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책銀에 낙하산 투하해 놓고.. 구조조정 책임엔 입 꾹 닫아

이대혁 입력 2016. 5. 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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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정부 책임론 확산

부실 눈덩이처럼 커진 기업에

낙하산 수장들 아낌없는 지원

국책銀은 수술 필요한 자회사를

퇴직자들 재취업 자리로 삼아

은행권 신용공여 위험노출액 26조

그중 국책銀에만 21조나 몰려

“정부, 국책銀에 책임 떠넘긴 채

꼬리자르기 행태” 비판 비등

정부와 국책은행에 대한 조선ㆍ해운업과 관련한 부실 책임론이 비등해지는 것은 장기 불황 업종에 지금까지 2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국책은행에 낙하산 인물들을 끊임 없이 투하했고, 국책은행은 수술이 필요한 자회사를 퇴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자리로 여겼다. 부실이 눈덩이같이 커지고 있는 기업에 낙하산 수장들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국책은행 퇴직자들은 ‘본사’로부터 추가 대출이나 대출 연장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이를 관리 감독할 정부는 지금껏 정치권의 눈치만 보다가 때를 놓치고, 이제서야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며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에 나섰다. “국책은행 실탄 마련은 필요하지만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4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최근 구조조정이 가시화된 조선ㆍ해운업체인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한진해운, 창명해운에 대한 은행권 신용공여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지난달 19일 기준 26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익스포저만 20조9,000억원이다. 여신건전성에 분류에 따라 산은과 수은의 익스포저를 고정(충당금 적립률 20%)으로 하면 작년말 대비 1조원 안팎을, 이들 기업이 법정관리로 들어가 여신이 ‘회수의문’(충당금 적립률 50%)으로 분류되면 6조6,000억원의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업종에 이처럼 대출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1차적인 책임은 국책은행 수장들에게 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작년 대우조선해양이 3조원대 부실이 드러나면서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결정했다. 앞서 강만수 회장 시절에는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을 위해 STX조선해양에만 신규자금을 포함한 3조원이 넘는 신용을 제공했다. 수은 역시 진동수, 김동수, 김용환 행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우조선과 성동조선을 비롯한 조선업종에 8조원의 자금과 16조원이 넘는 보증을 지원했다.

국책은행의 부실은 떠맡은 기업의 경영정상화보다 조직 키우기와 퇴직 인력 재취업 등 제식구 챙기기에 몰두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산은의 경우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377개 회사에 200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02명을 재취업시켰다. 특히 대우조선에는 최고재무책임자, 사외이사 등을 내려보내 경영을 감시해왔는데도 부실은 더욱 커졌다. 산은은 국정감사 때마다 이런 관행 개선을 요구 받았지만 그때마다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만 재취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국책은행에 대한 책임 규명은 불가피하다. 실제 산은은 대우조선에 대한 부실 관리로, 수은은 성동조선에 대한 지원으로 각각 감사원 감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다. 결과에 따라 검찰 수사까지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정부 역시 부실관리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과 29일 잇따라 “국책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국책은행에 모두 책임을 떠넘긴 채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강만수 전 산은 회장, 진동수, 김동수, 김용환 전 수은 행장 등은 모두 금융관료 출신“이라며 “이 수장들이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할 때 금융당국과 협의하고 지시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국책은행 인사권, 구조조정 시기 및 규모 결정 등 모든 것이 정부의 책임인데도 정부는 꼬리 자르기 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본인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은 채 국민적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중앙은행 출자 등에만 목소리를 높인다면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mailto:selected@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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