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꼬인 '5조 투자'..통신장비中企 2500곳 "생존 위기"
◆ 공정위 늑장 심사 ◆
경기 성남시에 있는 HFR는 유·무선 통신 장비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SK텔레콤 네트워크 구축 사업 협력업체 중 한 곳이다. 신 이사는 "투자가 집행되지 않아 5개월째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 같은 장비 회사들 모두 죽겠다고 아우성"이라고 전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이런 중소기업이 2500여 사에 달한다.
5월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국내 방송·통신업계는 유례없는 불황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중국 기업들의 물량 공세에 따른 공급과잉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7개월째 내리막이다. 내수도 엉망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장비업계 최대 기대주로 꼽혔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지연으로 늦어지면서 ICT업계는 빙하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ICT업계는 세계적 경기 불황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내수마저 투자가 끊겨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 결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국내 방송통신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만 증폭돼 투자가 위축되고 경제 활력은 떨어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SK텔레콤·CJ헬로비전 등 당사자들은 신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면서 성장동력을 잃고 있다. SK텔레콤은 사실상 신규 투자를 중단한 상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CJ헬로비전 M&A를 발표하면서 5년간 네트워크 고도화와 서비스 강화에 총 5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합병 승인이 지연되면서 기본 인프라 투자는 물론 차세대 기술 투자마저 최소 규모로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글로벌 통신 미디어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혁신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바라만 봐야 해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CJ헬로비전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피인수되는 처지여서 운신의 폭은 더욱 좁다. 매년 100여 명 규모로 진행했던 공채도 올해는 취소했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못하다보니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 1분기 CJ헬로비전 매출은 전년 대비 4.9%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6.6% 하락했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내 모든 부문이 어떠한 의사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에 1분기는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지만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유선통신 투자가 주춤하면서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은 매출 정체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3조원에 달하는 SK텔레콤 투자는 얼어붙은 통신장비 시장에 직접적인 수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SK텔레콤 투자가 '올스톱'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 구로에 있는 유선통신 장비업체 디오넷의 오창섭 사장은 "3조원은 국내 네트워크 시장 규모에 맞먹는 금액"이라며 "이 정도 투자액이 국내 장비업체에 골고루 돌아간다면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실탄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아서 아쉽다"고 했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은 "불허든 허가든 하루빨리 결정이 나야 기업이 다음 스텝을 밟고 시장도 굴러간다"며 "공정위의 이런 모습은 규제를 완화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자는 정부 기조와도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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