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획일적 구조조정하다 조선업 추락.. 훗날 경쟁력도 고려를"

이인열 기자 2016. 5. 7. 03: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국내외 전문가에게 듣는다] [4] 조선산업의 산 증인 민계식 前 현대중공업 회장 - 옥석 가리는 구조조정 필요 日, 70~80년대 정부주도 구조조정.. 60여개 조선社가 20여개로 줄어.. 한국에 1위 내주고 中에도 밀려 - 지나친 인력 감축엔 반대 경기회복 때 정작 사람 없게 돼.. 줄이되 필요한 인력은 남겨둬야 - 한국 조선업 그래도 세계 최고 일본은 여전히 벌크선 중심.. 中 인건비 경쟁력 큰 위협 안돼 - 조선업 위기 원인은 세계1위 자만심 조선업은 혁신해야하는 산업인데 최근 신기술·신상품 눈에 안띄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구조조정한다고 비용 절감을 위한 획일적이고 과도한 인력 감축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지 말고 시장에 맡겨 각자 생존력을 찾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국 조선업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그는“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아직 세계 최고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구조조정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구조조정요? 복잡할 거 없어요. 정부가 나서서 부실기업을 무리하게 지원해주거나 합종연횡(合從連橫)을 주도하지만 않으면 돼요. 시장에 맡겨 각자 생존력을 찾도록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한국 조선산업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민계식(74)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조선업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묻자 "비용 절감을 위한 획일적이고 과도한 인력 감축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민 전 회장은 서울대 조선항공학과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대우중공업을 거쳐 현대중공업에서 회장까지 지냈다. 보유 특허만 300여개가 넘는 조선산업 최고 기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옥석(玉石)을 가리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조선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일본 조선업이 1970~80년대 획일적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영원히 한국에 밀리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1970년대까지 세계 조선 시장 1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정부 주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60여개였던 조선사를 20여개로 줄였다. 생산 능력도 절반 이하로 감축했다. 결국 50%를 넘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당시 과감한 설비 확대에 나섰던 한국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일본은 중국에도 밀리며 세계 3위권으로 추락했다.

민 전 회장은 임원 감축도 30% 같은 목표치를 세워 진행할 게 아니라 정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줄이되 필요하다면 남겨 둬야 한다고 했다. 경기가 살아나면 정작 일할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지만 중국 조선소와 동일한 배를 만드는, 경쟁력이 무너진 조선소는 과감한 수술이 필요해요. 경쟁력 있는 조선소는 알아서 회복하라고 하면 됩니다."

민 전 회장은 우리의 경쟁 상대인 중국과 일본을 지나치게 겁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조선업의 경쟁력은 아직 세계 최고란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구조조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본이 5개 대형사 체제로 구조조정을 한 데다 탄탄한 내수의 뒷받침으로 좋아지고 있는 건 맞지만 여전히 인력이 벌크선(곡물 등 비포장 화물을 실어나르는 배) 중심"이라며 "우리가 강한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유조선에서는 경쟁력이 뒤처진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컨테이너선 등은 인건비 비중이 원가의 10~15% 수준이고 LNG선이 30%쯤 될 것"이라며 "기술력만 유지하면 중국의 인건비 경쟁력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물었다. 그는 "글로벌 경기 불황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그 이면엔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면서 혁신이 더뎌진 것도 큰 이유"라면서 "조선업은 결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아니라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라고 했다. 최근 우리 조선업에서 신기술, 신상품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혁신이 가능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민 회장은 곧바로 "책임져 줄 사람"이라고 답했다. "1~2년, 길어야 3~4년 머물 임원들이 혁신한다고 괜한 위험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하려고 하는데 이게 사라지지 않으면 제조업은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다."

지난해 빅3 조선사에 8조원대 적자를 안긴 해양 플랜트에 대해 그는 "해양 플랜트는 일본이 30년 전에 접었던 분야이고, 중국은 아직 따라오려면 멀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그는 "실패의 교훈을 잘 정리하고, 업무 진행상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면 충분히 도전할 만한 분야"라고 했다.

그는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의 무서운 집념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장쩌민 주석이 울산조선소에 와서 질문하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실린더와 피스톤 사이의 공차(公差·설계 치수와 실제 치수상 허용되는 오차 범위)가 얼마여야 하는가' '저항값은 얼마로 하나' 등 아주 전문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후진타오 전 주석도 울산조선소를 세 번이나 찾았다. 중국 지도부의 조선업에 대한 강한 집념을 느꼈다."

민 전 회장은 2011년 퇴직 후 지금까지 매달 한 번씩 중국 헤드헌팅(인재 스카우트)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는 퇴임 직후 "현대중공업에서 받던 연봉의 3배를 줄 테니 중국 조선소를 맡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거절했지만 지금도 매달 어김없이 연락이 온다고 한다. 그는 "내가 알기로 지금 서울에는 조선 외에도 자동차, 철강, 전자 분야의 중국 최고급 헤드헌터들이 두세 명 이상 나와 활동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들은 웬만한 조선소 임원들이 언제쯤 그만둘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할 때 이런 부분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인력일수록 구조조정시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