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잤더니 재미없던 공부가 '꿀잼'

2016. 5. 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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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소년 수면관리법

중간고사가 끝난 뒤 5월, 6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오후 시간 졸음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공부를 위해서는 잠을 무조건 줄이는 게 좋은 걸까? 전문가들은 “효율적으로 잘 자는 법을 알아두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한 여고생이 쉬는 시간 낮잠을 자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4당5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재작년 새해. 할아버지가 주신 세뱃돈 봉투에 적혀 있던 말이다. 그해 나는 고3 수험생이었다. ‘그래. 딱 1년. 잠 줄여서 바짝 해보자.’ 새벽 1시30분,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가족들 눈치도 보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졸고 있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해 수능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음해 재수를 하면서 나는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자는 시간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올해 한국외국어대 독어과에 입학한 오재연씨 이야기다. 오씨는 “체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그런 내 기질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는 당연히 잠을 줄여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4당5락, ‘나폴레옹형’이 공부 잘한다?
우등생들 “7시간 이상 잤다” 말해



‘아침형 인간’ 무조건 좋다 생각하지만
수면 패턴에 ‘뭐가 더 좋다’ 정답 없어
각자 성향 알고 효율적인 학습계획 짜야

수능을 앞둔 수험생만 오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중학생쯤 됐으니 잠도 조절해야 하지 않아?” 공부에 열성인 학부모들은 아이 학년이 올라가면 이렇게 수면시간을 줄이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송미경씨도 그랬다. 송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5시간~5시간30분 정도로 수면시간을 설정해놓고 몸 리듬을 거기에 맞춰놔야 이 패턴이 고교 가서도 쭉 이어지고, 결국 수능 당일까지 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재 고2인 송씨의 딸은 7~8시간을 반드시 잔다. 잠을 무리해서 줄였다가 생리불순, 불안장애 등으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고교로 올라가면서 학생 스스로 쏟아지는 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2학년 김지민씨는 잠이 많은 편이다. 기숙학교였던 고교에 들어가면서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잠이 적은 친구, 밤에 공부해야 효율이 난다고 말하는 친구, 일정한 시간에 안 자면 피곤해서 못 견디는 친구, 낮잠을 꼭 자야만 하는 친구 등.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잠과 관련해서는 사람마다 다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수면시간을 적게 설정해놓고 거기에 나를 억지로 맞출 게 아니라 내 몸이 원하는 수면시간과 시기를 알고, 그걸 기준으로 나머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잠을 무리하게 줄여 실패했거나 반대로 잠을 잘 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잠은 ‘그것 먼저’ 줄여도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기본은 사수해야 하는 요소라는 점이다.

수면은 뇌가 문닫고 공부하는 ‘학습시간’

일반적으로 사람한테 적정한 수면시간은 하루 7~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학생들은 적정시간을 유지하며 잠을 잘 자면 얻는 게 많다. 잠은 기본적으로 기억력, 집중력과 관련돼 있다. 한 예로 ‘꿈꾸는 수면’으로 불리는 ‘렘수면’은 어린 시절, 뇌 발달을 촉진하는 수면 단계다. 렘수면 동안에 우리 뇌는 학습할 때와 똑같은 뇌파 패턴을 보이는데 이 시간 동안 사람은 깨어 있을 때 했던 공부를 정리하고 반복학습을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코슬립수면의원 신홍범 박사는 “렘수면 동안 뇌는 낮시간에 받아들인 지식을 기존의 것과 대조하고, 그것들 사이의 새로운 연관관계 등을 찾는다”며 “이를 통해 그전에 몰랐던 것을 깨닫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해결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수면은 ‘제2의 학습시간’이고, 뇌가 문을 닫아놓고 혼자 복습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정기고사나 수능 등 정해진 시험일을 디데이로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잠을 바짝 줄이는 수면법을 적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른바 ‘나폴레옹 수면법’(4시간만 자는 수면법)이다. 하지만 ‘잠빚’이 누적되어 ‘장기간 수면박탈’ 상태가 되면 만성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등으로 큰 고생을 할 수도 있다.

나한테 맞는 수면 유형 찾기부터

절대적으로 좋은 수면시간이나 수면방법은 없지만 학생 개개인한테 맞는 수면방법은 있다. 먼저 내가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하는 게 좋다. 보통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아침에 일을 생산적으로 해내는 ‘아침형’, 늦게 불규칙하게 자면서 오후 6시 무렵부터 눈이 반짝거리는 ‘저녁형’, 이 두 유형 사이에 있는 ‘중간형’ 등으로 나뉜다.

