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파트값, 허탈한 웃음만

이영섭 입력 2016. 5. 1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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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서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중 ⑥]

[오마이뉴스 글:이영섭, 편집:김대홍]

조천읍 신촌리의 경우 제주에 갈 때마다 덕인당 보리빵을 먹으러 들르다 보니 어느새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진 곳이다.

제주시를 벗어나 삼화지구를 거쳐(이제는 삼화지구까지도 제주시라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진드르 교차로에 접어들면서 시작되는 신촌리 마을은 신촌 초등학교와 조천 중학교가 함께 위치하여 아이들을 키우면서 조용히 살기에 정말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우측 한라산 방향으로는 조금 큰 주택들과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좌측 바닷가 방향으로는 오래된 구옥들과 빌라, 하나 둘 늘어나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밀집하여 있다. 제주시내에서 멀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면서도 바닷가 마을의 한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신촌리 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본 모습. 신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바다, 우측으로는 조천리로 길이 이어진다
ⓒ 이영섭
다른 곳에 집을 마련한 지금도 가끔 신촌리에 가면 고향에 온 듯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을 느끼곤 한다. 서귀포나 애월읍의 잘 가꿔진 마을들처럼 미려한 맛은 없지만 왠지 당장 눌러앉아도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촌리에 대한 애정은 곧 조천읍 전체로 확대되어 와이프와 토론을 할 때면 난 언제나 조천읍을 강하게 주장하곤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매입을 고민하던 신촌리 단독주택들의 최근 시세를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다. 5~8천만원 내외 하던 다 쓰러져가는 구옥은 1.5억에도 매물이 없어 못 파는 상황이고, 100평 내외 마당을 가진 자그마한 단독주택은 1억에서 2억으로 몸값이 두 배 이상 뛰어 있었다(물론 이 역시 매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당시 2.2억에 매물로 나왔던 2층짜리 집은 4억 이상으로 올라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우리가 신촌리를 알게 된 경로는 덕인당 보리빵이다. 한 번 익숙해지면 멈출 수가 없는 보리빵에 대한 식탐이여!
ⓒ 이영섭
와이프는 나와 조금 달랐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제주는 좋아하지만 어둠과 벌레(특히 경동시장에서나 볼 법한 사이즈의 지네!), 한적함에 아직 무서움을 느껴 되도록 아파트를 우선시했고,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공항에서 멀어지는 것에 반대했다.

이런 와이프의 취향은 외도일동과 딱 부합됐다.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대단지 아파트가 형성되어 있고 단지 내 상가들이 있어 인프라 걱정도 없는, 초보 이주민에게는 제법 그럴듯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 같이 보였다.

 바닷가 앞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초보 이주민들에게 아파트의 익숙함과 제주의 설레임을 동시에 선사한다.
ⓒ 이영섭
3년여 전인가, 이 동네를 탐색하던 중 아내가 중대한 결정을 했던 적이 있다. 아파트 단지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든 아내가 부동산을 통해 직접 매물로 나온 집을 보자고 했던 것이다.

아이쇼핑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의 성격상 집을 본다는 건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지 내 부동산을 찾았지만 주말 오후여서 그랬는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전화통화마저 안 되어 결국 포기하고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제주 상가들은 저녁이 되면, 혹은 주말이 되면 대부분 가게 문을 닫는다. 서울과는 다르다).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제주를 찾지만 빼곡한 아파트숲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건 어떤 이유일까.
ⓒ 출처 : 외도동 주민센터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외도일동은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가히 아파트 밀집촌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거주지가 되었다. 물론 늘어난 인구에 맞춰 상가 등 인프라 역시 함께 발전하여 외도일동은 집값이 많이 오른 지금도 도시에서 갓 이주해온 자발적 이주민들과 제주 발령을 받아 넘어온 비자발적 이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이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매물이 꽤 많은 편이기에 지금도 가끔 시세를 확인해보곤 한다. 당시 1.1 억 정도에 거래되던 24평형은 2억을 훌쩍 넘어섰고, 1.6억 정도면 구입이 가능했던 30평대는 3억 중반에 거래가 되고 있다. 외도일동 아파트들이 저렴한 집값과 연세로 초보 이주민들에게 편리한 주거공간이 되어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곳의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인해 제주 이주에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생긴 것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가 들기도 한다(육지인들의 제주 이주에 대해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떠나).

제주에 살면 내가 사는 동네를 자랑하고 싶어진다

결국 아내의 취향에 따라 소박한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결정한 지금도 우리는 제주에 갈 때마다 예전 '우리 동네'가 될 뻔했던 그 곳들을 다시 찾곤 한다. 그리고 입에 보리빵 하나씩 물고 주변을 산책하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아쉬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상상을 즐기곤 한다.

 아파트 앞에 돌담 산책로가 있는 것 또한 제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 이영섭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동네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그러하듯 그저 아파트가 몇 평인지, 평당 얼마인지, 재건축은 언제인지, 얼마나 직장이나 학교와 가까운지 만 따질 뿐 정작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잊고 살게 된 것은 아닐까.

가끔 제주 집에 지인들이 찾아오면 우리는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이 곳을 선택한 이유를 들려주곤 한다. 그럴 때 우리가 들려주는 것은 이 집이 평당 얼마인지, 인프라가 얼마나 좋은지, 교통이 어떤지 등의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 예쁘게 심어진 잔디에서 뛰어 노는 순진한 시골아이들의 모습과, 귤 밭 사이 산책로를 따라 예쁘게 피어있는 동백꽃과 유채꽃의 향기, 봄이 되면 바람에 따라 출렁이며 물결을 만들어내는 청보리의 파도를 보여주곤 한다. 그리고 집에서 10분~15분 거리에 있는 삼나무 숲과 함덕 해변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자연의 혜택이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음을 전해줄 뿐이다.

 봄이 되면 굳이 가파도를 가지 않아도 집 앞 보리밭에서 청보리의 파도를 구경할 수 있다.
ⓒ 이영섭
아, 그럼에도 결국 이 동네가 평당 얼마인지, 개발계획은 어떠한지, 인프라는 어떤 지에만 관심이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을 온전히 공감하는 분들이 있음에 제주에 한발이나마 걸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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