 버려진다”고 말했다.

구글의 아라 프로젝트도 하켄스의 폰블록 아이디어와 거의 유사하다. 아라는 카메라와 배터리, 통신모듈, 화면표시장치 등 스마트폰을 이루는 주요 부품을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골라서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는 대·중·소 크기의 기본 틀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위에 사각형 형태의 모듈을 끼워넣은 다음 사용하면 된다.

2014년 4월에 열린 구글 I/O 당시 폴 에레멘코(Eremenko) 아라 프로젝트 책임자는 “누구나 집 주변 편의점에 가서 부품별로 포장된 스마트폰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라 가격은 공개된 바 없지만, 초저가 스마트폰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열린 구글 I/O 2015 당시 구글 엔지니어 라파 카마르고씨가 직접 아라를 조립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 한동희 기자

당초 구글은 지난해 1월쯤 ‘그레이폰’이라는 이름의 아라 기본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내부 사정으로 출시가 연기됐다. 이후 2015년 말에 푸에르토 리코에서 아라가 시판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구글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아라 출시 시기를 2016년으로 넘겼다.

구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구글 내부적으로 아라 출시에 대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개발자용과 소비자용 버전 출시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발표한 만큼 올해에는 아라가 진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폰블록·아라 프로젝트와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모듈을 장착해서 쓴다’는 컨셉을 지닌 스마트폰은 이밖에도 또 있다. LG전자가 올해 3월 출시한 전략 스마트폰 ‘G5’는 다양한 주변기기(프렌즈)를 연동해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모토롤라가 6월에 공개할 것으로 알려진 ‘모토X’ 시리즈 역시 기기 뒷면에 모듈을 장착한 다음 스테레오 스피커, 광각 렌즈, 플래시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다.

◆ PC산업 흐름과 닮은꼴…“삼성·애플 생존 걱정해야”

전문가들은 과거 PC 산업의 패권이 완제품 중심에서 조립PC 중심으로 옮겨간 것처럼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패러다임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리비에 드 웩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조립식 제조는 성숙 단계에 진입한 시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PC 산업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가 부품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통했다.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 주요 PC 부품들의 기술 완성도가 대체로 낮다보니 기술력을 가진 일부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PC 부품업체들 간 기술 편차가 줄고 경쟁의 중심이 가격으로 옮겨가면서 부품 단가도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도 필요한 부품을 저렴하게 사다가 PC를 조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델, HP, 삼성전자 등 일부 유명 브랜드가 장악하던 PC 시장에는 수많은 저가 브랜드와 이름 모를 조립PC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스마트폰 시장의 움직임도 이와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미 중화권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한 중저가폰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소비자가 집에서 PC를 조립하듯 맞춤형 스마트폰을 만드는 세상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세상에서 휴대폰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에 들어갈 부품을 매장 진열대에 올려두기만 하면 된다. 선택은 전적으로 구매자의 몫이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만약 구글 아라폰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이는 휴대폰 제조사와 소비자의 위치가 분명히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애플, 삼성, LG, 화웨이 등 기존 제조사들 모두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