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으로 풀어본 '산업구조조정' 재원마련 시나리오

박일경 2016. 4. 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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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양적완화' 법 개정만이 해법인가커지는 '구조조정 역할론'..침묵 깬 韓銀
사진=세계일보 DB

해운·조선업을 시작으로 우리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했지만,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을 두고 다양한 주장들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구조조정에 특화된 ‘한국형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고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 의지가 담긴 청와대의 지원사격이 가세하면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금고를 열고 돈을 풀어야한다는 쪽에 점차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주도할 국책은행, 특히 KDB산업은행의 자본여력이 충분해 한은이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굳이 나서지 않고도 기업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2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에 한해 선별적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는 통화정책당국이 예상할 수 있는 종전의 양적완화와 다르다”며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면 이는 ‘재정’이 맡아야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윤 부총재보는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은의 통화정책 실무담당 총괄자다. 사실상 양적완화에 반대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전날 이대현 산은 부행장은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중앙은행이 국책은행인 산은에 직접 출자하는 등 ‘한국형 양적완화’의 당위성을 공론화했다. 이 부행장은 정부와 국회, 한국수출입은행 등 여타 정책금융기관 간 대내외 정책을 조율하는 정책기획부문 책임자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누구 말이 옳은지도 애매하다. 논리도 복잡하다. 이에 현재 거론되고 있는 난해한 ‘산업 구조조정 재원마련 시나리오’를 문답으로 쉽게 풀어본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재원마련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①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한은이 기관투자자로 시장에 참여해 매입하는 방식
②산은이 발행한 코코본드 등 신종자본증권을 포함한 후순위채권을 한은이 인수하는 방식
③한은이 산은에 직접 자본금을 출자하는 방식이다.

코코본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도입된 현행 바젤Ⅲ 기준에서 기본자본(Tier1)으로 인정되는 채권이다. 발행사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면 원금이 전액 상각되는 구조다. 따라서 코코본드를 발행하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및 기본자본비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생겨 자본적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다지게 된다.

3개 시나리오 모두 한은법을 고쳐야 추진이 가능한 법률 개정 사항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1안과 2안은 법 개정 없이 국회의 동의만 구하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 실제로는 3안만이 법률 개정 사항이지만, 이것도 한은법이 아닌 통합 산업은행법만 고치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별로 장·단점과 찬-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9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16년 4월) 내용 중 일부 발췌. 자료=한국은행

◇ 제1안 :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한은이 기관투자자로 시장에 참여해 매입하는 방식

현재로서는 한은법의 개정 없이도 실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구도로 짜여진 20대 국회 개원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야권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인 산은과 한은 양측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산은 : 이 방법은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제안된 방안으로, 영리기업 또는 영리법인의 지분 소유를 금지한 현행 한은법 개정 없이도 실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행법상 한은은 산은에 출자할 수 없으나, 한은이 시장참여자로 산금채를 사들이는 것까지 막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 경우에는 정부 보증이 필요해 국가가 채무를 떠안는 사안이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산은에 자본 확충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 산금채 발행을 통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결국 산은이 돈을 빌리는 채무자가 되는 일이다. ‘자산=자본+부채’에서 부채를 늘려 자산을 키울 뿐 자본이 늘어나는 건 아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 확충’과는 거리가 멀다.

또 우량채권인 산금채를 중앙은행이 전량 매입하면 시중은행·증권사 등 민간금융사들이 채권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안전한 채권이 사라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시장 교란의 우려가 있다.

정부는 ‘BBB’ 투자적격등급 이상의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에 대해서는 민간에서 사들이도록 권장하고 있다. 민간금융사의 건전성을 제고하려는 취지다. 반면에 국책은행에 대해서는 BB+등급 이하의 투기등급 회사채 매입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회사채 등급은 낮지만 우량 중소기업 및 예비 중견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려는 목적이다.

기본적으로 모험투자를 꺼리는 민간의 성향을 감안할 때 한은이 산금채를 전량 매입하면 채권시장에서 우량채가 사라져 민간금융사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산은의 자본 확충이 일어나지도 않는데 민간의 반대를 무릎 쓰면서까지 무리할 이유가 없다.

- 한은 : 중앙은행이 시장참여자로 국책은행인 산은이 발행한 산금채를 사들이는 일은 한은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채권은 부채로 계상되기 때문에 산금채를 아무리 한은이 사준다고 해서 산은의 자본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부채를 늘려 자산규모를 확장할 뿐이며 이는 산은의 또 다른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난점이 있다.

투자에는 해당 기업의 자산안정성과 자본건전성이란 두 가지 측면을 전부 고려해야 하는데, 이 방법은 양쪽 모두에서 문제점이 노출될 수 있다.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채권에는 산금채가 빠져 있으므로 정부보증을 붙여 한은이 살 수 있는 ‘정부보증채권’으로 만드는 형식이다. 정부보증채권에 산금채를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말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척도인 산은의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4.28%로 시중은행 평균치(14.85%)와 비슷할 정도로 양호하다. 기업 구조조정 자금으로 인해 자본금을 잠식당할 염려가 있으나, 실탄이 부족해 한은이 자금을 지원할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

그래픽=세계일보 DB

◇ 제2안 : 산은이 발행한 코코본드 등 신종자본증권을 포함한 후순위채권을 한은이 인수하는 방식

한은법 개정 없이는 시도가 불가능한 방법이기는 하나,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1안에서처럼 만약 정부가 산은의 후순위채에 보증을 서주면 한은이 인수하는 게 가능해진다. 현행법상 “한은은 국채 또는 정부보증채권을 인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국회의 동의가 필수다.

