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에 꽂힌' 두가지 이유

전병역 기자 2016. 4. 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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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베이징 모터쇼 자국업체들 전기차 집중 소개… 당국도 전기차시대 선점 의지 강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8년이 지났으나 얼핏 보기에 중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만 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상당한 변화의 새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베이징 시내에서 쉽게 보게 되는 아래 모습이 상징적이다.

음식 등 배달서비스 운송수단인 세발 스쿠터가 전기 동력으로 바뀌었다. 일반인이 타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도 대다수가 전기용으로 교체됐다. 샤오미 나인봇 같은 전동기도 자주 보였다. 안내를 맡은 조선족 가이드 황모씨는 “기존 석유 오토바이는 아예 새로 면허를 내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이 된 중국의 심장부에는 전기차량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갈래다. 대기환경의 악영향이 커진 것이 첫째다. 황사에 꽃가루까지 섞인 누런 하늘은 물론 징핑고속도로를 달려 베이징현대자동차 제3공장을 가는 길에 보이는 메마른 건천 같은 것이 지구 온난화의 드러난 징표 같다. 둘째는 자국 자동차산업을 키우려는 당국의 노력이 빚은 결과다.

지난 4월 25일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개막한 ‘오토 차이나 2016’에서 돋보인 대목은 전기차다. 모터쇼의 주제인 ‘혁신에서 변화까지’를 생각하면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4월 25일 개막한 2016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형 베르나(현지명 위에나) 홍보대사 가수 지드래곤이 콘셉트카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현대차 제공

겉으로 비친 현실은 그렇게 뜨겁지 않다. 특히 관람객의 관심은 고급차 브랜드의 새 모델에 더 쏠렸다. 최다 관람객이 몰린 곳은 메르세데스 벤츠 같았다. 통로는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안전요원들이 따로 배치돼 출입을 막을 정도였다. 모터쇼장 입구에 ‘불등시대(不等時代)’를 버젓이 내건 아우디의 광고판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사회주의 중국에서 저런 광고가 가능할까 신기할 따름이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인 중국은 세계 최대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다.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지니계수가 급등했다. 1960년대 0.1대에서 1980년대 0.2대에 머물던 세계은행 기준 중국 지니계수가 2000년 0.4를 넘었다. 2010년 경우 미국 미시간대는 0.55, 중국 시난차이징대는 0.61로 계산했다. 브라질 등에 맞먹는 세계 최대급이다. 0.5를 넘으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통용된다.

이런 고급차의 연막을 걷어내면 당장은 잘 와닿지 않더라도 미래 방향이 감지된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일부 업체는 자율주행 기술까지 자랑했다.

중국 창안자동차 주화롱 대표는 언론발표회에서 “무인차로 충칭~베이징 2000㎞ 구간을 6일 동안 사고 없이 주행했다”고 자랑했다. 중형 세단 레톤에 부품사 보쉬와 자국 정보기술(IT)기업 바이두와 함께 전방카메라, 레이더, 고정밀 지도장비 등을 탑재해 거둔 결과라고 했다. 테슬라나 구글을 겨냥한 시도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는 전시관을 거의 다 전기차로 채웠다. 지리자동차도 한 번 충전에 253㎞를 달리는 전기차 디하오 EV를 공개했다. 이 차는 48분 만에 완충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디자인이 튀는 러에코(LeEco)의 전기차 콘셉트 모델인 러시(LeSEE)도 눈길을 끌었다. 최고 시속 209㎞인 이 차의 운전대는 자율주행으로 바꾸면 접을 수 있다. 중국 IT기업 러스왕 자회사인 러에코는 중국의 테슬라가 되겠다며 벼르고 있다. 영국의 고급차 애스턴 마틴과 함께 고급 전기차도 개발하고 있다. 또 러스왕의 자웨팅 회장이 미국에 세운 전기차 제조업체 패러데이 퓨처도 별도로 최고시속 321㎞의 전기 콘셉트카 ‘FF제로1’을 뽐냈다.

