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스토리+열기+공격축구, 수원더비는 '진짜'였다

한준 기자 2016. 5.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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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제의 호통, 더비서 밝혀진 서정원-김병오의 인연

[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이름만 더비가 아니었다. 수원 더비는 진짜였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절반 가량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사력을 다해 뛴 증거다. 시소 게임 끝에 후반 38분에 가서 결승골이 나왔다. 한 순간도 그라운드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치열한 승부였다.

득점이 나온 뒤 뒤로 물러선 팀은 없었다. 시종일관 공격이었다. 수원종합운동장은 이날 수용인원 보다 많은 팬이 찾아왔다. 경기 도중 관중 숫자를 발표하지 못했고, 경기 종료 후에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위해 재검표를 해야 했다. 공식 발표된 관중수는 1만 1,866명이었지만, 실제 경기장엔 더 많은 수가 보였다.

수원시와 양 구단, 프로축구연맹 모두 수원 더비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스토리는 그라운드 안에서 만들어졌다. 2016시즌 첫 번째 수원 더비는 한국 프로 축구를 뒤흔들 새로운 라이벌전의 탄생을 알렸다.

#`축구수도` 수원삼성이 보여준 응원전 클래스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두 감독의 표정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마침내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둔 수원삼성은 리그 6위로 뛰어 올랐다.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은 "경기 하러 오기 전부터 마음이 편했다. 동점골을 먹고 나서도 덤덤했다. 추가 득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서 감독에게 수원종합운동장은 또 하나의 고향이다. 수원종합운동장은 1995년 수원삼성이 창단했을 때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2001년까지 수원삼성의 홈이었다. 수원삼성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는 옛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단체 행진으로 원정 경기에 임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수원FC 서포터즈 리얼크루보다 원정팀 수원삼성의 팬들이 더 많이 왔다. 응원 소리도 압도적이었다. 수원삼성 팬들의 응원 함성에 수원FC의 응원은 완전히 묻혔다. 3,000여명에 달한 수원삼성 서포터즈는 수원 더비 분위기를 멋지게 장식했다. 수원삼성이라는 팀이 가진 전통과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빈 오군지미와 하이메 가빌란 등 유럽 축구의 열광적 분위기가 익숙한 수원FC의 외국인 선수들도 주목했다. 이게 바로 수원삼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수원삼성 서포터즈는 평소보다 응원 함성을 더 크게 내질렀다.

서 감독은 "우리가 홈으로 사용했던 곳이고, 수원 시민들도 우리를 많이 응원해주셨다. 여기가 원정이라는 기분은 못 느꼈다. 홈인 것 같았다"고 했다. 만원 관중과 화끈한 응원전은 프로축구의 꽃이 관중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막공 포기 않은 수원FC, 후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하다

서 감독에 이어 회견장에 들어선 조덕제 수원FC 감독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처음 겪은 패배는 아니었지만, 다른 어떤 때보다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조 감독은 "전반전 경기력이 너무 안좋아서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후반전에도 전반전과 같은 경기를 한다면 더비에 먹칠을 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프타임에 선수들에게 꾸중을 했다."

선수들에게 늘 자신감을 강조했던 조 감독은 이례적으로 하프타임에 호통을 쳤다.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이 얘기했다. 어느 선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수들이 자신 있는 플레이를 하길 바랐다. 골키퍼 박형순이 한 번 킥해서 김병오가 떨어져 나온 볼을 슈팅하는 것은 축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스 미스를 한다고 코칭 스태프가 꾸준하지 않는다. 마음껏 돌파하고 후회없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패배한 팀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경기 후 회견에 임한 수원FC 공격수 김병오는 "처음에 당황하고경기를 못 풀었다"고 인정했다. "밑에서부터 풀어 나가는 것이 우리 스타일인데 수원삼성의 압박이 생각보다 강했다. 패스 연결 보다 롱킥을 많이 하다보니 볼 소유를 하지 못했고, 우리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수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하게 됐다."

수원삼성은 전반전에 클래식 전통의 명가다운 경기력을 보였다.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수원FC의 숨통을 조였고, 염기훈과 권창훈, 산토스로 이어진 2선 공격 라인은 과감하고 날카로웠다. 신인 공격수 김건희도 패기 있게 부딪혔다. 전반 26분 나온 선제골은 염기훈과 권창훈의 빠른 패스를 거쳐 김건희의 마무리 패스를 산토스가 넣었다. 실력 차이를 보여줬다.