어떤 유형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박기형 교수는 “한때 ‘아침형’이 성공하는 사람 유형인 것처럼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개성일 뿐 뭐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다만, 성장기 청소년이라면 적정시간을 자 줘야 하는데 규칙적인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탓에 너무 뒤로 늦춰졌거나 앞당겨진 수면시간을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 중에는 저녁형이 많은 편이다. “너는 야행성이라 공부랑 거리가 먼가봐”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잠자리에 들 때 주변 환경 조도를 낮추는 등 저녁형한테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전문가들은 “형광등이 아닌 백열등을 쓰라”고 권한다. 잠들기 전, 너무 밝은 빛을 쐬면 멜라토닌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저녁형 청소년들은 잠들기 전 주로 스마트폰 등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불빛은 수면을 크게 방해한다. 박기형 교수는 “만약 스마트폰 등을 바로 끊기 어렵다면 블루라이트 차단 앱 등을 설치해서 눈에 피로를 덜 주도록 하라”고 권했다.

저녁형들은 아침에 무기력해지기 쉽다. 겨우 늦게 잠들었지만 아침 일찍 등교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힘겹게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런 청소년들한테는 햇빛에 눈과 몸을 노출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게 좋다. 해를 보면 10시간 뒤에 멜라토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게 좋다는 믿음이 있어 청소년들은 아침형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 유형한테도 어려운 점은 있다. 아침형은 보통 저녁시간에 각성도가 떨어진다. 가능하면 오전에 중요한 과목 공부를 배치하는 게 좋지만 그 시간에 하려던 공부를 다 못했을 때 저녁시간을 활용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신홍범 박사는 “보통 학생들이 오후나 저녁 시간에 카페인을 섭취하려고 하는데 이는 아침형한테는 야간 수면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며 “오후 4시 이후 밝은 빛을 쬐면서 생체시계를 뒤로 늦춰주고 저녁시간에 일찍 멜라토닌 분비가 시작되는 걸 막아주는 게 좋다. 그럼 잠드는 시간도 조금 늦춰진다”고 했다.

자기 전 2시간, 어려운 과목 공부하자

어떤 유형이건 간에 잠들기 전후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신홍범 박사는 “잠들기 2시간 전에는 평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과목 혹은 내용을 골라 공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잠들기 2시간 전에 공부한 내용은 잠을 자는 동안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되는 효율이 높아진다. 신 박사는 “또 공부를 하고 난 뒤 다른 활동을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획득한 지식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염려도 없다”고 했다.

“잠 좀 깨게 뒤로 가서 서 있어!”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차라리 10~20분 잠깐 눈을 붙이게 하는 게 낫다.

김지민씨는 고교 때 ‘쪽잠’을 많이 잤다. 7교시 마치고 4시10분경부터 20분까지가 쪽잠 시간이었다. 연세대 심리학과 2학년 손지우씨 역시 고교 시절, 석식시간에 저녁을 먹고 6시30분부터 7시까지는 쪽잠을 잤다. 손씨는 “잠이 많은 편인데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자야 신체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굳이 참지 않았다. 고2 때부터 습관을 들여두고 쪽잠을 잤다. 밥을 먹고 바로 자는 게 안 좋다고는 하지만 저녁 시간에 안 졸고 안정적으로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식으로 약 20분 안쪽의 낮잠, 쪽잠을 자는 건 매우 좋은 방법이다. 박기형 교수는 “졸릴 때 낮잠보다는 운동을 하라는 이야기들도 한다. 하지만 잠자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는 그걸 해소해줘야 한다” 며 “그래야 우리 몸에 다른 활력소가 생긴다”고 했다.

고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청소년들은 잠에 대해서도 일종의 ‘경쟁심’이 생긴다. 지역의 한 기숙형 고교를 졸업한 대학생 정아무개씨는 “고3 중반께 들어서면 아이들끼리 서로 의식하게 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며 “공부한 양은 기본이고, 얼마나 잤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견제하며 물어보는데 이것만큼 무의미한 게 없다”고 했다.

“몇 시간 자고 붙었어요?”

수험생 커뮤니티 ‘공신닷컴’(gongsin.com)에서 멘토로 활동 중인 조우용(연세대 경영학과 08학번, 현재 동 대학원 같은 과 석사 과정 중)씨한테 청소년들이 많이 건네는 질문이다. “12시에 잠들어 7시경 일어났다. 약 7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꾸준히 유지했다.” 조씨가 이렇게 말하면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이 자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공신’들의 조언은 한결같다.

“잠은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돌아온다. 밤에 2시간 줄이면 수업 때나 야자 때 어떻게든 졸거나 엎드려 있게 된다. 아니면 만성피로로 이어진다.”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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