- 산은 : 이번 산업 구조조정의 폭과 속도가 관건이다. 해운업에 이어 조선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산은의 자금이 부족할 수 있다. 현재 현대상선은 산은과 자율협약을 이미 맺은 상태로 지난해 현대상선 회사채 전액을 인수한 상태라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산은의 기업개선작업에 차질이 없다.

작년 대우조선해양·STX·현대상선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발생한 손실금액이 총 3조원에 달하는데, 산은이 1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연간 당기순손실 1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산은은 통상적으로 대손비용을 제외한 영업이익이 1조원을 상회한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 17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번의 경제위기로 거액의 손실을 경험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기조를 유지했다. 과거 17년 동안 당기손익 누적액은 8조2500억원으로 대규모 손실 충당이 가능하다.

다만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구조조정 부담으로 산은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자율협약을 추진 중인 한진해운마저 실제 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해도 한진해운 회사채까지는 지금까지 산은의 이익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으나, 문제는 산업 구조조정의 폭과 속도가 어디까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향후 금융권에 미칠 파장을 예측이 어렵다는 데 있다.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현대상선·한진해운 등 해운업에서 마무리된다면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처럼 산은의 ‘실탄’이 부족하지 않다고 볼 수 있으나, 만약 구조조정이 조선업 전반으로까지 넓혀질 경우에는 산은의 구조조정 재원이 모자랄 수 있다.

- 한은 : 한은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보증을 선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입장만 있을 뿐 아직 야권의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여·야간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풀어야할 사안이어서 한은이 인수를 하겠다든지 아니면 못하겠다 말할 입장에 있지도 않고 또 그럴만한 논의단계도 전혀 아니다.

29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16년 4월). 자료=한국은행

◇ 제3안 : 한은이 산은에 직접 자본금을 출자하는 방식

산은이 가장 바라는 방식이다. 한은이 발권력으로 돈을 찍어 산은의 자본금을 직접 늘려주는 방법이다. 다만 한은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한은은 수출입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 두 곳에만 출자가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한은법이 아닌, 산은법만 바꿔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은이 수은에 출자할 수 있는 근거인 수출입은행법 제4조를 참고하면 된다는 것이다. 수은법 4조는 “자본금은 15조원으로 정부, 한국은행, 산업은행, 은행, 수출업자의 단체와 국제금융기구가 출자하되, 정부 출자의 시기와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한은법이 아닌 수은법에 따라 ‘출자’가 허용돼있다.

수은법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수탁기관이 중앙은행에서 출자를 받아온 국제관례에 비춰 수은이 한은에서 출자를 받을 수 있도록 명시했다. 신법 우선적용 원칙에 따라 수은은 한은의 출자를 받을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 한은이 수은에 2000억원을 출자한 선례도 있다.

다시 말해서 산은법도 수은법처럼 고치면 된다는 견해다. 한은법상 산은 출자가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산은법을 개정해 한은 출자를 받도록 길을 열어주면 신법 우선적용 원칙에 의거 신법인 개정산은법상 한은 출자를 받으면 된다. 이 견해는 한은법상 구조조정에만 특정된 ‘한국형 양적완화’와 같은 선별적 양적완화를 인정하는 명문을 두는 일은 중앙은행의 보편적 양적완화를 추구하는 글로벌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시선이 깔려있다. 특히 자국 산업을 위해 직접적 지원을 명시할 경우 다른 나라로부터 보호무역주의로 오해를 사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위험도 있다.

- 산은 : 산은이 발행한 후순위채를 한은이 인수하는 방식과 한은이 산은에 직접 자본금을 대주는 이 두 가지 방안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둘 중에 하나를 취사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두 가지 방법을 믹스해(섞어)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운업 구조조정은 별도의 재원 조달 없이도 산은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누차 강조하지만 문제는 조선업이다. 조선업으로까지 구조조정이 확대되면 재원 부족 현상이 생길 수 있어 한은의 ‘실탄’ 지원 여지가 있다.

지난 한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빅3’에서만 총 8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특히 올해 말까지 산은은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진해운은 연내에 총 1조5115억원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한다. 당장 6월말까지 회사채 1900억원에 대한 상환 자금 마련이 시급하나, 지난해 말 기준 한진해운의 가용 현금은 18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 17년간 산은의 당기이익 누적액이 8조2500억원에 이른다고는 하나, 앞으로 구조조정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될지 예측하기 힘들어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마치고 조선업 구조조정에 들어갈 때에는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 따라서 해운업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고 조선업으로 확대되기 전에 한은의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 한은 : 법 개정 사항이다. 국회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입장을 내놓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이주열 총재가 앞서 밝힌 것처럼 “최근의 한국형 양적완화는 구조조정 지원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사용하는 의미로 일반적인 양적완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구조조정을 지원하더라도 법 테두리 내에서, 중앙은행의 기본원칙 안에서 하겠다”는 기존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며 한은의 공식 입장이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경제 구조개혁을 이뤄내고 경제체질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는 한은도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기업 구조조정이 급박하다는 ‘시급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차가 있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당한 절차에 대해 윤 부총재보는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를 거듭 강조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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