조 감독의 호통 이후 후반전 수원FC의 경기는 달라졌다. 조 감독은 "오늘 많은 팬들이 오셨다. 후반전에도 전반전 같은 모습이었다면 앞으로 수원FC의 경기를 보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후반전에 가능성을 보여줬다.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한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고 했다.

후반 7분 이승렬을 투입하며 2선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은 수원FC는 후반 26분 김병오가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후반 38분 염기훈의 프리킥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수원삼성이 다시 앞서갔지만, 이후 오군지미를 비롯해 수원FC가 동점골 내지는 역전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적잖이 나왔다. 오군지미가 시도한 회심의 슈팅은 골대를 때렸고,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넘겼다.

왼발 대결에서는 결승골을 넣은 수원삼성 염기훈이 웃었다. 가빌란도 K리그 입성 이후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다. 4번의 슈팅 중 세 개가 유효 슈팅이었다. 빗나간 한 차례 슈팅은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넘겼다. 골이 되지 못한 결정적 슈팅도 수비 육탄 방어에 걸려 빗나간 것이었다. 코너킥 상황에서도 가빌란의 킥은 날카로웠다.

염기훈과 가빌란 모두 왼발뿐 아니라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 위력적이었다. 염기훈은 지치지 않는 압박과 패스 연결로 수원삼성 공격을 이끌었다. 가빌란은 안정적인 볼 컨트롤과 공격 연결 플레이로 수원 더비의 기술적 수준을 높여줬다.

#"골키퍼가 뻥 차고 공격수가 슈팅하는 것은 축구가 아니다"

이날 양 팀이 기록한 골은 모두 수비 실수에서 비롯됐다. 서 감독은 "수원FC는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가 많이 나온 것 같다. 우리도 경험이 더 있다고는 하지만 실수가 많이 나왔다"며 더비 전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수원 더비가 뜨거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득점이 나오고 나서도 안정적으로 수비 전략을 편 측이 없었다는 것이다. 서 감독은 "수원시는 전통적으로 축구 팬이 많다. 더비전을 기대한 팬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고 싶었다. 공격적으로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산토스와 권창훈도 상당히 전진 배치했다. 골을 더 많이 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조 감독도 사실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고민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막공`이었다. "김근환을 아래로 내려서 스리백을 세우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임하람을 리저브에 넣었다. 이기고 있는 욕망이 있어 그런 생각도 가졌다. 그래도 더비전이고, 1차 라운드까지는 공언한대로 어떤 상황이 와도 공격적으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2차 라운드에 돌입하면 승점을 얻기 위해 잠그기도 하고, 역습을 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선 공격만 생각했다."

역사적인 첫 수원 더비를 멋진 경기로 만들자는 두 감독의 공감대가 수원시민들에게 명승부라는 선물로 돌아갔다. 수원 더비를 풍성하게 할 또 하나의 연인이 기자회견장에서 밝혀졌다.

#김병오의 예고, 기대 고조되는 두 번째 수원 더비

서정원 감독은 "김병오는 올림픽 대표 시절에 데리고 있던 선수라 잘 안다. 위협적인 선수였다. 갖고 있는 신체 조건이 좋고 스피드, 볼 키핑력, 슈팅력을 모두 갖췄다. 앞으로 더 성장할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병오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땐 내가 많이 어렸다. 좋은 쪽으로 많이 도와주였다. 이제 상대팀으로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그때 김병오 보다 프로 선수 김병오가 이만큼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경기한 것도 있다."

김병오는 무엇보다 이날 만원 관중이 들어찬 것에 큰 의미를 느꼈다. 김병오는 동점골을 넣은 뒤 수원FC 서포터즈 리얼크루 앞에서 지휘자 세리머니를 했다. "수원삼성 서포터즈의 응원에 움츠리고, 기가 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포터즈와 함께 흥을 내고 싶어서 그런 세리머니를 했다."

"우리 원정 관중석이 꽉 찬 것은 처음일 거다. 축구인으로서, 선수로서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 서포터즈가 아니라도 많은 관중 앞에서 내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었던 것에 행복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많은 서포터즈가 아닌, 우리를 응원해주는 서포터즈가 최고다. 리얼크루가 우리에겐 소중하다. 100명, 1000명이 아니라도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경기장에서 더 열심히 뛰게 되는 이유다. 홈으로 수원삼성을 불러들여 1-2로 졌다. 원정에 가서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오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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