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오해와 진실] "한은이 돈 마구 찍는 것 아니냐".. 양적완화 단어가 부른 오해

조은효 2016. 5. 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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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쟁점 문답풀이

10가지 쟁점 문답풀이

'한국판 양적완화' 용어를 둘러싼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강봉균 전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처음 작명하고 제시한 '한국판 양적완화'는 저성장시대 한국은행의 역할론을 논쟁의 장으로 끌고나왔다는 점에서 흥행 면에선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한은이 돈을 마구 찍어서 뿌리는 게 아니냐"고 보는 일반 국민들의 불안과 혼선도 상당한 상태다.

지난달 27일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역대 경제부총리.장관 간담회에서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 역대 경제수장들은 한국은행의 역할 강화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을 표하면서도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에 대해선 "적절치 않다"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박승 전 한은 총재도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양적완화'로 불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양적완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처음 강봉균 전 위원장이 언급한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은 발권력(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지원함)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재 '선별적 양적완화'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구조조정 실탄' 등으로 변형된 상태로 불리고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실체 없는 논쟁'이라는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 구조조정용 실탄 마련을 위해 한은이 국책은행에 자본을 확충하는 것으로, 과거부터 있었던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의 역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 같은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 마련 논쟁이 확산되면서 정작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질서 있는 구조조정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에 혼선을 주는 양적완화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 10문 10답 형태로 짚어봤다.
■1. 양적완화 용어 논란..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더 정확

당초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4.13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주장했다. 당시로선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자금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하고, 가계부채 리스크를 덜어낸다는 차원에서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의미했다. 국.공채를 매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에 견줘 한국판 양적완화로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구상은 '경기부양'과 '기업 구조조정'을 혼재해서 사용했다. 최초 작명자인 강 전 장관은 양적완화라는 명칭에 오해가 있다는 지적에 "양적완화라고 하지 않았으면 논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문제는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 같은 용어 사용이 부담스럽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 목적으로 논의가 좁아지면서 양적완화라는 용어가 과대포장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한은 발권력 동원'으로 용어를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 미국식 양적완화와 다른 점은.. 우리는 구조조정용 실탄마련 목적

미국식 양적완화는 규모 면에서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양적완화와 차원이 다르다. 미국이 과거 6년에 걸쳐 뿌린 돈은 약 4조달러가 넘는다. 시중에 무차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유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건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갈 실탄용으로 한은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약 3조~4조원을 수출입은행 등에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겠느냐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3. 넓은 의미서 양적완화?..본원통화 작년말 125兆로 늘어나

그럼에도 넓은 의미에선 양적완화라는 주장도 여전히 있다. 중앙은행으로선 발권력을 사용하게 되면 적든 많든 본원통화의 확대를 야기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양적완화'가 시중 유동성을 확대하는 것이라면 이미 한국은 양적완화가 진행 중인 상태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본원통화는 이명박정부 말인 2012년 88조원에서 지난해 말 125조원으로 확대됐다. 약 1.42배 증가했다. 이는 양적완화기 미국이 1.43배, 일본이 2.57배, 유럽연합(EU)이 1.06배 본원통화를 늘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유동성을 한은이 시중에 공급했다는 뜻이다.

■4. 한은이 주저하는 이유.. 발권력 동원땐 인플레 등 부작용

한국은행이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할 경우 특혜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또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화폐가치 하락 및 인플레이션 등이 발생하면 국민에 부담이 될 여지가 높다.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통화안정채권 발행 등으로 관리비용이 들고, 이로 인한 한은의 적자는 고스란히 정부 재정으로 산입된다.

