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여자 배구, 40년 전 그들은 정말 예뻤다

신명철 2016. 5. 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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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웃고 있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 FIVB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76년 한국 스포츠는 2월 7일 열린 1975년도 대한체육회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 김택수 회장이 다시 선출되면서 시작됐다. 김택수 회장은 바뀐 정관에 따라 4년 임기로 대한체육회를 이끌게 됐다. 그해 한국 스포츠의 최대 관심사는 7월 17일부터 8월 1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 21회 하계 올림픽이었다. 4년 전 제20회 뮌헨 하계 대회에서 올림픽 무대에 처음 나선 북한에 뒤진 한국으로서는 북한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몬트리올 올림픽과 제 12회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에 대비해 1975년과 1976년 상반기에 진행된 대한체육회 국가 대표 선수 강화 훈련 실적에 따르면 참여 선수는 198명, 임원은 27명, 훈련 일수는 426일에 이르렀다. 1976년에는 올림픽에서 입상한 전적이 있거나 입상 전망이 확실해 국위 선양이 기대되는 종목 그리고 지역 예선을 통과한 종목 등 소수 정예로 강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구성된 대표 선수단은 임원 22명과 선수 50명으로 뮌헨 대회를 약간 웃도는 규모였다. 출전 종목은 남녀 배구와 레슬링과 유도, 복싱, 사격이었다. 사격은 1978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선수권대회 개최국으로서 위상을 고려해 뮌헨 대회에 이어 또다시 참가하게 됐다. 남자 배구는 애초에는 ‘상위 입상이 어렵다’는 대한체육회의 판단에 따라 제외할 방침이었으나 “지역 예선을 통과한 마당에 본선 출전을 가로막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는 대한배구협회의 거센 반발에 밀려 선수단에 넣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격과 복싱, 남자 배구를 뺀 종목에서 모두 메달 따 대한체육회의 선수단 구성 방침은 비교적 정확했던 것으로 판명 났다.

1970년대 한국 스포츠를 관통한 김택수 회장의 ‘선 체력 후 기술’ 방침은 시대 상황으로 봐 당위성이 있었다. 그러나 다소의 진통도 있었다. 몬트리올 올림픽을 불과 두 달여 앞둔 4월 25일 여자 배구 대표팀 주 공격수 박인실이 선수촌에서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무렵 대한배구협회를 맡은 이낙선 회장은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후원회를 조직하고 발전 기금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그리고 몬트리올 대회를 앞두고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일본 여자 배구를 올림픽 금메달로 이끈 다이마쓰 히로부미를 초빙해 김한수 감독, 전호관 코치와 함께 대표팀을 지도하도록 했다. ‘동양의 마녀’라는 신화를 만든 다이마쓰는 ‘회전 리시브’ 등 혹독한 훈련의 대명사였다. 강훈련이 거듭되는 가운데 선수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박인실이 무단으로 퇴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인실은 당시로는 174cm의 큰 키에 뛰어난 점프력과 강타를 지닌 한국 여자 배구의 간판 공격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문과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협회는 박인실을 제명했다.

올림픽에서도 여자 배구가 동메달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8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조별 리그 B조에 속한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 대회 준우승국인 소련과 접전을 펼친 끝에 1-3으로 졌다. 그러나 이후 쿠바와 동독을 풀세트 접전 끝에 각각 3-2로 물리치고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한국은 조별 리그 A조 1위이자 대회 우승국인 일본에 0-3으로 졌으나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에 3-1(12-15 15-12 15-10 15-6)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영예를 안은 선수는 신세대 스포츠 팬들에게도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나는 작은 새’ 조혜정과 이순복, 유경화, 유정혜, 정순옥, 마금자,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변경자, 백명선, 윤영내 등 12명이다. 이들 가운데 유경화와 유정혜는 공격력이 있는 세터여서 ‘더블 세터’를 이뤄 주 공격수인 조혜정과 함께 메달 획득에 크게 이바지했다.

40년 전 그들은 정말 예뻤다. 그리고 21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배구 세계 예선을 통과한 김연경을 비롯한 12명의 선수들은 40년 전 선배들보다 조금 더 예쁘다. 오는 8월, 한국 여자 배구는 다시 한번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0-3(22-25 24-26 21-25)으로 져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대회 MVP 김연경을 비롯한 12명의 한국 선수들에게 하늘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홈 코트의 일본이 4년 전과 비슷하게 ‘장난질’을 쳤지만.

[여자 배구의 올림픽 출전을 계기로 ‘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는 오는 30일부터 배구 발전사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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