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99. '800km 산티아고'..걸을만하니 하루거리

2016. 5. 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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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28:멜리데에서 아르수아까지 13.6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산티아고로 향하는 수많은 화살표와 이정표는 순례자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인적 드문 길을 상념에 빠져 혼자 걸을 때 나무줄기나 돌 위의 노란 화살표는 위안이 되어 주었다.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에 산티아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걷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정표를 따라 여기까지 걸어왔다. 오늘 멜리데를 걸어나가면서 보이는 이정표들은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닿는다는 설렘이 개입되어 더욱 간절하게 보인다.

연일 비가 내리거나 흐리던 하늘이 활짝 개여 선명한 그림자를 만든다. 어제까지 내린 빗방울들이 숲의 향기를 발산하니 더욱 상쾌하다. 돌다리 위를 걸어 개울을 건넌다. 흐르는 물소리가 상쾌한 아침의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이런 아침을 몰랐던 시간들이 안타까운 만큼, 이런 아침을 매일 맞이할 수 있었던 지난 한 달이 행복한 기억이 된다.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눈에 띄는 구조물이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 기와를 이고 있어서 우리나라 시골집 같아 눈길이 더 가는 이것은 오레오(horreo)라는 곡물 저장고다. 갈리시아 지방은 일 년 내내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땅 위에 떠 있도록 지은 것이라고 한다. 갈리시아에 들어오고 나서 비를 많이 만난 것은 이 지방의 지리적인 특성일 뿐, 내가 운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걸음은 낯선 풍경을 친근한 그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졌으니 길에는 아무래도 순례자가 많다. 어제 봤던 4인 가족도 다시 만나고 이 길에서 처음으로 중국인도 한 명 만난다. 까미노는 유럽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동양인 중에는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까미노에서 일본인들은 몇 명 만났는데 중국인은 처음 만난다. 걷는데 국적이야 상관없겠지만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걷다가 마주치는 순례자들은 보통 인사를 나누고 어디서 언제 출발했는지의 여정과 국적 정도를 묻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의 “부엔까미노!”에 뒤를 돌아보니 역시 독일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순례자다. 그는 드디어 산티아고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며 처음 보는 나를 붙잡고 너무나 즐거워한다. 나보다 이틀 후에 생장부터 출발해서 눈 내린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조난까지 당했다고 한다. 눈으로 시작해서 비와 바람, 메세타의 뜨거운 햇볕까지, 이 계절에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만의 동지의식이 느껴져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산티아고가 가까워졌음이 비로소 실감 난다.


비수기인지라 나는 까미노에서 한국인을 별로 못 만났는데 그 독일인은 걸으며 만난 한국인이 열 명은 된다고 손가락을 펴 보인다. 그의 발걸음은 산티아고에 근접할수록 힘이 솟는 것 같다. 싱글벙글한 얼굴이 내 기분까지 즐겁게 만든다. 그와 한참을 걷다가 과일과 커피를 파는 무인 노점에서 잠깐 쉰다. 내키는 대로 값을 지불하면 되는 무인노점에서 1유로를 놓고 바나나를 까먹는다. 그 독일인은 이곳에 있는 과일과 커피로 아예 데사유노를 해결하려는 태세다.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에 부엔까미노를 빌어주고 먼저 떠난다.


오늘따라 몸이 무겁고 발걸음이 힘들다. 어제 25km만 걸으려고 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40km를 걸은데다 칼국수랍시고 요리한 저녁식사도 부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까 함께 걷던 독일 순례자와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내일이면 산티아고 도착한다는 마음이 괜한 엄살을 부리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산티아고까지는 어차피 하루에 걸을 수 없는 거리다. 오늘 많이 걸으면 내일 이동 거리가 짧아지고 오늘 적게 걸으면 내일 긴 이동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도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라 피로를 느끼는 오늘은 조금만 걷기로 한다.


