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허탕"..외국인 노동자에 밀린 새벽 인력시장

글·사진 최인진 기자 입력 2016. 5. 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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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성남시 모란시장 입구 ‘건설 일용직 시장’ 가보니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태평동 새벽 인력시장에서 외국인 일용직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외국인들에게 일감을 뺏긴 지 오래됐습니다.”

지난 2일 새벽 4시쯤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모란시장 입구. 수도권 최대의 건설 일용직 인력 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에 남루한 차림에 가방을 짊어진 30~40대 남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30여분 지나자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국내 노동자가 아니다. 10명 중 7명이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 국적 외국인이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란시장 입구에 길게 늘어선 승합차 안에서는 일자리를 얻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일감을 얻은 사람은 절반 정도인데, 대부분 외국인이다.

40년간 철근 일로 잔뼈가 굵었다는 김모씨(60)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굶어 죽게 생겼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요즘 들어 1주일에 한, 두건 하기도 힘들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저 ‘간택’을 기다리지만 허탕치고 빈손으로 집에 가는 날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저임금과 불완전 고용으로 대표되는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수급 구조가 더 값싼 노동력을 구하려는 건설업체와 일부 외국인 불법 파견업체 때문에 왜곡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이 바뀌면서 건설 경기가 활기를 띠는 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인력시장이 운영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없어 허탕치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건설업체가 값싼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30~40대로, 주로 젊은층이다. ‘잡부’의 경우 하루 일당이 9만~10만원이다. 평균 연령이 60대로, 고령인 내국인 노동자(12만~15만원)와 비교할 때 3만~5만원 싸다. 불법 소개업자들의 소행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 불법 소개업을 겸한 인부팀장, 소위 ‘십장’이 외국인만 골라 취업시킨 뒤 높은 중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ㄱ인력사무소 대표 전모씨(54)는 “외국인 인부들만 골라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업자까지 등장하면서 인력시장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건설회사도 불법인 줄 알지만 적은 돈으로 이들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인력시장이 파장할 때인 오전 6시30분쯤 수진동 수진리 고개 인근에 있는 ‘성남 일용근로자 쉼터’.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이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한탄과 푸념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근 국밥집에서 해장술에 쓰린 속을 달래던 박모씨(63)는 “오늘도 2시간을 넘게 기다렸지만 일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일당 덤핑에 경기 불황까지 겹쳐 정말 살기 힘들다”고 말한 뒤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글·사진 최인진 기자 ij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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