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가족까지.. 30분만에 인터넷서 발가벗겨졌다

이슬비 기자 2016. 5.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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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가 된 SNS] [2] '신상 털기' 실험해보니 - SNS가 신상 파악 통로로 악용 7년 전 중고품 거래 내역, 반려견 종류도 알 수 있어 페북 사용자 학교·나이 공개.. SNS 안하면 추적 힘들어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덕분에 신상 털기가 식은 죽 먹기가 됐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인 정보를 캐내는 '신상 털기'의 고수로 통하는 박영호(26·가명)씨는 "예전엔 서너 시간 넘게 걸리던 신상 털기가 SNS 덕분에 이젠 30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SNS가 유행하기 전까지 박씨는 네티즌의 아이디(ID)→실명(實名)→나이와 학력, 사진 등의 순서로 개인 정보를 파헤쳤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정보가 대부분 SNS에 공개돼 있다는 것이다.

본지는 신상 정보를 얼마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일반인 10명의 동의를 받은 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디지털포렌식연구센터 이상진 교수팀에 '신상 털기' 실험을 의뢰했다. 이 교수팀에는 이름과 인터넷에서 즐겨 쓰는 ID 등 2가지 단서를 제공했다.

실험 결과, 검색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나이와 사진, 학력 같은 기본적 인적 사항뿐 아니라 현재 사는 집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같은 개인 정보 수십 건이 쏟아져나왔다. 본인뿐 아니라 여동생의 직업·학력 같은 가족 관계 정보도 쉽게 파악됐다.

노출된 정보 가운데는 실험 참가자인 직장인 최모(30)씨가 대학 때 쓰던 휴대전화 번호도 있었다. 최씨가 7년 전 한 중고품 거래 게시판에 "중고 자전거를 판다"며 전화번호를 남긴 글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검색을 하자 최씨가 3년 전 서울대 축구 동아리 카페에 올렸던 글과 메일 주소, 최씨의 출신 고교, 현재 직장, 바뀐 휴대전화 번호, 여동생 사진과 직업까지 줄줄이 나왔다. 최씨는 "30분 만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나올 줄 몰랐다"며 "발가벗겨진 기분"이라고 했다.

대학생 김모(29)씨는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 동·호수가 그대로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 3년 전 트위터에서 경품 행사에 응모해 '서울 강동구 ○○동 ○빌딩 ○호'라는 집 주소를 답글로 남긴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글을 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클릭 몇 번으로 내가 사는 곳까지 알 수 있다니 섬뜩하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8)씨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공군 출신임이 드러났다. 군대 동기와 함께 찍어 올린 사진에 '#공군 ○기'라는 해시태그(# 뒤에 특정 단어를 붙여 관련 글을 모아 볼 수 있게 한 것)를 달았던 것이다.

실험에 참여한 일반인 10명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평균 2~3개의 SNS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중 7명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출신 대학과 전공, 생년월일이 쉽게 파악됐다. 페이스북 사용자라면 보통 자신의 생년월일과 학교 정보를 써서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했던 이력, 사촌 동생의 이름, 부모님 직업, 애완견의 종류·나이 등 쉽게 알기 어려운 정보까지도 SNS 사용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10명 가운데 유일하게 직장인 이모(29)씨만 검색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씨는 "SNS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험을 담당한 고려대 디지털포렌식연구센터 한재혁(29) 연구원은 "SNS 사용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신상 정보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고, 정보량도 더 많았다"며 "SNS에서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이나 주변인들까지 검색한다면 두 배는 더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신상을 탐문하는 통로로 SNS가 악용되다 보니,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넷에 '○○녀 신상 좀 털어봐라'는 글부터 올라온다. 지난달 28일 한 온라인 게시판에는 '(성관계 동영상 속에 등장한) 대학생 신상 좀 털어봐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서울의 한 사립대 강의실에서 성관계를 갖는 남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퍼지자, 이를 본 누리꾼이 남긴 글이다. 이 글이 올라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해당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과 이름이 SNS로 퍼졌다.

윤영민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남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우월감으로 신상 정보를 퍼나르고, 이것이 SNS의 파급력과 합쳐져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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