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그랑' 동전 소리 사라질까..2020년 '동전 없는 대한민국' 온다

김종일 기자 2016. 5.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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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가 지난해 말 소개한 스웨덴의 '현금 없는 사회' / NYT홈페이지 캡처

한국은행, '동전 없는 거래' 올해 안에 시범사업 추진
스웨덴, 헌금도 신용카드로…선진국, '현금 없는 사회' 추진 시동

오전 7시 45분. 지각이다. 전력질주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차, 지갑을 두고 왔다. 주머니엔 1만원 지폐 두 장뿐. 1만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고 말했다. "기사님, 1만원 냈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입력했다. "삐익, 8700원이 충전됐습니다. 승객님의 계좌 혹은 카드로 송금됐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지마자 회사로 전력질주했다. 역시 부장님은 자리에 계신다. 지각하면 '모닝커피'를 부서 전 직원에게 사야 한다.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 8잔을 주문한다. 잔당 1200원. "잔돈은 마일리지에 넣어드릴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일리지 400원 충전 완료'라는 문구가 계산대에 뜬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다. 설렁탕 한 그릇에 7000원이다. 계산대에 서고 보니 지갑이 없다. 맞다, 지갑을 두고 왔다. 주머니에 있던 현금도 다 썼다. 아침에 버스 거스름돈을 충전한 게 기억났다. 핸드폰을 내민다. "00페이로 계산할게요." "네, 계산 완료됐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내가 '지갑 없어 불편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큰 불편은 없었다. 거스름돈이 계좌나 자주 쓰는 카드로 충전되니 '비상금'이 쌓이는 기분이라고 대답했다. 아내가 물었다. "그치, 요새 동전 안 쓰니까. 혹시 10원 짜리 동전에 뭐가 그려져 있었는지 기억나?" 잘 모르겠다. 본 지 한참 됐다. "다보탑이잖아." 맞다. 경주 수학여행 가서 봤던 그 탑.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동전 없는 거래'를 하기 위한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제시했다.

박이락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동전 발행과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아끼고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기 위해 '동전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연구 중"이라며 "공동 연구그룹을 구성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은 금융결제국 직원들과 금융보안원, 금융결제원, 이동통신사, 선불 교통카드 발행업체, 대학 교수들은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워킹 그룹을 발족했다.

김정혁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7월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범 모델을 확정짓기로 했다"며 "연내 시범 모델에 대한 테스트를 거친 뒤 시범 운영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한국은행,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 도입 추진

현재 한은 내부에서 유력하게 검토 중인 '동전 없는 사회' 구현 방식은 지폐를 내고 남은 잔돈이 있을 경우, 본인의 계좌로 바로 송금을 하거나 교통카드 잔액으로 충전을 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현금 1만원으로 9800원짜리 상품을 구입하면 거스름돈 200원을 받지 않고 계좌나 카드로 충전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편의점이나 마트는 물론 약국이나 커피숍 등 잔돈이 많이 생기는 상점에는 충전·송금 등을 위한 전용 단말기가 설치될 계획이다. 김정혁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이 단계가 자리 잡으면 잔돈을 돌려받는 대신 쇼핑몰 포인트나 마일리지 등으로 적립해 사용하는 형태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경우 소액결제망이 잘 구축돼 있고 거의 모든 국민이 금융기관에 결제 계좌를 가지고 있어 이 인프라를 이용하면 동전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동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스름돈 등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동전사용을 최소화겠다는 구상이다.

한은이 동전 없는 사회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동전을 만들어 사용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00원짜리 동전 2억5000만개 등 동전 6억개를 제조하는 데 든 비용은 539억원이다. 동전을 적게 쓰면 제조 비용을 상당 부분 아낄 수 있다. 또 동전의 경우 소액이다 보니 분실할 경우 잘 찾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한은 관계자는 "지폐의 환수율은 60% 이상인데 비해, 동전의 환수율은 10%대에 불과해 해마다 신규 발행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했다. 부피가 커서 이를 거래하고 보관, 유통하는 데에도 적잖은 비용이 든다.

만약 동전 없는 사회가 정착되면 궁극적으로는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올 수도 있다. 한은이 성인남녀 2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민이 평소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평균 규모는 7만4000원으로 전년대비 3000원 감소했다. 지급 수단별로도 신용카드 이용 비중(39.7%)이 전년보다 크게 늘어 현금 사용 비중(36%)을 추월했다. 한해 전만 해도 결제시 현금을 쓰는 경우(38.9%)가 신용카드(31.4%)를 쓰는 경우 보다 더 많았다. 여기에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2014년 4분기 4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 기준 7조4000억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교회 헌금도 신용카드로 하는 스웨덴…대중교통 이용시 현금 이용 불가

이미 해외에선 금융 거래의 효율성·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를 추진 중이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1661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이제 거꾸로 현금 없애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 전체 소비 가운데 현금거래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스웨덴은 2007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현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 성당·교회에선 카드 리더기를 설치해 헌금함을 대신하고 있다. 많은 식당과 카페에서도 현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말 "스웨덴에 '현금 없는 미래'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예배 중 헌금을 전자결제하는 스톡홀름 교회의 풍경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예배 중에 교회의 계좌 번호를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면, 신도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전자결제 시스템으로 헌금을 내는 식이다.

스웨덴 일간지 '스벤스카 더그블라넷'에 따르면 스웨덴의 '빅(big) 4 은행' 중 모든 영업점에서 현금을 취급하는 곳은 한 개 뿐이다. 다른 3개 은행은 현금을 받은 지점의 비율이 5곳 중 한 곳 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한 대열에 합류 중이다. 덴마크는 식당이나 옷가게 등 소매 업종에서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상점은 현금을 받고 싶지 않으면 이를 거부할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독일은 테러나 돈세탁 방지를 위해 모든 현금거래를 5000유로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등은 일정 금액 이상 거래 시 현금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세계 최초의 현금 없는 국가 추진위원회'를 정부 주도로 발족했다.

다른 나라들이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이유는 한은이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동전·지폐를 발행하고 관리·폐기하는 데 들어가는 재정적 비용을 아끼고 지하경제를 양성화 하려는 시도다.

마스터카드는 세계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를 구현할 경우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현금 결제 비중이 50% 이하인 국가들은 GDP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12%이지만 현금 결제가 80%를 웃돌면 지하경제 비중이 32%로 치솟았다. 전자거래가 활성화하면 모든 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고 투명한 과세가 가능하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금을 없애고 전자화폐만 사용하면 정부는 국민 개개인이 언제 어느 곳에 돈을 썼는지 감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모든 돈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계좌에 넣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정보유출과 같은 보안 문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만약 국가 결제 전산망이 잘못되면 국가 시스템 자체가 마비되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전자결제가 보편화한 스웨덴에서 지난 10년간 카드 사기가 두 배로 늘어났다"며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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