비 개인 파란 하늘과 하늘색 창틀이 색깔을 맞춘 것처럼 예쁜 중세 모습 그대로일 듯한 마을을 통과해서 볼만한 수도원이나 성당도 없는 서너 개의 마을을 더 지나간다. 사월이 다가오니 마을에서 오가는 현지인들과 마주치는 기회도 잦아진다. 각자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어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겐 익숙함이고 나그네에겐 낯설음이다. 길을 아는 사람과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 같은 풍경 속을 걷는다. 그것이 삶의 풍경이다. 살아온 길과 가야 할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풍경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혹은 스쳐 지나며 그렇게들 살아가는 것이다.


겨우 14km 걸어와서 아르수아(Arzua)에서 걸음을 멈춘다. 산티아고가 가까운 마을에는 알베르게도 많다. 너무 일찍 도착했더니 원래 가려고 하는 알베르게는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시설도 좋고 규모도 제법 큰 다른 사설알베르게로 들어간다. 사설알베르게를 찾는 이유는 주방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저께는 맥주와 과자로 저녁을 때우고 어제는 40km를 걷고도 칼국수 비슷한 생면이나 먹었으니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은 게 없어서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모든 편의 시설이 다 갖추어진 마을에는 메르까도도 많고 정육점까지 보인다. 주방도 다행히 마당 쪽 별도의 공간이라 다른 순례자가 오기 전에 지글지글 생삼겹을 구워 배부르게 먹는다. 설거지까지 마쳐도 해는 중천이다.

넓은 방을 침대에 두 개만 사용하고 있는데 다른 순례자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요 며칠 계속 만난 스페니쉬 세 모녀다. 시끌벅적한 그녀들과 한 방을 쓰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그들은 다른 방에 배정된다. 이 시기의 사립알베르게들은 이제 막 개장하고 손님을 받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각 방을 시험가동하는 것 같다. 어쨌든 며칠 만에 다시 넓은 방을 둘이 차지한다.

맘껏 카메라 충전도 하고 와이파이도 잘되어 페이스북으로 하루까와도 연락을 한다. 그녀는 우리보다 이틀쯤 늦은 걸음이다. 오세브레이로에서 내려올 때 폭풍우 때문에 고생했다는 소식을 전하니, 우리보다 하루 늦게 오세브레이로에 오르게 된 그녀는 눈과 바람 때문에 택시를 탔다고 한다. 같은 곳을 비슷한 시기에 걷는데도 하루 이틀 차이에 날씨는 천차만별이다. 그녀와 산티아고에서 만나고 싶지만 약간의 시간차 때문에 어려울 듯하다. 하루까는 일본인이지만 길에서 만난 외국 친구라는 느낌보다 귀여운 막냇동생 같다. 여행지에서 이런 인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간발의 차로 엇갈리고 있어 너무 아쉽다.


침대에서 뒹구는 동안 비가 쏟아져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적신다. 그럼 그렇지, 오늘 날씨가 마냥 좋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다. 빨래를 걷어서 의자에 걸어 난로 앞에 두고는 마를 때를 기다리며 케이와 맥주를 나눈다. 1리터에 1유로인 스페인산 산미구엘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해가 지고 스페인 모녀들은 저녁을 만들어 먹느라 분주하다. 삼겹살로 이미 포만감에 젖은 케이와 나는 난로 앞에 앉아 내일 산티아고로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감회에 젖는다. 800km를 걸었다거나 40km가 남았다거나 하는 수치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그 긴 여정의 끝에 이렇게 서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나에게 산티아고는 800km라는 체감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 한 달 간의 걸음이라는 막연함의 끝, 실체를 모르는 아득한 꿈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라는 ‘걷기 예찬’의 첫 문장에 환호하며 까미노를 꿈꾸던 시간이 어제 같은데, 내일이면 그곳에 도착한다. 까미노데산티아고, 이 여정의 대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가 하루 앞이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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