■5. 정부, 추경에 소극적인 이유..국회동의 필요한 추경 시간상 촉박

올해 정부 예산에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필요한 자금이 반영돼 있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국책은행에 대규모 자본확충을 위해 재정을 쓰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하지만 추경은 대량실업이나 천재지변 등 특수한 상황에서만 편성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19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 이를 통과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지만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에선 이를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선제적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정부로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국회 통과를 거쳐 재정을 쓰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일각에선 9조원에 그쳤던 지난해 추경을 감안할 때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거쳐 추경을 실시한다고 해도 국책은행에 대한 충분한 자본확충은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한은은 발권력 남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 밖에 수출입은행은 이미 한은이 지분(2대 주주)을 가지고 있지만, 산업은행의 경우 한은이 직접 유상증자 등의 방식으로 자본확충에 나서려면 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 동의가 전제돼야 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6. 발권력 동원 어떻게..금통위원 7명 중 4명 찬성땐 통과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기 위해선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금통위원 7명 중 과반수인 4명만 찬성하면 통과된다.

국회 동의를 요하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보다 훨씬 손쉬운 수단이란 얘기다. 결국 금융통화위원들의 독립성 확보가 관건이다.

언제든 쉽게 돈을 찍어 부족한 재정을 메꾸려 들 수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7. 왜 자금부터 내놓으라고 하나..부실기업에 떼일 돈 대비한 충당금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부실기업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험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반면, 이를 감내할 자본은 충분히 쌓아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은행 등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떼이거나 떼일 위험이 커지면 그에 상당한 자본을 쌓아야 한다. 이를 대손충당금이라고 한다.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으면 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전이되면서 은행까지 쓰러질 수 있다.

앞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 부실로 인해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했던 것도 그래서다. 실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조선사와 해운사에 빌려준 금액만 모두 21조2267억원이다. 산업은행의 여신 내역을 보면 대우조선해양(4조원), 한진중공업(5800억원), 한진해운(7000억원), 현대상선(1조2000억원), STX조선해양(1조9000억원) 등 총 8조3800억원이다.

수출입은행은 12조8467억원으로 더욱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8조9903억원), 성동조선해양(2조3473억원), 한진중공업(1040억원), 한진해운(500억원), STX조선해양(1조3551억원) 등이다. 전체 대출금 가운데 받기 어려운 대출(고정이하여신)의 비율(부실채권비율)은 산업은행이 4.55%, 수출입은행이 3.29%로 이는 시중은행 평균 1.12%를 크게 웃돌고 있다. 마찬가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BIS 비율도 각각 14.28%, 9.89%로 시중은행 평균(14.85%)에 크게 못 미친다.

■8. 필요한 자금은 얼마..구조조정 폭 따라 최소 10兆 필요

현재 시장에선 구조조정이 큰 폭으로 진행될 경우 국책은행에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는 수십조원으로 불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발표를 미루고 있다. 2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정부가 됐든 한은이 됐든 국민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는 이슈로 신중해야 한다"며 "당사자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 이후에 규모나 방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책은행 자본확충에는 최소 1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의견이 많다. 1조~2조원 수준이라면 당장 산업은행이 보유한 자회사를 매각해서 충당할 수 있는 규모인 탓에 굳이 발권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9. 국책은행 자본확충 어떻게..한은, 정부에 돈 빌려주는 방식 고려

정부 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한국은행이 현재 고려하는 방안은 일시차입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요청대로 수출입은행 지분을 늘려서 자본확충을 해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한은이 돈을 빌려주면 정부가 그 돈으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경과 마찬가지로 국회 승인이 필요하다. 또 산업은행의 경우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조건부자본증권은 유사 시 투자원금이 주식으로 강제 전환되거나 상각된다는 조건이 붙은 회사채를 말한다. 다만 정부는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가계부채로 예를 들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어떤 식으로 해준다라고 하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고 당사자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준다"며 "대입해 보면 기업과 은행도 당사자이기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 과정, 행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10. 어떤 과정 거치나..4일 구조조정 TF서 자본확충 논의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 첫 회의가 4일 열린다. 구조조정 TF에는 한국은행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참석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TF를 통해 지금껏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던 정부와 한은 간 마찰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정부와 한은은 물론 정치권도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댈 때"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이미 '백기투항'한 모양새다.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은은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말했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역시 "아침 한은 총재 발언으로 확인됐듯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과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며 "재정과 중앙은행이 가진 여러 정책수단이 있을텐데 그런 정책수단을 포괄적으로 검토해서 적절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용훈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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