전기차의 상징적 존재로 올라선 미국 테슬라도 이번에 모델 S와 X를 전시했다. 다만 최근 공개한 모델 3은 들여오지 않았다. 이미 베이징 시내에는 테슬라 모델 S가 더러 돌아다니고 있다. 전통 부품사인 보쉬가 전기차 기술력을 강조한 것은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를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 고급 브랜드 중에는 BMW가 전기차 i시리즈를 공격적으로 전시해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했다. 충전소 문제나 주행거리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하이브리드차(HEV)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도요타 등과 경쟁하기가 이미 늦은 중국 업체는 이 단계마저 건너뛰려고 한다.

중국에서도 전기차가 보급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베이징만 해도 아직 충전소가 태부족이다. 땅이 워낙 넓고 5부제를 실시하지만 교통혼잡이 극심한 베이징에서 전기차를 타는 건 아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베이징은 서울보다 27배나 크다. 베이징 외곽에서 도심에 들어오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리는 교통체증도 걸림돌이다. 베이징 동북쪽 변두리 순이구에서 천안문까지 거리는 약 40㎞다. 가장 가까운 주요 도시인 텐진까지는 편도로 135㎞ 정도여서 한 번 충전으로 왕복도 마음놓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산업 전환기를 맞아 전기차 시대를 선점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는 또렷해졌다.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가까운 중국 당국의 정책 의지는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2012년 ‘에너지 절약형 및 신에너지 자동차 발전계획(2012~2020)’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판매량을 내년까지 50만대, 2020년까지 50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실적은 약 22만대로, 미국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내년까지 베이징에 충전소 1만개를 세우면 전기차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는 2115만대로, 전기차 비중은 겨우 1% 수준에 그친다. 앞으로가 주목된다.

석유엔진 차량은 베이징의 경우 면허를 잘 내주지 않는 반면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과 번호판 추첨제가 아닌 발급제가 적용된다. 또 5부제 통행도 전기차는 예외다. 베이징의 경우 연간 24만개로 시작한 번호판 면허 수를 15만개로 줄인 뒤 지난해는 12만개, 올해는 9만개로 대폭 낮췄다. 일반 자동차 번호판 가격은 하나에 1500만원이 넘는다. 반면 전기차 번호판은 지난해 3만개에 이어 올해 6만개로 늘렸다.

현대·기아차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대차는 이번 베이징 모터쇼에 아이오닉 브랜드를 소개하고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전시했다. 중국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도 내보였다. 기아차도 올해 10월 현지에 시판할 친환경 브랜드 ‘니로’ SUV 등을 소개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들 친환경차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물론 내년에는 현지생산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미 아반떼 XD 택시는 시범적으로 전기차 50대를 보급했다. 현대차는 중국형 ‘베르나’ 콘셉트 모델, 기아차는 ‘뉴 K3 터보’도 공개했다.

베이징 모터쇼는 국내 업체는 물론 정부 정책을 돌아보게 했다. 충전소 같은 인프라 구축에 시간을 허비한다면 주도권을 미국은 물론 중국 업체에게도 넘겨줄 위험을 안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국내 전기에너지 보급체계와도 맞물린 문제여서 한국은 자칫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

중국은 앞으로 신에너지차 보조금을 내년부터 20% 줄이고, 2019~2020년은 40%로 낮추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 뒤로는 아예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다. 이는 500만대로 보급하면 자국 전기차가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달리 말하면 약 4년 안에 중국에서 전기차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충전소 같은 인프라만 구축되면 우리도 한번에 수백㎞ 주행거리의 전기차를 개발하는 건 어렵지 않다”며 국내 여건이 빨리 마련되길 기대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한 번 충전으로 320㎞ 넘게 갈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들어낼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 단계로 올해 6월 나올 아이오닉 전기차는 1회 충전에 180㎞까지 갈 수 있다. 100㎾ 급속충전기로는 24분 만에 완전 충전이 가능하다. 배터리는 10년 또는 주행거리 20만㎞까지 보증해주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개막식에 영상으로 내보낸 인사말에서 “프로젝트 아이오닉을 통해 이동 중 발생하는 오염과 공해가 당연시되지 않는 미래사회의 모빌리티를 구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부회장은 28일 이번 모터쇼 참관차 베이징을 찾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한국전기차협회장)는 “중국은 지난 20년간 노력했지만 선진업체와의 엔진, 변속기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이제 전기차를 통해 몇 단계를 건너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도 급속충전기 6000기, 완속충전기 1만2000기를 갖췄는데 우리는 고작 급속충전기 330개 수준이고,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기업 간의 협업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늦은 대응을 지적했다.

중국 러에코의 전기차 콘셉트 모델 ‘러시(LeSEE)’의 내부 모습.
현대차 베이징 3공장, 제네시스 생산까지 검토
중국의 신차 판매량 100대 중에 9대는 현대·기아차다. 폭스바겐, GM에 이어 해외 브랜드로는 세 번째로 많다. 그 비결은 현지 생산공장이다. 베이징에서 세 번째인 베이징현대차 제3공장을 지난 4월 27일 둘러봤다.

중장비가 즐비한 데다 생산현장은 현대화돼 있다. 자동차 강판을 자르고 눌러서 모양을 내는 프레스 기계는 마치 큰 마분지를 다루 듯했다. 이어 뼈대와 외형 등을 붙이는 차체공장은 현대중공업의 400여대 로봇이 불똥을 튀기며 쉴 새 없이 용접을 해냈다. 외형이 조립되면 차량은 도색을 하는 도장공장으로 보내진다. 여기까지는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지켜보는 정도일 뿐, 사람이 별로 없다. 이어 중국 현지의 현대모비스 등에서 엔진,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꾸러미째 미리 만들어온 ‘모듈’을 차체와 조립하는 의장공장에서는 나사를 조이는 등의 과정에 노동자들이 다수 매달려 있었다. 다 조립하면 바로 주행성능까지 검사를 마친 뒤 완성차가 나온다. 2012년 생산에 들어간 베이징 3공장에서는 위에둥, 랑둥, 밍투, 싼타페 4개 차종을 만들어낸다.

류부열 3공장장은 “차량 한 대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HPV)은 15.8시간으로, 30시간인 한국 공장의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의장공장 기준으로 한 시간에 생산하는 차량 수(UPH)는 97대로, 현대·기아차 중국 공장 중 최고 속도다. 전체 생산차량으로 환산하면 54.5초에 차량 한 대가 나오는 셈이다.

3공장 직원의 평균 나이는 23세, 월급은 136만원으로 “한국의 6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인건비 차이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것이지만 생산 탄력성을 현대차 측은 더 아쉬워하는 듯했다. 다른 중국 공장도 비슷한데, 이 곳은 주문생산 형식을 띠고 있다. 화요일 딜러숍에서 필요한 차량 모델을 알려주면 계획을 짜서 목요일부터 생산에 나서는 방식이다. 필요한 물량을 라인별로 어렵지 않게 조절하는 탄력성이 이곳의 성공 비결이라고 현대차는 강조했다. 이는 보기에 따라선 국내 노조를 의식한 발언으로도 들렸다.

현대차는 2008년 제2공장을 준공하고 위에둥을 내놓은 뒤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여 왔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진 지난해 처음 판매량이 줄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권혁동 베이징현대차 판매본부장은 “5월에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투입하고, 하반기 창저우 4공장 완공 이후 신형 베르나를 생산하면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기아차는 제2 도약을 위해서 친환경·저공해 차량과 고급 브랜드 강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권 본부장은 “제네시스 브랜드까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50%는 합작사인 중국 업체에 넘어가고 절반을 국내에 들여오게 된다. 3공장의 경우 한국 부품사 105개사(57%·납품액 기준 90%)가 참여해 파급효과도 누린다. 현대차 관계자는 “100만대를 중국에서 생산하면 한국에서 30만대를 생산하는 효과를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급차까지 중국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민감한 문제를 낳는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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